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추적 추적 가을비가 계속되다가 하루 멈칫하기에 제자 두명과 비선대에 올랐다. 때는 얼추 가까운듯 한데

천불동 계곡에는 아직 단풍 소식이 이르다.  얼마전 대청봉 근처에 단풍이 한창이라던데, 아마 내려 오다가

어디 중간지점에서 머뭇거리는 듯 하다. 단풍은 없었지만, 청량한 공기와 물소리, 그림같은 풍경속에서

신선 노름을 했다. 

돌아 오는 길 들녁에는 황금물결이 출렁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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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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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총동창회보에 내 신간 <인생삼모작>이 '화제의 책'으로 소개되었다.

 

화제의 책_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 '인생 삼모작'기사보기 - 총동창신문 - 서울대학교총동창회.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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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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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서점(교보)에서 출판사 <21세기북스>를 통해 내 새책 <인생삼모작>에 대한 질문서를 보내왔다. 

아래 내용은 그에 대한 나의 답신이다.

 

 

인터넷서점 [이슈 도서] 체크포인트

인생 삼모작

안병영 / 21세기북스

 

 

Q. 한국의 대표적 사회과학자이시고, 김영삼, 노무현 두 정부에서

교육부 수장으로 지내셨는데, 대학 정년을 앞두고

갑자기 강원도 고성으로 귀촌을 하시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아울러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A. 서울태생인 저는 젊은 시절부터  노후에는 시골에 가서 ‘다른 삶’을 살아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나치게 번잡하고 세속적인 ‘관계의 망’ 속에 얽혀있는 대도시에서 벗어나서, 내가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컸고, 내 노후를 따스하게  안아 줄 수 있는 자연의 품이 그리웠습니다.

 

한여름에는 농사짓고, 겨울에는 글 쓰며, 남들이 다니는 큰 길가에서 비켜서서 한적하게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평생 책상머리나 지키던 내가, 땀 흘려 노동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일상에서 배우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늑한 자연에 파묻혀 바깥세상을 멀리 조망하며 사색하는다는 것은 내겐 너무 신선한, 그리고 얼마간 경이로운 삶의 체험입니다. 자연은 특히 지적, 예술적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께서 쓰신 55편의 에세이 속에는 삶의 깊은 통찰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 일어난 가벼운 이야기도 있고, 정치와 사회를 주제로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번 책을 통해 독자들이 어떤 점을 주목하면 좋을까요?

 

A. 이 책 속에는 격동의 연속이었던 지난 80년간의 제 삶의 여정과 그간에 내가 품었던 생각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따라서 글 전체가 얼마간 자전적 성격을 지니고 있고, 그 안에 저 나름의 세상을 보는 눈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어떤 주제는 가볍고, 어떤 주제는 무거워 보이나, 모든 글이 제 영혼과 인격을 담보로 한 시대의 증언이자 삶의 고백입니다. 독자들께서는 제 마음 속에 들어와서 글을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Q. 책의 제목이 인생 삼모작인데, 교수님의 삶을 삼모작으로 구분해 주신 것으로 보입니다.

구체적으로 구분하여 설명을 부탁드리고 스스로 평가를 해주신다면요?

 

A. 제가 말하는 <인생삼모작>에 따르면, 첫 번째 일터에서 한 30년 열심히 일하고, 50대 중반에 이르면 못자리를 옮겨 자신이 평소에 정말 하고 싶었던 일 혹은 진심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다음 60대 중반이 되면, 못자리를 아예 시골로 옮겨 ‘자연회귀’, ‘자아찾기’로 여생을 보내자는 것입니다.

 

제 삶을 스스로 되돌아보면, 세 번째 못자리로 자연의 품에 귀의한 것은 위의 처방 그대로이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못자리의 구분이나 성격 규정에는 조금 애매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저는 만 65세에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늘 교수직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살아오면서, 그 일을 가장 좋아했고, 또 가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별다른 재주가 없는 저로써는 그 일이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따라서 퇴직할 때까지 제 주된 못자리는 교수직이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내가 그 후반부에 수행했던 두 번의 장관직은 제 삶의 주된 궤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뿐더러, 그것이 제가 본래 하고 싶었던 일도 아니었고, 학자 생활보다 더 가치 있게 여겼던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제 경우에도 대체로 50대 중반을 변곡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 삶의 과정에서 차이가 컸던 것은 사실입니다. 즉 50대 중반까지는 주로 학문 및  <이론>연구에 큰 역점을 두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언론에 정치평론을 하는 등 얼마간 <이론>연구의 외연을 확장하는 작업을 곁들였습니다만, 제 주된 관심은 학문연구였고, 제 삶의 주된 터도 오로지 <연구실 >이었습니다.

그런데 50대 중반에 이르러, 제가 교육부 장관직을 맡으면서 제 관심은 <실천> 쪽으로 크게 선회했고, 제 일의 내용과 일터도 바뀌었습니다. 이후 다시 연구실로 돌아왔으나, 60대 초에 이르러 한번 더 교육부 수장직을 맡으면서 다시 제 삶이 <실천> 쪽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처럼 제 삶의 궤적은 50대 중반 이후 두 번의 국정참여를 통해 <이론 중심>에서 <이론과 실천의 접목>내지 <실천을 통한 이론 검증> 쪽으로 크게 전환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를 제 두 번째 못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의 국정참여는 무척 힘겹고 고뇌에 찬 시간이었으나, 정치학과 행정학, 다시 말해 <국가학>을 을 전공한 저에게는 귀중한 경험이었고, 나라에 봉사할 모처럼의 기회였습니다.

 

 

Q. 내용을 살펴보면 책의 주제나 핵심은 중도주의적 삶의 철학으로 보입니다.

동의하시는지 궁금하고, 과연 그 삶은 어떤 것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A. 저는 늘 <개혁적 중도주의자>라고 자처해 왔습니다. 이념적으로 말하자면, 자유와 평등, 어느 쪽에 크게 편중되지 않고 양자를 조화롭게 가꾸자는 입장입니다. 이는 기하학적으로 양극의 중간 점이 아니라, 양극을 한 단계 높은 수준에서 ‘지양(止揚, aufheben)하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개혁을 품은 역동적 과정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관점은 이념적 지향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과정 속에서도 그대로 용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극단적 사고, 진리독점, <적과 동지>의 구분을 배격하고, 균형적 사고, 점진개혁,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고 <함께 사는 삶>과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중도주의적 삶의 철학입니다.

 

Q. 젊은 세대에게는 생경하겠지만, 옛 어른들은 아호를 통해 훨씬 부드럽고

격조 있는 대인관계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의 아호는 현강이라고 들었는데, 그 뜻은 무엇이고 아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A. 그냥 글자 풀이를 하자면, 현강(玄岡)은  ‘아득히 보이는 작은 산’입니다. 그런데 첫 글자 ‘현(玄)’이 노자, 장자의 도(道)와 통하는 개념입니다. 더욱이 내 아호를 지어주신 청남 선생님 자신이 ‘자연그대로의 삶’을 지향하는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사상의 대가이기에, 저는 그가 내 말년의 삶을 미리 꿰뚫어 보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다 할 에피소드는 생각이 나지 않네요. 다만 신기한 것은 한국에서는 내 아호를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외국에 사는 옛 친구들이 내게 글을 쓸 때는 하나 같이 제 아호를 앞세우네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고풍스런 옛 정서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 가 싶어 가슴이 뭉클하곤 합니다.

 

Q. 교수님의 이번 에세이집은 문학적인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수필의 새로운 전범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문체는 부드럽고, 글의 내용은 일상의 미세한 감정부터 전 세계적 사고의 분석까지

거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비법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저 나름의 비법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글을 쓸 때 늘 명심하는 점 몇 가지 점을 보편적인 권고 사항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글은 진솔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솔직해야 합니다. 따라서 글은 마땅히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써야 합니다. 따라서 글을 쓰자면, 늘 자신의 내면의 움림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글에 거짓이 깃들어서는 안 될뿐더러, 글 속에 지나친 과장이나, 미화, 혹은 필요 이상의 현학적 표현이나 시니시즘은 피해야 합니다.

둘째, 글은 쓰고 싶을 때 써야 하고, 글 속에는 얼마간 고뇌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마지못해 쓰는 글, 억지로 쓰는 글은 피해야 하고, 뻔한 얘기, 누구나 하는 얘기, 정석적 글은 아예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

셋째, 글을 쓸 때, 필자는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시대의 흐름이나 권력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대중에게 영합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사적 동기가 앞세워져서는 안 됩니다.

