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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역사를 보는 눈 . I. 1985년에 미국의 레이건이 두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돌아가신 가친(家親)께서 무척 좋아하셨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 왜 그렇게 좋아 하세요. 저는 별론 대요”했더니, “70대 중반의 노인이 세계 제일의 대국에서 두 번 씩이나 대통령직을 맡게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같은 노인인 내게 얼마나 고무가 되는지 모르겠다. 너도 내 눈으로 세상을 한번 바라보면 이해가 될게다”라고 대답하셨다. 당시 레이건 보다 두 살 연상이셨던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정말 그럴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관점에 따라 눈앞의 현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지난 2009년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크게 감격했다. 그리고 미국은 정말 위대한 나라라는.. 2016. 2. 25.
신영복의 친구 N 이야기 I. 쇠귀 신영복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나와 동갑내기 1941년생이고, 학교는 달라도 같은 해에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둘 다 교수라는 직업에 오래 종사했다. 그러다 보니 내 친구와 친지 중에 그와 가깝게 교유했던 사람들이 제법 많다. 나는 그들로부터 그동안 신 교수에 관한 얘기는 자주 들었고, 또 그의 글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했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아 한 번도 생전에 그를 만난 적은 없다. 20여 년 전, 가까운 후배에게 “신영복 교수 글씨가 좋던데”라고 말했더니, 웬걸 얼마 후 그 후배가 신영복에게서 글을 하나 받아 내게 왔다. 내 얘기를 전하고 청을 해서 글을 받았다는 것이다. 무척 고마웠다. 대신 감사의 뜻을 전했으나, 직접 그에게 제대로 고마움을 표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낮.. 2016. 1. 22.
세모에 인사드립니다 세모에 인사드립니다. 나이가 들면서 세월의 흐름을 빠르게 느낀다더니 정말 그러네요. 한 해가 후딱 지나갔습니다, 자연에 기대어 멀리서 내다보는 세상은 늘 그랬듯이 어지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 역사는 한 발짝씩 전진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 나마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프지 않고 집안에 큰 변고없이 세밑까지 왔으니 퍽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 70대 후반기에 접어듭니다. 새해가 되면 제가 이곳 속초/고성으로 내려 온지 도 어언 10년이 됩니다. 해가 갈수록 점차 농사짓기가 힘들어져서 요즈음은 몇 년이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신에게 물어 보곤 합니다. 앞으로 그런대로 서너 해는 괜찮을 것 같으나, 글쎄 그것도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겨울에 글 쓰는 것도 .. 2015. 12. 29.
겨울에 생각나는 의사 두 분 I . 내게는 겨울이면 생각나는 의사 선생님이 두 분 계시다. 한 분은 한국분이고, 또 한 분은 외국분이다. 첫 번째 분은 옛날 서울 돈암동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큰 길가에서 동네 의원을 개업하셨던 신 선생님이시다. 그 분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10대 초반까지 그곳에 계셨는데, 어질고 자상하신 초로(初老)의 의사 선생님이셨다. 키가 훤칠하게 크시고 얼굴이 아주 잘생기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집안에 누가 조금만 아파도 으레 그 분께 갔기에 신 선생님은 4대가 함께 살았던 우리 집 온 가족의 병력은 물론 가족관계를 낱낱이 잘 알고 계셨다. 요새 식으로 말하자면 전형적인 가정의셨다. 몸이 아파 찾아뵈면, 늘 친절하게 대해주시며 일일이 가족 안부를 물으셨다. 그래서 진찰시간이 언제나 길었다. 편안하고.. 2015. 12. 13.
장기려, 그 사람 어제 저녁 CTS 기독교 TV 아트홀에서 장기려 박사 추모 20주년 특집 다큐 영화 시사회가 열렸다. 나는 여기 참석해서 큰 울림을 받았다. 평생 무소유의 삶 속에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했던 그는 우리 시대에서 예수에 가장 가까이 갔던 사람이 아닐까. 그는 영양 부족한 환자에게 을 처방했고, 돈 없는 환자에게 병원 뒷문으로 도망갈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런가 하면 그는 당대 최고의 명의로써 한국 최초로 간 대량절제 수술에 성공했고, 나라 보다 20여년 앞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창설하여 가난한 이웃들에게 의료혜택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 의미에서 는 수월성과 창의력 면에서도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탁월한 인물이다. 그는 평생 이북에 두고 온 사모님을 그리며 혼자 외롭게 지냈다. 육남매 .. 2015. 11. 18.
산, 그 그윽한 품속 I, 나는 산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속초/고성을 노후의 정착지로 정한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설악이라는 명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도 내 눈 앞에 아른 거렸지만, 그보다도 웅혼한 기상과 화려한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설악의 연봉들이 마치 자력처럼 내 마음을 더 세차게 끌어 당겼다. 나는 비교적 시간을 아껴서 관리하는 유형이다. 그런데 산에서 보내는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그곳에 가면 언제나 과분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누가 산에 가자고 연락이 오면 웬만하면 만사를 뒤고 미루고 산행에 나선다. 아니 산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쿵’이 시작된다. 산에 가면 심신이 두루 즐겁다. 그런데 몸 보다는 마음이 더 산을 좋아 하는 것 같다. 산에 들어서면 마치 세속을 등지고 보다.. 2015. 9. 18.
가을의 문턱에서 I. 나는 이맘때면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유세하는 것 같지만 한 여름 폭염 속에서 나이든 사람이 농사일을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닌데, 이제 그 긴 터널의 끝이 보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두 해 동안 여름 내내 수시로 찾아드는 허리통증에 시달렸는데, 그래도 올해는 훨씬 견딜만한 수준에서 여름 레이스를 완주하게 되어 더욱 기쁘다. 전에 대학에 있을 때는 연구실 창문 밖에서 매미가 낮게 나르며 긴 울음을 이어가면 가을 개학이 멀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런데 시골 살면서 가을이 다가 오는 것은 아침, 저녁, 눈으로, 귀로, 그리고 냄새로, 오관을 다 동원해 온몸으로 느낀다. II. 며칠 전 부터 주위의 풍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그 색깔이 달라져서, .. 2015.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