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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오스트리아 유학과 <가을앓이>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왜 미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고 유럽으로 유학을 갔느냐, 또 유럽 중에서도 영국,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큰 나라가 아니고 동구 가까이에 있는 작은 나라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느냐는 질문이다. 내가 유학을 가던 1960년대에 한국에서 ‘외국’은 미국이었다. 따라서 외국유학하면 누구나 당연히 미국을 연상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미국유학은 내게 처음부터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마치 모두가 대세를 따라 우르르 몰려가는데 내가 무턱대고 따라갈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는 주류가 되는 것 보다 비주류에 속하는 것을 편해 하고, 공인된 해답 보다 어딘가 숨어 있을 대안 찾기를 즐기는 내 성격 탓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은 역사와 학문적, 지적 전통이 일천하고, .. 2015. 2. 5.
대학강단 반세기 I. 얼마 전 제자 한 명이 내게 “선생님, 대학 강단에 서신지 얼마나 되셨어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내가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첫 강의를 시작했으니, 가만있자, 그게 1965년 봄이니, 아이고 50년이 되었네” 라고 대답하다가 내 스스로 깜짝 놀랐다. 정말 “아니 벌써”다. 1965년 2월 나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같은 해 3월 한양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가르치면서 대학 강단에 처음 섰다. 물론 시간강사였고, 그해 10월에 유학길에 올랐으므로 강사생활이 일단 한 학기로 그쳤지만, 그 때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스믈 다섯, 홍안의 청년이었다. II. 그런데 강사로서 첫발을 내 딛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한양대학교에서 내게 학교의 공식 추천서를 가져 오라고 했다. 나는 내심 켕기는 데가 .. 2015. 2. 1.
클릭 10만!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 가 10만번 클릭을 기록했다. 2010년 4월에 문을 열고, 5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내 일상의 소소한 흔적을 더듬고, 점차 가물가물 흔들리는 기억의 사진첩 속에서 지난 날의 추억과 향수를 끌어 내기도 했다. 그간 를 찾아 내 변변찮은 글에 격려와 공감을 피력해 주시고, 때로 글이 뜸하면 웬일이냐 걱정도 해 주셨던 많은 지인, 제자, 그리고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앞으로도 제 하루하루의 삶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를 느낌대로 가감 없이 전할 것을 약속드린다. 깊어 가는 겨울밤, 집 뒤 소나무, 대나무 숲을 스치는 소슬한 바람소리가 오늘따라 갖가지 회포를 일렁이게 한다. 2015. 1. 18.
세모(歲暮) 5제(題) I. 세모가 되어 가까운 친구 몇 명과 통화를 했다. “어때, 별일 없지” “그래, 그런대로 괜찮아” “그럼 됐지, 더 이상 뭘 바래” “그럼, 우리 나이에” 전화를 끊고 나니, ‘황혼의 엘레지’가 따로 없다. II. 가까운 친구가 메일을 보냈다. “새해에는 밭일은 고만해, 경작면적을 크게 줄여 봐” 내가 답했다. “그러잖아도 밭은 줄이고, 나무를 더 심을 생각이야. 그래도 내가 이 만한 건강을 유지하는 건, 여름의 흘리는 땀 때문이라고 생각해“ III. 벼르다가 며칠 전에 영화 '국제시장‘을 보았다. 주인공 나이가 우리 또래였다. 바로 우리 세대의 삶의 기록이었다. 1951년 1월 혹한 속에 열엿새를 걸어 대구에 이르렀던 피난길이 생각났다. 보다 울다, 울다 보다 했다. 내가 한창 유럽 유학하던 시절,.. 2015. 1. 1.
내가 신문을 안보는 이유 I. 이곳에 내려 온 후 정규적으로 신문을 보지 않았으니, 신문을 안 보고 산지 벌써 8년이 되었다.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전혀 모르는 깜깜 절벽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짧게나마 매일 인터넷 서핑을 하니, 대충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고 지낸다. 다만 인터넷으로 신문을 볼 때는 대개 제목만 보고 스치듯 지나가다, 가끔 아주 관심 있는 사항만 찾아 들어가기 때문에 총체적 정보량이 크게 부족하고, 그나마 아는 정보도 불균형적이고 편중된 게 사실이다. 실은 신문뿐만 아니라 T.V도 자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이 다 아는 것을 나만 몰라 엉뚱한 얘기를 할 때도 없지않다. II. 왜 신문을 안 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딱히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렵지만 대중 아래 두 가지 이유가 아닌가 한다. 첫째 시골.. 2014. 12. 13.
세상에 이런일이(3) I. 그간 우리 동네 산지(소나무숲) 훼손 문제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는 친지, 제자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는데 드디어 결론이 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동네 주민의 고충민원을 이유 있다고 판단하여 고성군청에 ‘토석채취 허가를 취소’하라고 ‘시정권고’를 명한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민의 편에서 동네 주민의 ‘작은 목소리’를 우렁찬 ‘큰 소리’로 답한 것이다. 우선 권익위원회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그간 많은 조언과 정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II. 고성군청이 지난 6월 우리 동네 울창한 명품 소나무숲을 밑동만 남겨두고 통째로 허물어뜨리는 토석채취 허가를 내자, 주민들은 고성군청에 허가취소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두 번 냈다(앞선 글 ‘세상에 .. 2014. 10. 16.
인촌상 수상에 즈음하여 I. 지난달 20일, 인촌기념사업회로부터 내가 제 28회 교육부문 인촌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통고를 받았다. 두 번 장관을 하면서 한국 교육의 ‘균형’을 잡는데 기여했다는 것이 수상의 주된 이유이며, ‘신청’ 케이스가 아니라, ‘발굴’ 케이스라고 전했다. 전혀 예상도, 아니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라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면서 과분하고, 송구스럽다는 생각, 그리고 부끄럽다는 느낌이 치솟았다. 아울러 “참 세상이 고맙구나”라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 며칠 후 수상자가 정식으로 공표되자, 가까운 친구가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아니, 세상이 아직 자네를 기억하네. 그것도 아주 제대로 말일세. 신기하지. 두 번 장관하면서 그렇게 고생하더니 그래도 보람이 있었네”라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2014.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