넷째로, 가능하면 사회통합적인 글을 쓰는 게 좋습니다. 필요한 비판은 마땅히 해야 하며, 글을 쓰는 데 따르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이념적이거나, 편향된 글보다는 서로의 이해와 치유를 돕고, 연대를 강화하며,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사회통합적인 글이 바람직합니다.

 

 

Q. 우리나라처럼 극단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중도주의자로 살아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젊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밝혀주세요.

 

A. 요즈음 젊은이들은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제4차 산업혁명의 여울과 국제정세, 그리고 불안정한 국내의 정치경제적 환경과 코로나 19 팬데믹의 압박 속에서 극히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격변하는 시대와 사회 속에서는 좌와 우의 이념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포퓰리즘이 만연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이럴 때 수록, 젊은 세대는 비판적 지성과 용기를 바탕으로 자기 중심과 균형을 잡고 편향된 이념과 정치선동에 쉽게 휩쓸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황야에 홀로 섰다는 외로운 느낌이 있더라도, 굳건히 자신을 세우고 좌, 우 이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학습능력의 배양>, 그리고 <미래에 대한 낙관적 확신>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여러분은 현재의 큰 위기를 엄청난 기회로 전환하여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빛나는 세대가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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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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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소동

삶의 단상 2021. 9. 13. 06:18 |

                   I.

한 달 전 쯤이다. 저녁 어스름에 효소 항아리들 근처에서 거뭇한 물체가 보이는 듯 해서 가까이 다가갔더니 웬걸 큰 개 같은 놈 하나가 놀라 나를 스치고 도망을 갔다. 옆구리를 그냥 조금 스쳤는데도 꽤 묵중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깜짝 놀라 도망간 쪽으로 눈을 돌리는데, 뒤를 따라오던 내 처가 큰 소리로 멧돼지야!”하고 소리쳤다. 이미 저만치 달아난 놈의 뒷모습을 보니 중간 크기의 멧돼지가 틀림없었다. 그 순간 나는 멀쩡하던 다리가 풀려 엉거주춤 그 자리에 반쯤 주저앉았다.

 

                   II.

이후 일주일간 우리 집 효소 항아리들은 큰 수난을 당했다. 지난 두 해 동안 수확해 담그어 놓은 블루베리, 오디, 보리수, 매실의 효소 항아리(항아리라기 보다 독이라 불러 마땅한 제법 큰 규모의 옹기) 아홉 개 중 다섯을 깨고, 그 내용물을 포식한 것이다. 경위는 이렇다. 내가 멧돼지와 조우한 다음 날 아침, 나가 보니 블루베리 항아리 두 개가 땅에 나동그라져 있었고, 깨고 먹다 남은 내용물들이 밖으로 흘러나와 주변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그 큰 독을 어떻게 넘어뜨리고, 더구나 그것을 깰 수 있었을까.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 놀랍기 그지없었으나, 멧돼지의 둔중한 몸집과 입 밖으로 돌출한 날카롭고 발달한 송곳니를 떠올리며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후 하루씩 걸러가며, 오디, 보리수, 매실 효소 항아리를 차례로 작살을 냈다.

그 한 주일 동안 우리도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첫날 블루베리 두 독이 무참히 깨진 후, 나머지 독들 주변에 제법 큰 철 사다리 두 개로 방어벽을 치고 그 사이사이에 크고 작은 장애물을 옮겨 놓았으나, 멧돼지 떼의 막강한 위력에 별로 힘을 쓰지 못했다. 일 주일이 되던 날, 나는 할 수 없이 남은 네 독 속의 효소액들을 일일이 걸러서 여러 병에 옮겨 담아 창고에 저장했다.

 

매년 수확한 블루베리, 오디 등 중 품질이 좋은 놈은 제때 먹거나 냉동 저장하고, 나머지 일부는 쨈을 만들고, 그리고 반쯤 남은 것은 효소로 담가 저장한다. 그런데 2 년전 고성 산불로 효소 항아리 10여 개를 날리고, 그 후 지난 두 해 동안 공들여 저장한 효소들이 이번에 수난을 당한 것이다. 장독대에 십여 개의 간장, 된장, 고추장 독들은 모두 멀쩡한데, 유독 이들 효소 항아리들만 집중 공격을 받은 것은 이것들이 달콤하고 맛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시골 살며 겪게 되는 이색 체험이거니 하고 그냥 웃으며 넘기려는데, 내 처는 그게 아니었다.

아니 지난 2년간 블루베리, 오디 농사의 반은 날라갔잖아. 그 옹기값만 해도 얼만데!”

푸념이 만만치 않다.

 

                        III.

시골마다 야생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해마다 늘어간다. 그런데 비교적 우리 동네는 그간 멧돼지 피해가 크지 않았다. 더욱이 고성 산불로 집 뒤 소나무 숲이 초토화된 후, 근처에 멧돼지가 서식할 곳이 마땅치 않아, 멧돼지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지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기 며칠 전, 새벽에 농터에 나가보니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제법 큰 짐승 발자국이 여러 개 있었다. 크기로 보아 자주 보는 동네 개나 고라니의 그것은 아니었다. 의아했지만 그냥 잊고 넘겼다. 그런데 이번에 멧돼지 소동을 겪게 된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멧돼지 위험이 늘 있었고, 그에 따른 일화도 적지 않았다.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멧돼지와 풍산개와의 혈전 이야기다. 10년 전에 들은 얘기인데, 이웃 동네 어른 한 분이 새벽에 풍산개 둘을 데리고 우리 집 뒤 소나무 숲속 산책을 나갔다가 멧돼지를 만났다고 한다. 곧장 싸움이 벌어졌는데, 피 튀기는 치열한 혈전이었다고 한다. 개 주인이 독려하는 가운데, 풍산개 두 마리가 멧돼지를 앞뒤에서 협공하는 바람에, 처음에는 판세를 압도하던 멧돼지가 끝내 뒷걸음을 쳤다고 한다.

실은 나도 멧돼지를 아주 가까이서 본 경험이 있다. 7, 8년 전이다. 차로 내 처와 고성 세계 잼버리 수련장 근처 호젓한 산길을 가다가 가까이서 질주하는 검은 갈색의 야생 멧돼지를 보았다. 가히 200 Kg는 넘을 듯한 큰 놈인데, 목에서 등에 걸쳐 빳빳한 털을 곤두세우고 옆으로 삐져나온 송곳니를 들어내고 무섭게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가쁜 숨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큰 몸통을 짧은 다리로 지탱하며 폭주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차 안에 있었는데도 공포스러웠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IV.

멧돼지 소동 며칠 후, 원암리 이장님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내용인 즉, “혹시 밤에 총소리가 나도 놀라지 마십시오. 멧돼지 피해가 커서 엽사 한 분을 모셨습니다였다. 그러나 이후 한 밤중에 총소리도 없었고, 동네에 멧돼지 피해 소식도 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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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남수 2021.09.17 18:38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총리님 시골살이 이야기가 참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이구요. 새 집에서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기길 빕니다.

  2. 김익로 2021.09.23 21:36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총리님!!!

    추석명절 잘 보내셨어요?
    긴 연휴도 훌쩍 지나가고 말았어요

    멧돼지 소동을 읽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나마 다치는 사고가 없었음이 천만다행입니다
    저도 시골 출신이라 멧돼지 생리를 좀 알고 이런저런 목격담 등을
    갖고는 있음니다만~~~ 부총리님의 경우와 같은 경우는 생소하고 좀 특별하네요!!!
    애써 농사지은 수확물인데다 한참 발효가 잘 되어 귀한 약이 될 판인데~~~
    사모님께서 많이 놀라시고 속 상하셨을 것 같아요
    조만간 전화라도 드려서 위로를 드려야 겠습니다
    시골살이 액땜을 크게 하셨다 생각하시고 마음을 편안히 가지시길 바랍니다!!!

    부총리님!!!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졌어요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라오며~~~ 문안 올리옵니다!!!
    김익로 올림

  3. 현강 2021.09.24 14:2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당시 꽤 놀랐던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처음 시골생활할 때는 집과 농터 에서 자주 뱀을 만났는데, 그 때 마다 깜짝 놀라 급히 피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자주 접하다 보니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냥 살펴 봅니다. 그러면 언제나 제놈이 먼저 피합니다. 산불 이후 뱀도 찾아 보기 힘듭니다.

빠르면 내달 중순쯤 내 새 에세이 집 <인생 삼모작>이 <21세기 북스>사에서 출간된다. 부제는 '세 못자리에서 거둔

중도주의적 생활철학'이다. 여기 우선 그 머리글인 '글 머리에'를 선 보인다. 

