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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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한 4.19(재록)
정말 어제 일 같은데 4.19가 오늘로 66주년을 맞았다. 그날의 한 장면, 한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나는 그 화사한 봄날, 한국 민주주의의 자랑스런 역사 속에서 어머님의 지극한 사랑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이 더없이고맙고 가슴벅차다. 아랫글은 이미 2011년 4월 19일에 올렸던 글을 다시 싣는다. 어머니와 함께 한 4.19 2011. 4. 19. by 현강 I.올해가 4.19혁명이 일어난 지 쉰 한번째 되는 해이다. 그 화사했던 봄날, 핏빛 민주주의의 축제가 이미 반세기가 지나 저 너머 꿈결처럼 아련한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당시 나는 연세대학교 정외과 2학년인 스무 살 청년이었다. 4.19 열풍이 지나간 후 한 열흘쯤 지나서, 교내 학생신문인 에 기자로 들어갔다. 민주혁명의 열기가 나를 ..
2026.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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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聯想)
I. 얼마 전 이제 50대 후반 깊숙한 나이, 초로(初老)의 내 딸아이가 내게 느닷없이 물었다. “아빠, 혹시 아빠가 고집스럽게 강원도 산골에 20년째 사시는 이유가 얼마간 ‘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일종의 오기나 과시 때문이 아니세요?” 순간 나는 조금 황당하고 섭섭했지만, 그냥 덤덤하게 대답했다.“얘야, 오기로는 2, 3년 견딜 수 있지만, 아마 20년은 버티기 어려울 게다”. II. 그러면서, 내 뇌리에 문득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1963,4년 쯤, 한창 5.16 구데타 이후 군사정부 때였다. 내가 대학교 졸업한 직후 쯤이 아닌가 한다. 무척이나 답답한 마음으로 은사이신 고(故) 이극찬 교수님을 찾아뵙고 이런저런 시국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불쑥 이 교수님께 엉뚱한 질문..
202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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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이야기(재록)
어제 "교수님, 주례 이야기 참 재밌습니다"라는 댓글이 실렸다. 찾아보니 내가 15년 전(2011/10/15)에 현강재에 올렸던 글이다.나름 재밌어 다시 올려 본다. I. 교수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제자들 결혼식 주례를 자주 서게 된다. 나도 지난 세월 동안 300번 가까이 주례를 섰다. 그러다 보니 한창 주례를 자주 섰던 50대 때는 학자로서, 또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가장 바쁜 시기였는데, 모처럼의 주말마다 한, 두 차례 주례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생활에 지장이 컸다. 하지만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므로 주례는 그 전 과정에서 추호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자주 하더라도 매번 긴장하고 적잖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일단 주례를 맡기 시작하면 누구는 해 주고 누구는 마다할 ..
2026.01.12
자전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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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통신원 제1호
I.얼마 전 중앙일보가 창간 60주년을 맞았다는 보도에 접하면서, 그간 까맣게 잊고 살았던 옛 기억이 되살아나 몇 자 적어본다.나는 지금부터 60년 전, 1965년 10월 초에 오스트리아에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그에 앞서 우연한 계기에 새로 창간하는 중앙일보의 통신원이 되었고, 그 인연으로 한동안 중앙일보에 글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이후 모진 세월의 흐름 속에 그때 일은 내 기억에서 거짓말처럼 거의 지워졌다. 1970년대 초 귀국한 이후 중앙일보에 적잖게 글을 실었고, 대담, 인터뷰, 행사 등으로 여러 차례 그 사옥을 드나들었는데도 한 번도 내가 한 때 이 신문 통신원이었다는 사실을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그러다가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기사를 보는 순간, 마치 전기충격을 받은 듯 반세기 넘게 내 ..
