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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역사를 보는 눈

2016. 2. 25. by 현강

                                  .

 

                                     I.

  1985년에 미국의 레이건이 두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돌아가신 가친(家親)께서 무척 좋아하셨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 왜 그렇게 좋아 하세요. 저는 별론 대요”했더니, “70대 중반의 노인이 세계 제일의 대국에서 두 번 씩이나 대통령직을 맡게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같은 노인인 내게 얼마나 고무가 되는지 모르겠다. 너도 내 눈으로 세상을 한번 바라보면 이해가 될게다”라고 대답하셨다. 당시 레이건 보다 두 살 연상이셨던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정말 그럴 수 있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관점에 따라 눈앞의 현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지난 2009년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나는 크게 감격했다. 그리고 미국은 정말 위대한 나라라는 인식을 했다. 오랫동안 노예의 신분을 감수하며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던 흑인이 일약 한 나라의 수장이 되었으니, 그게 어디 범상한 일인가. 나는 특히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 때 의장대에 참여했던 한 흑인병사의 글썽이는 눈물을 보는 순간 깊은 감동으로 온몸이 전율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현장만큼 인간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II.

  한 때, 보수주의자 들 중 많은 이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1998-2007년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다. 이 어구는 원래 거품경기 이후 일본의 극심한 장기침체 기간(1991년-2000년)을 일컫는 것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두 진보 정권을 폄하하기 위해 자주 쓰였다. 얼마 전 나를 찾아 온 가까운 지인 한 사람이 대화 도중 두 정권을 격렬히 비판하며 ‘잃어버린 10년’을 거론했다. 그리고 내 동의를 구했다.

 

  그 때 나는, “두 정권을 ‘성과’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공과(功過)를 논의할 수 있다고 보네. ‘이념’의 관점에서 비판도 있을 수 있을 걸세. 그러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 자체에는 선듯 동의하기 어렵네”라고 답했다. 이어서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역사를 그렇게 한마디로 재단(裁斷)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네. 그 기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네. 우선 민주주의가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정권교체가 필수적이네. 그런데 그 때 정권이 바뀌었네. 따라서 그 기간은 일천한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보다 견실하게 만들어주는 매우 주요한 시기이네. 그 바람에 우리가 보수, 진보를 다 고르게 경험하지 않았나. 그 뿐인가. DJ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여러 면에서 소외되었던 호남인들에게 더 할 수 없는 복음이자 축복이었네. 그들을 품에 안는 뜨거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국의 진정한 사회통합이 가능하다고 보나. 그리고 노무현 씨는 어떤 사람인가. 빈한한 가정 출신의 고등학교 졸업이 그의 학력의 전부네. 바로 <개천에서 용>이 난 전형적인 경우가 아닌가. 그가 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 땅의 ‘작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와 감동을 선사했겠나. 그것도 한국의 현대사를 풍성하게 만드는 살아있는 역사기록이네. 역사를 민주주의의 긴 여정 속에서, 그리고 사회통합의 과정에서 보면, 다르게 보이네. 그 10년은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네. 그 과정은 우리가 거쳐야 할 과정이네.”

 

  그 날, 때 아닌 정치토론에서 제 6공 노태우 정권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지인은 이른바 ‘물 태우’를 거론하며 6공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지연시킨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크게 흥분했다. 그 때도 나는 조금 다른 관점을 보였다.

 

  “한마디로 부정하지는 않겠네. 그러나 그것도 최악의 시간은 아니었네. 돌아보게나. 그 시기는 한국 현대사에 있어 가장 폭발적인 시간이었네. 민주화의 열풍 속에 그 동안 억눌렸던 다양한 이해관계가 일시에 분출되면서 정치사회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위험 시기가 아니였나. 그 때 ‘물 태우’가 아니고 ‘불 태우’였다면 아마 훨씬 더 힘들었을 터이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로, 때로는 저리로 밀리면서, 그 숨가뿐 고비를 그래도 무난히 넘겼네. 그렇게 6공이라는 완충기, 그 건널목을 거쳐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이 아닌가.”

 

                                            III.

  대화의 끝 무렵에 그 지인은 나에게 “자네는 지난 역사를 너무 따듯하게 보는 것 같아. 안 그런가”라고 다그쳤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지 모르지. 나는 지난 역사를 지나치게 부정하고 폄하하는 편은 아니네. 그 고된 역정을 거쳐 우리가 오늘에 온 것이 아닌가. 그 길목마다 많은 악이 존재했지만, 그에 맞서 선이 큰 구실을 했네. 그리고 그 역사 속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많은 교훈이 담겨있네. 중요한 일은 그 교훈을 찾아 마음에 새기고 내일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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