 

I.

서울태생인 나는 젊은 시절부터 언젠가 노후에 시골에 가서 다른 삶을 살아 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15년 전 정년퇴임에 앞서 마지막 학기가 무섭게 이곳 속초/고성으로 내려왔다. 처음 2년 가까이 속초에 살다가, 이후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로 옮겨 와서, 한여름에는 농사짓고, 겨울에는 글 쓰며, 남들이 다니는 큰 길가에서 얼마간 비켜서서 한적하게 살고 있다.

 

인공()의 작품인 거대도시를 떠나, 중간단계인 소도시를 거쳐 마침내 자연의 품인 농촌에 연착륙하면서 내 삶의 양식도 많이 변했다. 평생 책상머리나 지키던 내가, 땀흘려 노동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일상에서 배우는 게 너무나 많다. 무엇보다 나라의 동북쪽 끝 변방에서, 아늑한 자연에 파묻혀 바깥세상을 멀리 조망하며 사색한다는 것은 내겐 무척 신선한, 그리고 얼마간 경이로운 삶의 체험이다. 내가 이곳에 자리 잡은 후 자주 <인생 삼모작>을 되뇌며, 특히 지적, 예술적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노후의 자연의 품은 엄청난 영감과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말해 온 것도, 이 산 경험에서 우러난 내 나름의 메시지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랄까. 재작년 여든 문턱에서 고성산불로 하루아침에 내 삶의 기둥이자 학문의 보금자리였던 <현강재(玄岡齋)>가 소진되었다. 불길 속에 잔해만 남은 집터와 초토화된 주위 환경을 보며, 나는 망연자실, 크게 좌절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러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하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불탄 자리에 새집을 지었다. 그리고 내 삶도 새로 짓기로 마음을 정했다. 나를 무섭게 짓눌렀던 산불의 악몽에서 벗어 나는데 농사일이 큰 몫을 했다.

 

II.

내가 살아 온 지난 8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면, 천지개벽에 견줄만한, 격동의 연속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해방의 환희와 전쟁의 아픔을 겪고, 한국역사의 가장 역동적인 시간인 산업화와 민주화의 험난한 도정을 함께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크게 바뀌어 1차 산업 위주의 농경사회에서 이제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이르렀고, 향리문화에 젖어있던 우리네 의식세계도 이제 글로벌리즘을 겨냥하고 있다. 단언컨대, 한 생애에 이처럼 극적인 역사적 소용돌이, 온갖 영욕과 명암을 고르게 체험한 세대는 일찍이 없었다.

 

나는 사회과학자는 책을 통해서 보다, 삶의 과정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며, 삶 속에 용해되지 않은 사회과학적 지식은 겉핥기, 흉내 내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신산(辛酸)한 세월이었지만, 내게 다양한 사유()와 공부 밑천을 마련해 준 파란만장하고 변화무쌍한 지난 시대에 대해 내심 고마운 생각이 없지 않다. 돌이켜 보면 그간 내가 겪은 세상 모든 게 내게 알찬 공부거리가 아니었나 싶다.

 

나는 젊어서 유럽의 작은 중립국에 유학해서 새로운 세계, 3의 관점을 익혔고, 오랜 학자생활을 거쳐 민주화 이후 두 번 국정에 참여해서 내가 익힌 이론을 실천의 장에서 검증하는 값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이제 황혼 녘에 자연으로의 귀의를 통해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 나의 중도주의적 삶의 철학도 이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III.

10년쯤 전에, 제자인 연세대 정무권 교수가 내게, 세 번째 못자리인 속초/고성에서 건져 올린 사유의 편린을 그때그때 글로 옮겨 보라며 손수 블로그를 만들어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도 참 고마운 일이다. 이후 나는 이곳에서의 삶의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갖가지 단상(斷想)들을 한땀 한땀 정성스레 수놓는 심정으로 내 블로그에 올렸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그 대부분이 그간 그렇게 <현강재>(https:// hyungang. tistory.com)에 올렸던 글 중에서 가려 뽑은 것들이다.

 

이 글들은 대체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쓴 산문 형식의 글들인데, 그 주제들을 보면 내 생활 주변의 소소한 작은 이야기부터, 비교적 무거운 정치. 사회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무척 다양하다. 그리고 시간상으로도 내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전 생애에 걸쳐 있다. 모든 글이 데드라인의 압박 없이, 마음에 내켜 쓰고 싶을 때, 머리와 가슴에 와닿는 주제에 대해, 마치 창공을 나르는 종달새처럼 자유롭게, 그리고 먼 들판을 바라보는 허허로운 심경으로 부담 없이 쓴 글들이다. 그러다 보니, 이 책 속에 부지불식간에 내 평소의 생각과 관점, 내 세계관, 그리고 내 전 생애가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이 책을 펴는데,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우선 솔선해서 출판사를 주선해 주신 알라딘의 조유식 사장님과 책 출판을 허락하고 모든 편의를 보아주신 김영곤 사장님과 신승철 이사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온갖 정성을 다해 책을 멋지게 꾸며주신 함성주 시인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아울러 손수 글 전편을 정성껏 읽고 교열과 더불어 세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제자 연세대 양재진 교수께도 마음속 고마움을 전한다.

 

천생 도시여자인 그녀가 먼 시골까지 따라와 나와 <인생 삼모작>을 함께 하며, 병약한 몸으로 아마도 그녀의 마지막 건축작품이 될 새 <현강재>를 짓는데 온갖 고생을 다 한 내 반려자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218

멀리 울산바위가 보이는 <현강재>에서

 

안병영

 

 

안병영_210902표지--.pdf
8.87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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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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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보령 2021.08.28 08:47 Address Modify/Delete Reply

    다음 달 중순에 출간 예정인 "인생삼모작"이 서점에 나오는 대로 구독하겠습니다만 출판기념회가 있으면 찾아뵙고 축하드리려 하오니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 보령 드림.

바닷가에 나가

포토갤러리 2021. 7. 23. 17:30 |

 

 

 

 

며칠 전 딸 내외와 둘째 외손자가 고성 새집을 찾아와 함께 바닷가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딸이 사진을 찍어 보내 올려 본다. 내가 보아도 사진이 실물보다 젊게 나왔다. 15년 전 내가 속초/고성에 처음 내려 올 때 몸무게가 84 Kg 이었는데 지금은 71 Kg이다. 그간 해 마다 1Kg 정도씩 줄어 들었는데, 아마 농번기에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얼굴도 많이 탔는데, 이제 8월말이면 더 새까맣게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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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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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찐팬 2021.07.29 20:48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I.

얼마 전 옛 제자 J가 찾아왔다. 그는 86학번으로 당시 내가 개설한 5개 과목을 모두 수강했던 자칭 내 열성팬인데, 그와 지난 얘기를 주고받다가 대화는 1980년대로 돌아갔다. 그는 내 정치적 관점과 관련해서 아래의 질문을 던졌다. 나는 허심탄회하게 그에게 답했다. 그 대화 내용을 가감 없이 여기에 담는다.

 

II.

J: 1980년대는 질풍노도의 시대였습니다. 특히 80년대 중후반 대학에는 급진적 변혁 사상이 풍미하고 있었지요. 저는 86년에 학교에 들어 왔는데, 마음속으로는 사회주의 이상에 끌렸지만, 현실 사회주의는 물음표였습니다. 북한 사회주의는 물론 동구 공산주의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교수님의 동구공산권체제변동강의를 들으며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죠. 그런데, 그때 다른 많은 친구들은 변혁이란 이름하에 꽤나 급진화되었었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전두환 정권에 대항해 교수 서명을 주도하며 체제 민주화에 앞장 스셨지만, 학생 운동권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선생님은 양쪽에서 배척받으셨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떠셨어요?

 

: 그때 얘기를 하자면 할 말이 많네. 말이 조금 길어지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당시 흐름을 주도했던 학생집단들이 훗날 386 운동권으로 불렸는데, 이들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급속도로 급진화되면서 민중민주파(PD)와 민족해방파(NL)로 나뉘어 각축하다가, 급기야 NL계의 주사파가 크게 부상하기에 이르렀지. 나는 80년대 학생 운동권이 그 폭발적 기세와 충격으로 한국의 체제 민주화에 기여한 점은 십분 인정하면서도, 이제 그들이 잘못된 길에 접어들었다고 직감했지. 그래서 고심 끝에 1987년에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변론>(전예원)을 펴냈네. 그 시대에 대학가의 금기어인 <자유><자유민주주의>를 앞세운 내 책에 대한 운동권의 분노는 대단했지. 늘 체제 비판적이었던 내가 자기들 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들의 적이었다는 배신감 같은 게 폭발한 거지.