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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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벌어졌던 일
I나는 1970년대 초반에 3년 반 동안 한국외국어대학 행정학과 조교수로 재직했다. 이미 까마득한 반세기 저 너머의 일이다. 당시 한국외국어대학(이후 외대)는 아직 단과대학이었고 전임교수가 70명 남짓의 중소 규모의 대학이었다. 그러나 외국학(언어·문학/지역학)에 특화된 대학으로 학생들의 수준이 무척 높았고, 사회적 평판도 좋았다. 그곳이 내 첫 직장이었고, 꽃다운 한창나이에 교육과 학문에 열정을 쏟았던 보금자리였다. 그래서 외대는 아직도 내게 추억의 사진첩을 연상시키는 마치 ‘고향’이나 ‘친정’ 같은 아련한 그리움의 대상이다. 당시 외대에서는 매달 한 번씩 학장 주재의 전체 교수회의가 있었다. 여기서 30대에서 60대까지 전 교수가 한데 모여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며 대학에서 돌아가는 흐름을 공유할 수..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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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학계 데뷔 첫날 풍경
I. 나는 1970년에 오스트리아 빈(Wien) 대학에서 공부를 끝내고, 이듬해 초에 귀국했다. 돌아와서 한 달이 채 못 되었을 때쯤, 한국정치학회 총무이셨던 동국대학교의 이정식 교수님께서 전화로 내게 곧 열릴 학회에서 연구발표를 할 것을 청하셨다. 나는 얼떨결에 수락했다. 1971년 2월 초, 연구발표회는 성균관대학교의 계단강의실에서 열렸다. 발표자는 두 사람, 이영호(李永鎬) 교수님과 나였다. 이 박사님은 연세대 정외과 내 6년 선배로,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조지아 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조교수로 강의를 하시다 그 전해에 귀국, 이미 이화여대 정외과에 채용이 결정되신 기존 학자셨다. 원래 이분 단독으로 발표하실 예정이었는데, 내 귀국 사실이 알려져 학회에서 급히 내게 연락을 주셨던 것이었다..
2024.06.28
연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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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형성기(1948-1961)와 발전국가기(1961-1980) 한국행정학에 대한 비판적 조명
이 글은 지난 5월 21일 한국행정학회가 주최한 편찬을 위한 '원로교수 좌담회'에 내가 논의 자료로 제출했던 글이다. 국가형성기(1948-1961)와 발전국가기(1961-1980) 한국행정학에 대한 비판적 조명 안병영 1. 한국행정학 태생기의 몇 가지 특색 1) 초창기 한국 행정학의 도입기, 선구적 역할을 한 학자들은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종전 일본에서 대학수업을 받을 때, 법학(내지 정치학)의 일부로서 행정학을 배웠던 몇 몇 정치학자들이었으며, 또 다른 주류는 전후 미국에서 행정학에 접했던 신예학자들이었다. 첫 부류에 속하는 분들이 신도성, 정인흥이었다. 신도성은 서울대 문리대에서 L.D. White와 W. Willougby를 소개했고(1940..
202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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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서의 세계관, 인간관, 그리고 그의 학문세계
힌국행정학 초창기 반세기 동안 부동(不動)의 대표주자였던 고(故) 박동서 교수님의 서거 20주년을 맞아 한국행정학회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이 공동 주최한 에서 내가 발표한 이다.
202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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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논쟁에 부쳐 (재록)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를 언급한 이후, 고대사 논쟁이 뜨겁게 달아 올랐다. 아랫 글은 필자가 15년 전에 (47호, 2010)에 실었던 글( '한국 사학에 바란다')이다. 한국 고대사에 아마추어인 내가 외람되게 쓴 글이나,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어서 여기 다시 올린다. 고대사에 대한 오랜 관심 한국 고대사에 대한 나의 관심은 따져보면 지금부터 약 40여 년 전 유럽 유학시절부터 시작된다. 1965년 가을부터 5년 가까이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 유학해서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유학초기에 겪었던 언어적 어려움을 얼마간 극복하고 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유럽 친구들과 서로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토론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곳 친구들이 처음에는 서양사에 대한 나의 지식에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특히 주요연대를 ..
202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