나는 곧장 연세대 사회과학대학 꼭대기 대형 종합강의실로 소환되어 수 백명 학생들과 1시간 여 동안 격론을 벌렸네. 처음에는 심문에 가까웠지. 그때 나는 학생들에게 자네들이 오랫동안 자유민주주의라는 파랑새를 쫓다가 권위주의체제의 질곡 아래서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으니, 이제 그에게 모질게 돌팔매를 하고 있다네. ‘자유를 뺀 민주주의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고, 그것은 끝내 전체주의로 전락한다는 점을 명심하게나고 엄중 경고했지. 적지 않은 학생들이 내 입장에 큰 소리로 항의하며 자리를 떴지만, 반 이상이 끝까지 남아 내 얘기를 경청하고 끝내는 박수를 쳐 주며 공감을 피력했네. 그때 내가 절감한 것은, 많은 학생들이 운동권의 변혁논리와 급진 처방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자신들의 생각이 아직 여물지 못해 머뭇머뭇 그에 추종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바른 소리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네. 이후 나는 강의시간에 운동권 학생들을 향해 자주 아래와 같은 얘기를 했네.

생각해 보게나. 자네들은 지금 세계의 시계와 반대 방향으로 달리고 있네. 세계 곳곳에서 현실 사회주의, 즉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굉음이 들리지 않나.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체제개혁의 신호탄을 올렸고, 대부분의 동구 공산주의 국가들도 그 뿌리가 흔들리고 있네. 그런데 자네들은 역사상 가장 일탈적인 북한 공산주의체제와 그 주체사상에 빠져 그 잘못된 길을 우리의 살길이라고 생각하니 이게 될 법한 일인가.”

세상에는 인류가 만들어낸 명품 국가들이 많이 있네. 스웨덴을 보게나. 그 나라는 자유와 평등, 복지 모든 면에서 세계의 최 일류국가이네. 그런 체제 모형은 자네들 눈에 보이지 않나? 그런데 북한은 어떤가. 자유, 평등, 복지 그 모두에서 세계 최악의 상황이고, 백성들은 바깥 세상과 절연된 채로 무소불위의 독재권력 아래서 신음하고 있네. 그런데 왜, 어째서 그 열악한 체제와 그 거짓 이념이 자네들의 희망의 푯대가 되어야 하나

내가 그렇게 말하면, 몇몇 학생은 항의의 표시로 자리를 떴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내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고, 그들의 눈빛에서 공감의 물결을 느꼈네.

내가 이미 1970년대에 북한에 대한 개척적 연구에 앞장을 섰고, 1980년대에 들어 비교공산주의 연구에 집중하면서 1982<현대공산주의연구>(한길사)를 펴냈으므로, 감히 나와의 이론적 논쟁을 꾀하는 운동권 학생들은 없었네.

나는 많은 궁리 끝에 학생들에게 시대적 진실을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1988년에 전교생 대상으로 동구공산권체제변동이라는 강의를 개설했네. 이 강의를 통해, 소련 및 동구권은 이미 몰락의 길에 접어들었고, 현실사회주의(공산주의)는 끝내 역사적 대실패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기회 있는 데로 북한 공산주의체제의 추악한 실체와 주체사상의 허구성을 파 해쳤네. 학생들이 종합관 대형 강의실을 가득 채웠던 기억이네. 당시 나는 학교에서 교무처장을 맡고 있어서 무척 바쁘고 쫓겼지만, 이 강의 때는 늘 힘이 솟았지. 물론 한 번도 휴강을 하지 않았네.

 

J: 저는 교수님이 학생들과 논쟁을 하실 때 종합강의실에 없었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제가 거기 있었으면 끝까지 자리 지킨 학생이었을 거에요. 그런데 여기서 제가 무척 궁금한 것은 이들 운동권 세력은 이후 사회 곳곳으로 펴졌고, 민주화 이후, 정치에 대거 참여해서 특히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무척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이들은 아직도 그들의 옛 사상에 집착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사람은 안 바뀌는 것일까요? 아니면 바뀌지만 이미 그것을 극복한 사람들은 배척된 것일까요?

 

: 그거야 어디 한마디로 답할 수 있는 얘긴가. 개인차도 워낙 클 터이니까. 그러나 그들도 자신들이 한 때 세계의 시계에 역주행 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았겠나. 한국적 특수성을 십분 고려한다고 해도 당시 그들은 분명 우물 안 개구리였네.

그러나 그들은 비록 길을 잘못 들었지만, 당시 그들이 추구했던 체제 민주화와 민족 통일에 대한 열정과 집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 중 얼마는 아직도 당시 그들이 천착했던 반미’, ‘친북의 정치적 성향은 물론, ‘민중민주주의’, ‘민족해방등의 중심 개념에 대해 얼마간 미련을 가지고 있겠지.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미 나름대로 그간 변화된 상황에 적응하고 있다고 보여지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의 역할이네.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이들이 정치행태를 면밀히 관찰해서. 그들이 잘못된 길로 접어들 때 가차 없이 단죄하고, 바른 길을 찾아 갈 때 그들을 격의 없이 응원하는 것이네. 한 때 운동권이었다는 팻말만 보고, 손뼉치거나 배격해서는 안된다고 보내.

 

J: 교수님은 한때 노무현 정권에서 장관으로 일하셨잖아요. 그 때 청와대에 있던 386 운동권들은 어떠했나요?

 

: 당시 386 운동권들이 수적으로 적지 않았고, 그들의 관여의 폭이 넓었던 것이 사실이지. 그런데 나는 그들을 일일이 의식하고 일을 하지 않았네. 그래서 가끔 부딪혔고, 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지. 그런데 다행스러웠던 것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그들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네.

 

J: 그렇다면, 이미 586으로 불리는 운동권과의 관계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 글쎄, 이건 얼마간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리더십 간의 가장 큰 차이는 학습능력의 차이라고 보내. 내가 본 노무현 대통령은 학습능력이 뛰어난 정치가였네. 노무현 정부의 초기와 후기, 특히 말기에 정책지향을 보면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지. 노무현 정부는 처음에는 상대적으로 이념성이 강했고, 경직된 정책지향을 보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실용주의적이며 유연한 방향으로 바뀌었네. 그 때 나는 혼자 저 양반, 외국에 한번 나갔다 올 때마다, 생각이 열리는군이라고 생각했지. 그는 주위에 운동권을 많이 거느렸지만, 그들에게 포획되지 않았고, 그들을 적절히 제어했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은 분명 차이가 드러나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지향을 보면, 대단히 이념적이고, 경직적이네. 그리고 한번 집착하면 바꿀 줄 모르네. 문재인 정권의 정책 실패의 대부분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네. 정책 중 많은 것이 때 지난, 정제(精製)되지 않은 이념에서 비롯되었는데,  나는 그 때마다 586의 운동권의 강한 입김을 의식할 때가 많네. 실제로 많은 이가 궁금해 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행태가 (우리가 몰랐던) 그의 본래의 모습인지, 아니면 그가 586 운동권의 포획되어 그들에게 끌려가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네. 만약 그것이 주로 운동권의 영향력 때문이라면, 1980년대에 시작한 급진 학생운동권의 철지난 세계관이 아직도 한국 정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게 아닌지.

 

J: 조국 전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였던가요?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더군요. 누구나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사상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자체는 문제가 아닌데, 국가 경영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동경한다는 것은 역시 큰 문제라고 봅니다. 게다가 NL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아서요. 친북, 친중, 시장 배척 국가주의, 반일 민족주의 같은 정서가 외교와 경제정책에 은연중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돌이켜 보면, 후반기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경향과 단절하였고 좌파로부터 좌측 깜박이 켜고 우측으로 간다고엄청 비판을 받았고 지지기반이 붕괴되었었지요. 문정부는 좌파로부터 비판받는 일은 없게 하다 보니 지지율은 유지되는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국기가 흔들리는 거 같아요. 교수님 생각은 어떠세요?

 

: 나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폭넓게 이해되어야 하고, 유럽의 사민주의도 당연히 그 안에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네. 그런데 한국의 진보세력들 중 많은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를 소아병적으로  거부하면서 이를 적대시하는데, 이는 무지의 소치이네. 현대의 다원적 민주주의는 자유를 근간으로 하고 있고, 이를 부정하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네. 우리가 마땅히 자유와 더불어 추구해야 할 평등도 국가의 힘을 바탕으로 강제되어서는 안되고, 당연히 자유의 너른 품안에서 싹터야 제 빛을 발할 수 있네.

시장경제의 개념도 마찬가지네. 현대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면서, 정부가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억제하고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일정부분 경제에 관여하는 혼합경제체제(mixed economic system). 현대 복지국가도 바로 그 틀 속에서 이룩된 것이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을 시장경제를 보다 공정하게 가꾸는데 쏟아야지시장경제 개념 자체를 적대시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인 관점이네. 세계화 시대에 시장경제와 척을 지면서 어떻게 국가를 경영한다는 얘긴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위정자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개념과 그 현대적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J: 문재인 정부 초기 헌법개정안 만들면서, 헌법 전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빼고 그냥 민주주의만 넣고서는, 그 이유를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도 포괄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한 게 기억납니다. 문 정부 사람들의 편협함과 무지함에 놀랐었습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평등과 함께 부르조아 민주주의라고 비아냥 받았던 그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혁명적 공산주의자들과 치열하게 싸운 역사는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인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전통 사회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기반하에 복지국가 건설에 나섰는데, 교수님은 우리나라에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세요. 특히 제3의 길 같이 현대화된 사민주의가 가능할까요?

 

. 내가 1980년대에 강의시간에 자주 유럽의 사민주의를 소개했던 것을 기억하나. 브란트, 크라이스키, 팔메가 주도했던 1970년대 유럽의 사민주의는 내게 하나의 경이였네. 그들의 건강하고 미래지향적 진보주의가 바로 유럽을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벗어나 현대 복지국가로 전진하게 만든 추동력이었네.

나는 늘 한국의 진보세력이 보다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네. 그런데 한국의 집권세력이 아직도 레트로의 수렁에 빠져 <해방공간>의 좌우대결에서 패배했던 한을 되씹으며, 기회있을 때 마다 한국 현대사를 고쳐 쓰는 데 집착하는 것을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훼손되고, 그들 자신도 함께 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신적 기반이 약화된다면, 거기서 얻을 것이 무엇인가. 한국의 현대사, 즉 경이적 산업화와 민주화의 역사는 피땀 흘려 좌, 우가 함께 이룩한 보람찬 역사이고, 굳이 따지자면, 산업화에는 보수정권의 기여가 훨씬 더 컸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대우받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나는 유럽의 진보세력인 사민주의가 추구하는 좌. 우의 이념을 초월하는 실용주의적 중도좌파노선, 이른바 3의 길은 바로 우리 진보세력이 추구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네.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총리시절(2003) ‘아젠다 2010’으로 불리는 노동개혁을 포함한 총체적 국가개혁을 추진하여, 통일후유증으로 경제부진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독일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것을 배워야 하네. 그의 개혁정치가 소속당인 사민당과 자신의 견고한 지지기반인 노동계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루어진 것이기에 더 값진 게 아니었나. 슈뢰더는 그 여파로 2005년 선거에서 패배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네. 한국의 전직 총리가, 인기와 거리가 멀지만 꼭 필요한 국가개혁과제들을 외면한 채, 거침없이 <20년 집권>을 공언하며, 권력의 영속화를 겨냥했던 것과 얼마나 큰 차이인가

자네도 알다시피, 그간 줄기차게 자기 쇄신노력을 했던 유럽의 사민주의도 요즈음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나. 그런데 아직도 '레트로'의 폐쇄회로에 갇혀 보수격파에만 온 힘을 쏟는다면, 그들은 이미 미래세력이 아니네.  

나는 이른바 586 운동권이 그들이 젊은 시절 지녔던 보다 나은 세상을 겨냥한 변화에 대한 의지와 열정, 그 순수한 '원형질'을 바탕으로 더 건강하고, 미래지향적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을 기대하네. 그들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기득권층으로, 시대에 뒤진 <꼰대>, 패거리 싸움과 권력영속화에만 집착한다면, 한국의 진보세력의 장래는 암울하다고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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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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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윤주명 2021.07.23 09:56 Address Modify/Delete Reply

    교수님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선거를 앞두고 당선되면 돈주겠다는 공약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여기에 혹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러자면 다른 후보들도 다 유사한 공약을 내걸 것같습니다. 이래도 괜찮을지 걱정이 됩니다.

  2. 이보령 2021.07.24 16:39 Address Modify/Delete Reply

    경모재는 저의 배움터입니다.
    오늘도 "586 운동권과 한국정치"에 대한 옛 제자분과의 대담을 통하여 많이 배우고 갑니다. 늘 건강 하시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지기를 빕니다.

  3. 김익로 2021.07.26 00:02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총리님!!!
    그간도 선강하시죠? 사모님도요?
    서울은 연일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무척 힘든 날이 지속되고 있어 걱정입니다

    제자님과의 시국에 대한 대화를 읽어보면서 부총리님께서
    처음 교육부장관님으로 오셨을 때 받은 책 중에서 "자유와 평등의 변증법"이라는
    책이 생각났어요
    그 첵 속에 정치권에 대한 비판과 제언, 그리고 통일문제, 학생운동 등에 대한 방향성 제시 등
    주옥같은 많은 내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해 봅니다
    벌써 약 25여년 전의 일이 됩니다만, 그때 그 책을 읽어보면서 제게는 생소한 개념으로
    느겼던 용어 중에서 문득 기억되는 '진영의식' '제3의 정치' 초기 월남인' 후기 월남인'
    '체제의 인간화(?), '적과 동지' ~~~ 등의 표현이 생각나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어떤 부분에서였는지는 희미합니다만 ~ '윤회는 있는데 변화는 없다(?)는 표현 -
    제 생각으로는 정치 권력자들의 행태를 정곡으로 질타하신 표현이었다고 이해하고~~ 가끔 저도
    핏대올릴 때 변형하여 어설프게 써먹곤 합니다만~~~ ㅎㅎㅎ
    정치인들의 고질적인 병증인 내로남불의 또 다른 질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정치권을 포함하여 다음세대를 위한 통일교육 및 이념문제 등에 대한
    전도사적 역활을 하셔야 겠어요
    명강사님은? 부총리님께서 맡으셔야죠?
    ㅎ~ 오늘은 제가 주제넘게 너무 나갔나요? 죄송합니다!!!

    부총리님!!!
    포토갤러리에 올리신 밝은 모습, 사진으로 뵙고도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늘 편안하신 마음으로 더위에 농사일 무리하시지 않으시길 소망합니다.
    늘 사모님과 함께 건강에 유의하세요!!!
    - 김익로 올림 -

이 글은 2021년 6월 30일, 프레스 센터에서 개최된 금강대학교 주최의 국제회의 "인공지능시대의 공공정책과 인성교육'에서 필자가 발표한 기조연설 내용이다. 

 

한국교육의 성찰: 성과와 과제

 

                                                       안병영(연세대 명예교수, 전 교육부총리)

 

1. 머리말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교육은 늘 상찬과 비판의 대상이었다. 한국교육은 특히 한국 밖에서 많은 찬사를 받아왔다. 그 대표적 관점은 우리나라가 비교적 짧은 기간에 경이적인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었는데, 그 추동력은 교육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2015년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세계교육포럼에서도 각국 대표들이 한결같이 한국교육의 수월성을 크게 조명했다. 그러나 한국교육은 특히 국내에서 마치 동네북처럼 온갖 경제적, 사회적 난국을 초래한 주범으로 신랄한 공격의 표적이 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인 것은, 많은 이가 우리 교육의 실패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도, 바로 그 교육이 우리 사회가 오늘의 질곡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미래 한국을 건설할 수 있는 창조의 샘이자 희망의 푯대라는 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나나 없이 한국 국민은 교육에 나라에 명운을 걸고 있다.

올해로 가히 한국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 1995‘5.31 교육개혁이 발표된 지 사반세기가 넘었다. 필자는 문민정부에서 5.31 교육개혁이 가장 세차게 진행되던 시기, 199512월에서 1월까지, 그리고 그 후 한참 뒤 참여정부 시절인 200312월부터 20051월까지 두 번 교육부 수장으로 재직했다. 필자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기서 보다 성찰적 관점에서 한국교육의 어제를 뒤돌아보고,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교육현실을 살펴본 후, 앞으로 한국교육이 추구해야 할 큰 방향을 논의하고자 한다.

구체적 논의에 앞서 교육과 교육정책에 관하여 필자의 기본 생각을 미리 피력하고자 한다. 교육은 정신적 영역을 포함하는 인간의 총체적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오래 걸리고 그 상호작용이 내면적이고 질적이다. 그 때문에 교육에서 이루어지는 투자는 투입된 자본의 회임기간이 길고, 그 결과를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므로 교육개혁은 일관성있게 정권의 수명을 뛰어넘어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지나친 정치논리나 이념적 가치의 투입은 피해야 한다.

 

2. 5. 31 교육개혁 그리고 사반세기

20세기 말, 우리가 경험했던 변화의 격랑은 그 진폭이나 심도에 있어 실로 미증유의 것이었다. 세계화, 정보화, 지식사회화라는 이른바 문명사적 전환이 급격하게 진행되었고, 특히 우리의 경우 최초의 문민정부 탄생으로 체제 민주화의 열망이 무척 높았다.

주지하듯이, 5.31 교육개혁은 기존의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의 권위관계에 기초한 위계적, 공급자 위주의 교육체계를 자율과 경쟁, 다양화와 특성화에 기초한 수요자 중심의 열린 교육체계로 바꾸는 역사적 작업이었다. 한마디로 한국교육은 바로 이 5.31 교육개혁으로 새 판이 짜여 졌다.

5.31 교육개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엇갈린다. 적지 않은 이가 이를 시대적 변화와 도전에 대응한 성공적인 교육개혁이라고 상찬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이를 신자유주의의 정화로 한국교육의 큰 흐름을 그르치게 만든 패착이라고 폄훼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5.31 교육개혁이 이후, 오늘까지의 한국교육의 큰 물줄기를 마련했다는 면에서, 그 줄기찬 생명력과 영향력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권은 미시적 차원의 수많은 교육개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이 분절적, 대증요법적 대응이었고, 대체로 5.31 교육개혁의 큰 틀이 그대로 유지되어왔다.

5.31 교육개혁의 창안자들은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한국이 생존,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가경쟁력을 제고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는 데 대체로 합의했고, 그 때문에 5.31 교육개혁의 정책지형이 시장기제의 활성화를 위한 환경조성과 이를 위한 교육의 수월성 제고에 얼마간 편향되어 있었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는 5.31 교육개혁이 지닌 강점이자 그 한계이기도 하다.

5.31 교육개혁에서 비롯된 한국교육의 개혁은 적지 않은 교육적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학교환경 등 교육여건의 획기적 개선과 교육정보화의 진척, 학교민주화의 진전, 그리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의 제고, 대학경쟁력의 강화 등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업적은 한국교육을 질적으로 크게 개선해서, 적어도 경쟁력의 측면에서 우리 교육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선진국에 반열에 오른 게 틀림없다.

그러나 5.31 교육개혁이 추구했던 자율과 경쟁도 이후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다양화와 특성화를 통해 대학 서열구조가 완화될 것을 기대했으나, 그 역시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문민정부의 교육개혁 과제 중 성안과정에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던 교육자치제도 개혁도 여전히 미완의 문제로 남아있다. 평생교육과 직업교육의 성과도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식교육, 입시교육의 강고한 틀도 그대로 잔존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한국교육은 5.31 교육개혁 이후 사반세기가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오래 응어리진 뿌리 깊은 교육난제 중 어느 하나 속 시원하게 풀린 게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학벌주의와 승자독식과 같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요인과 집단의식이 크게 작용했고, 교육자치의 매개가 되어야 할 중간조직의 부재 등 외적 요인에 기인한 바도 큰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우리 교육이 그동안 과도하게 지식교육, 경쟁교육에 치중하다 보니, 학교에서 학습의 즐거움은 사라진지 오래고, 인성교육은 한갓 수사에 머물고 있다. 그런 가운데, 교육의 첫 번째 목표인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데 크게 실패했다는 뼈아픈 비판을 받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육이 오늘의 초라한 모습으로는 21세기 새 한국을 건설하는데 명분이나 역량 모두가 크게 부족하다.

그런 가운데, 크게 우려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이념적, 정치적 양극화는 계속 심화되었고, 그것이 계속 우리 교육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간 교육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못하고 계속 교착되었던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 바가 크다.

거시적 교육개혁은 주요 정치세력 간의 역사적 대타협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데 치열한 이념적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된 현재의 시점에서 과연 주요 교육쟁점에 관한 대타협이 가능할지 회의적인 생각이 앞선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래에서 언급하게 될 다수의 시대적 도전에 직면하면서, 이미 문제해결을 상실한 지난 시대의 제도적 유산에 그대로 매달릴 수만은 없는 것이 아닌가.

 

3. 한국교육에 대한 새로운 도전들

1) ‘학생절벽의 충격

인구감소와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 교육에 큰 충격을 가하고 있다. 그 직접적인 영향은 학령인구의 감소, 한마디로 학생절벽으로 나타나고 있다.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문을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초. . 고에 그치지 않고 대학 입학자원의 고갈로 이어져, 신입생 모집이 어려운 대학이 급증하고 있다. 때문에 대학의 정원감축과 한계대학의 퇴출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간 우리 사회는 인구증가와 지속적 경제성장에 익숙했고, 교육시스템도 인구와 경제의 성장을 전제로 하여 설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인구구조의 변화는 우리 교육의 작동원리(modus vivendi)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팽창지향의 교육체제로부터 감축 관리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줄어드는 인적 자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인적자원 관리체제를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점차 사라져 가는 작고 아름다운 학교들과 퇴출의 운명을 맞는 한계대학의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도 함께 기억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강구해야 할 것이다.

2) 4차 산업혁명의 도전

현재 우리는 인공지능으로 표상되는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미증유의 격랑과 만나고 있다. 그것이 비록 지식정보사회의 연장이라고 하나, 그 충격, 규모와 범위, 그리고 복합성에 있어 미증유의 혁명적 변화, 이른바 기하급수적 (exponential)’ 변화를 내포하고 있어, 우리가 살고, 일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않아 인공지능 기술은 단지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단계를 넘어 인간의 삶의 일부로 편입되는 포스트 휴먼(post-human)’ 시대가 도래할 것이며, 그런 맥락에서 어떤 이는 아예 인간-기계 복합체인 로보 사피엔스를 거론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의식적 주체로서의 인간존재 내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를 자아내게 할 것이다. 20세기 초, 인간소외가 크게 이슈화 되었으나, 이제 인류는 보다 본질적으로 인간성 상실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파괴적 쇄신(disruptive innovation)을 수반하는 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의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 많은 미래 조망과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워낙 불가측한 측면이 많아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고, 바로 그러한 점이 우리에게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더 키우고 있다.

포스트 휴먼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불가피하게 로봇에 대한 윤리적 기준을 부여하는 일을 수행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들을 인간의 수행능력 보다 월등한 AI, 기계 내지 장치에게 위임하려는 욕구와 필요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로봇에게 위임하고, 무엇을 대체할 것인가, 어떻게 하는 것이 보다 도덕적책임에 부합되는 것이냐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의 역할이 증가하게 되면 생산성과 효율성의 차원에서 놀라운 성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인간의 능력을 크게 확장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테크놀로지에 의한 노동자의 대체, 이른바 테크놀로지의 덫때문에 자동화가 용이한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크게 위협할 것이다. 이에 따라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적 불평등과 갈등은 더 심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함께 다짐해야 할 것은, 미래의 충격과 도전을 수동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보다 능동적(proactive)으로 그에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4차 산업혁명의 담론이 기술결정론의 틀에서 맴돌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과 사회의 역동적 상호작용 속에서 진행되는 일대 사회혁명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변화과정을 우리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기능적, 규범적, 분배적, 제도적 맥락에서 면밀하게 설계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인간이 가장 앞자리에 서는그런 미래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칫 기계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대체하고 세상에 휴머니즘이 사라지는 디스토피아(dystopia)’로 전락될 수 있는 심대한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렇다면 바야흐로 인공지능시대에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떤 인간을 길러내야 할가. 또 그들이 그들이 갖춰야 할 역량을 무엇인가.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한 최상의 학습형태와 핵심 커리큐럼은 무엇인가. 아울러 4차 산업혁명과 연관하여, 학교, 그리고 교사의 역할과 교사양성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요즈음 창의적 융복합 인재양성이라는 인재상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융합의 최적화, STEAM(Science, Technologyy, Engineering, Art, Mathamatics) 학습을 통한 교과 간 융합, 그리고 정보통신기술과 교육의 융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관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대체로 시대적 흐름에 잘 부합되는 것이나, 교육을 지나치게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수단화하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 덧붙여 우리 사회의 인간화라는 보다 본질적 목표에 대한 성찰과 지향을 교육과정에 투영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그동안 교육정보화의 초기 과정에서 발 빠른 대응으로 선도적 위치를 선점하여 많은 나라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IT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와 대학은 AI 교육에서 뒤져있어 우리의 선구적 위치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다른 주요 선진국들이 한결같이 AI 교육의 새 판을 짜는데 올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하고,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창의적 융복합’ + ‘인간화교육에 더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3) ‘코로나 이후’ ‘뉴노멀시대의 도래

코로나 19라는 미증유의 팬데믹은 우리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학습기회를 상실했고, 그 와중에서 학생들 간의 학력격차가 더 벌어지는가 하면, 사회적 관계가 소원해지는 등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역사상 처음으로 개학연기와 온라인 위주의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교 교육의 본질과 그 변화양상을 보다 되고 성찰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최근 팬데믹 이후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에 대한 논의가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이들이 코로나 19가 역설적으로 미래 교육을 크게 앞당겼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교사중심 지식전달 위주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머물렀던 교육현장에서 몇 가지 두드러진 변화가 태동하고 있다.

즉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이 혼합된 블랜디드(blended) 수업이 일상화되고, 교사의 역할이 종래의 ‘ teaching’ 위주에서 ‘coaching’으로 바뀌며,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을 활용한 개인 맞춤형 학습이 주류가 조짐이 보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학습자 중심 자기주도 교육이 정착될 것이 전망되고 있다.

무엇보다 팬데믹으로 인한 가시적인 변화의 하나는 학교현장에 IT 기술 등을 접목한 교육이 확산되면서 에듀테크(Education+Technology)’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디지털의 고도화, 가속화 과정에서 학교가 기술의존적 장치로 전락하지 않고, 학습자 중심의 자기주도 교육의 요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학교와 교사는 학생 개개인에 내재하는 자유의지와 창조적 자아를 최대한으로 발양할 수 있도록 전인교육의 관점에서 보다 주체적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4. 한국교육의 미래 과제

1) ‘이념화’, ‘정치화의 지양

이미 위에서 지적했듯이, 한국 정치의 양극화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념적 대결이 심화되면, 진보와 보수는 교조주의의 수렁에 빠져 흑백논리진리독점을 꾀하게 되고, ‘진영화가 깊숙이 진행되어 양측은 적과 동지로 갈라져 주요 이슈마다 격돌하고 정국은 교착되어 문제해결 능력이 실종된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교육 이슈의 경우 이념화’,‘정치화의 정도가 특히 두드러진다.

한국은 1987년 이후 정치적 민주화의 진척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아래서 정치가 행정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현상이 이미 상례화 되었다, 관료제의 과도한 정치화는 관료제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해치고, 이는 필경 그 정책역량 자체를 약화시킨다. 거시적 교육개혁의 틀이 마련된다 해도, 이를 책임지고 공정하게 집행할 관료제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면, 실효성있는 교육개혁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거시적 차원의 교육개혁을 시도하는 경우, 그 성공의 가장 주요한 열쇠는 정치권이 교육의 정치화’,‘이념화를 자제하고, 국리민복을 위해 교육을 정치의 도구로 삼는 일을 포기하는 일이다.

2)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와 균형

교육개혁의 규범적, 정책적 기조를 논의할 때, 늘 등장하는 개념이 수월성과 형평성이다. 보수 정권은 수월성 위주의 교육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며, 보수정권은 상대적으로 형평성을 중시하는 정책을 표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념적 성향이 짙은 정권일수록 그 편향의 정도가 강하다.

수월성과 형평성의 이러한 대조적 특성 때문에 많은 이가 양자의 관계를 이분법적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양자택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수월성과 형평성은 본질적으로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교육적 가치다. 따라서 둘의 관계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과 조화의 관계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교육레짐은 어차피 정책조합(policy mix)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3) ‘공존상생의 가치의 재인식

지난 세기말, 많은 이들은 시장기제의 활성화와 경쟁력 제고를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적 해법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는데 크게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1997IMF 구제금융과 2008년 세계적 규모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점차 많은 이들이 협력’, ‘나눔경제’ ‘협력적 공유체계(Jeremy Lifkin)’, 깨어있는 자본주의(John Machey), ‘공유의 비극을 넘어’(E. Ostrom) 같은 학자도 한결같이 공동체의 회복을 통한 자본주의의 한계 극복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근 제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도래로 미래사회에 대한 불확실성과 더불어 사회적 불평등과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의 심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우리 교육의 큰 방향도 시장기제의 활성화라는 기존의 역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영역에서 시장화와 테크놀로지의 심화가 가져올 어두운 그림자를 치유하고, 극복하는 역할을 강화하는 쪽을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우리 사회의 양극화, 학력의 세습화, 사회계층의 낮은 이동성 등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4) 인성교육의 강화

세계경제포럼이 일자리의 미래(the Future of Jobs)’를 통해 발표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주요한 10대 역량(복합문제 해결능력, 비판적 사고능력, 창의력, 인적자원 관리능력, 협업능력, 감성능력, 판단 및 의사결정능력, 서비스 지향성, 협상능력, 인지적 유연력)을 살펴보면, 그 모든 것이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과 연관된다. 특히 인성교육은 디지털 문명이 우리의 삶터를 디스토피아로 전락하지 않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방파제 구실을 할 것으로 본다.

필자는 인성교육과 창의성교육의 본질은 공감능력의 제고하고 생각한다.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배려, 협력, 돌봄, 상생의 정신을 실천하고, 우리사회를 공동체화, 인간화하는 데 기여한다. 공감능력은 또한 모든 상상력의 원천이며, 창조의 샘이다. 그러므로 공감능력의 배양을 통해 인성과 창의성이 바르게 만나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꾸는 미래교육은 그간 소홀히 했던 상생가치와 공감능력의 제고에 더 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이 미래사회에서 추구해야 할 최상의 기능으로 정서적 지능(emotional intelligence)’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제4차 산업혁명이 수반하는 주요 문제점들, 즉 로봇에게 윤리적 기준을 부여하는 일, 로봇에게 위임할 것과 대체할 것을 결정하는 일, 그와 연관된 도덕적 책임을 따지는 일, 그리고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보다 본질적으로 논의하고, 그에 대해 적절한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에듀테크로 무장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이에 더하여 인성교육이 필수적으로 큰 몫을 보태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제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가 몰고 올 사회적 불평등 문제와 학생절벽문제를 보다 인간답게 해결하는데도 인성교육은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주요한 인성교육이 왜 그동안 우리의 교육현장에서 뒷전으로 밀리고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졌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인성교육은 그때그때 시대가 절박하게 요구하는 개혁과제들에게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렸다. 5.31 교육개혁 방안 중에도 인성교육과 연관되는 개혁과제들이 적지 않았다. . 중등교육에서 학교공동체를 강조했던 것도 그 예이다. 그러나 그 과제는 학교 교육현장에서 교육정보화라는 보다 절박하고, 기능적으로 접근 가능한 개혁과제에 크게 밀렸다. 4차 산업혁명에서도 인성교육 강화는 필경 에듀테크의 거센 파고를 넘기 힘들 것이다.

또한 인성교육은 실제로 학교현장에서 지식교육, 입시교육, 그리고 지위경쟁이라는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그 필요성과 인식수준에 비해 실천수준이 낮고, 수사(修辭)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또 인성교육이 그 실천과정에서 크게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오랜 투자와 회임기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정책 성공을 위해서는 정권의 수명을 넘어 지속되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그 밖에도 인성교육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적 프로그램으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 인성교육은 대체로 지(知)ㆍ정(情)ㆍ의(意)가 조화롭게 도야된 전인(全人)을 추구하는데, 이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적절히 추출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성과를 측정하기는 더 어렵다. 따라서 인성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보다 심도있는 이론연구와 더불어 실효성 있는 사례 분석이 필요하다. 아울러 직접 인성교육에 나서기보다는 교육복지 등을 통한 우회로를 통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도 정책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인성교육은 이처럼 공공정책화, 프로그램화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그것이 보다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이 이슈가 사회적 담론에 그치지 말고,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결단과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5. 결론

우리가 한국교육의 오랜 숙제들, 즉 지식교육, 입시교육, ‘지위경쟁등과 더불어 새로이 대두되는 주요 도전들, 즉 제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이후’ ‘뉴노멀’, ‘학생절벽등에 바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거시적 차원의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새 거시적 교육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이념화’, ‘정치화의 지양, ‘수월성과 형평성의 조화’, ‘공존상생가치의 재인식, 그리고 인성교육의 강화가 필수적이다.

여기서는 특히 제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 사회가 디스토피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효성있는 인성교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아들러(A. Adler)는 인성교육의 요체로 공동체 감정(Gemeinschaftsgefuehl)’을 강조하면서, 이의 발현을 위해서는 적절한 지도와 훈련을 통한 의식적인 개발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인성교육은 비단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 사회구성원을 위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된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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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남수 2021.07.07 12:2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중요한 시기에 귀한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총리님 글을 읽을 때마다 늘 복잡한 상황이 명료하게 정리되는 것을 느낍니다. 건강하세요^^

  2. 이보령 2021.07.07 15:38 Address Modify/Delete Reply

    한국교육을 성찰한 값진 글 잘 읽고 교육의 중요성과 교육개혁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느껴보았습니다.

    이 글이 정부의 교육정책 결정권자와 그 참모들의 책상머리에 올려져서 한국교육에 대한 새로운 도전들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미래 과제로 제시한 4가지 과제를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밑그림이 잘 그려졌으면 좋겠습니다.

해당화 옆에서

포토갤러리 2021. 6. 7. 20:54 |

나는 사람보다는 자연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기를 즐긴다. 그러다 보니 나나 내 처의 사진들은 대부분 다른 이가 찍어 보내준 것들이다. 얼마전 나를 찾았던 제자 B 교수가 해당화 옆에 서있는 우리 부부를 핸드폰으로 찍어 보내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부부가 함께 사진에 오른 것은 실로 몇년 만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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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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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보령 2021.06.12 15:3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두분의 행복한 모습, 참 보기좋고 부럽습니다.

I.

나는 꽤 오래전부터 성공적 국정운영의 진수(眞髓) 이어가기쌓아가기라고 주장해 왔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 궤도에 올라 정권교체가 일상화되면, 이념과 정책기조가 달라도 앞선 정권이 이룩한 긍정적 성과는 다음 정권이 승계하고, 그 위에 새로운 성과를 덧붙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 역사가 쌓이고 나라가 발전한다.

물론 때때로 과거를 점검하고, 필요하면 누적된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이어갈 것과 버릴 것을 세심하고 공정하게 가려야 한다. 또한 그 변화의 수위가 체제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되고, 지난 정권이 이룩한 긍정적 성과까지 타기()하거나 뒤집어서는 안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는 독일이 아닌가 한다.

역사적으로 독일의 정치사는 오랫동안 정파 간의 치열한 반목과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실패와 반인류적 나치 정권의 폭정도 그러한 역사 속에서 잉태된 것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주요 정당 간 적정수준의 이념 및 정책 갈등을 통해 정치적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중도지향의 협치(協治)를 통하여 주요한 국가적 아젠다에 대해 폭넓은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된 데는, 서독의 첫 번째 정부인 아데나워(K. Adenauer) 정부가 자유시장경제와 사회적 개입주의 간의 화해를 추구하는 일종의 중도노선인 사회적 시장경제를 표방한 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후 독일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지난 정권이 거둔 업적과 성과를 슬기롭게 승계, 축적하여, 역사적 단절이나 반전 없이 명실공히 오늘의 유럽 제1국이 되었다.

이러한 체제의 이어가기쌓아가기는 특히 국가가 중대한 과제를 해결하거나 위기에 대응할 때 더욱 빛났다. ’라인강의 경제기적‘, 동서독 간의 화해와 통일, 금융위기의 성공적 극복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독일은 이러한 자랑스런 역사를 통하여 첫 번째 총리였던 아데나워로부터 직전 총리인 콜(H. Kohl)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빠짐없이 독일인의 마음속 명예의 전당에 성공적인 영웅상()으로 자리하고 있다. 축출, 탄핵과 수감, 자살 등으로 얼룩진 한국의 역대 대통령상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지 않는가.

 

II.

이어가기쌓아가기가 특히 요구되는 정책분야는 거시적, 장기적 관점에 입각해야 할 외교.안보와 교육부문이 아닐까 한다. 그 대표적 성공사례가 독일의 통일정책이다. 주지하듯이 독일 통일정책의 기조는 1969년 브란트(W. Brandt)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표방했던 동방정책(Ostpolitik)‘ 이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총리와 연정(聯政)의 파트너가 교체되어도 정책기조는 그대로 계승되었고, 다만 상황변화에 때라 얼마간의 조율과 보정(補正)이 있었을 뿐이다. 사민당(SPD) 출신의 브란트 총리가 단초를 연 동방정책은 1989년 기민/기사연합(CDU/CSU)의 (H. Kohl) 총리에 이르러 독일통일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성취하면서 그 위대한 결실을 거두었다.

브란트는 동방정책이라는 획기적인 정책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줄곧 서독 내 다른 정당들의 반향과 국민의 여론의 추이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고 그들과의 공감대를 확보하는데 큰 힘을 기울였다. 아울러 서방 동맹국과의 신뢰와 지지 확보에 추호의 흐트러짐이 없었고, 무엇보다 동방정책의 진척이 동서독 관계 개선을 넘어 유럽의 평화질서 구축에 크게 기여한다는 대의를 밝히고 명분을 쌓았다.

독일통일이라는 대미(大尾)를 장식하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콜 총리는 통일로 향하는 마지막 과정에서 17세 연장이자 한 때 정적이었던 브란트 전총리를 자주 만나 협의하고 자문을 구했다. 그런가 하면, 독일 통일과정에서 큰 몫을 한 겐셔(H.-D. Genscher) 외교장관은 장장 18년간 장관직에 머물면서 통일의 꽃을 피우는데 크게 기여했는데, 그는 독일의 거대 정당인 기민당도 사민당도 아닌 연정 파트너인 소수당 자민당(FDP)소속이었다. 그런데 사민당의 슈미트(H. Schmidt) 총리나 기민당의 콜 총리도 겐셔리즘(Genscherism)’이란 용어까지 탄생시킨 그의 발군의 외교적 경륜과 협상능력이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불가결의 요소라는 것을 익히 알았고, 그 때문에 그를 계속 품에 안았다. 그 뿐이 아니다. 브란트 총리의 분신으로 알려진 에곤 바(E. Bahr)는 브란트를 도와 동방정책의 핵심 개념인 <접근을 통한 변화>를 창안하며 그 실행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는데, 그 또한 브란트가 물러난 뒤에도  뒤를 이은 슈미트 총리, 콜 총리 밑에서 통일을 위한 임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이렇듯  정권을 초월하여 독일 통일정책을 중단없이 추진함으로써, 1990년 독일통일의 대업을 이끌어내는데 큰 몫을 했다.

이렇게 볼 때, 독일통일은 정파와 이념을 넘어서 이들 모두가 함께 참여한 장엄한 합주(), ‘이어가기쌓아가기의 아름다운 결실인 것이다.

 

III.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정권이 바뀌면 새 정부는 으레 기존 정권이 추진하던 주요한 정책들을 어김없이 뒤집는다. 개별 부처 차원에서도 전직 장관이 작심하고 추진했던 핵심정책을 별다른 논의 없이 파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정권이 바뀌기가 무섭게 느닷없이 등장한 새로운 경제정책이 기업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주체들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고, 교육정책의 잦은 변화가 교사와 학부모, 학생 모두의 가슴에 응어리를 남긴다. 발전을 위해 쇄신과 정책변화는 필요하다. 다만 단기적 관점, 정제(精製)되지 않은 이념이나 혹은 인기영합적 관점에서 시도되는 설익은 정책변화들, 특히 정책의 단절, 불연속, 그리고 반전이 문제다. 이들은 국가자원의 엄청난 유실과 낭비, 민생의 혼란과 결손을 가져온다.

우리의 통일정책과 그 동전의 다른 면인 외교. 안보정책도 그간 자주 바뀌었고, 적지 않은 반전도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정책성과가 축적되지 못하고, 국론도 자주 분열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한 간의 화해. 협력 및 평화구축 노력은, 남북한 간 높은 수준의 긴장 속에서 강경일변도로 일관하면서 통일대박’‘만을 외쳤던 박근혜식 통일. 외교정책에 비해, 한결 진일보한 모습이었고, 분명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서둘렀고, 표피적 평화와 가시적 성과에 집착하며 지나치게 북한의 눈치보기에 바빠 허둥대다 제 길을 잃었다. 그 결과 정작 우리 안보의 초미의 관심사인 북핵 및 미사일 문제나 북한 동포의 민생과 인권 문제, 그 어디서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미로에서 헤매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신 햇볕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보다 깊은 대화와 초당적 협력, 남남갈등의 최소화 및 국민의 공감대 형성, 그리고 미국 등 동맹국과의 빈틈 없는 공조와 국제적 다자협력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보다 긴 호홉으로 국내외 정책환경의 최적화를 기하는데 최상의 본보기를 보여 준, 브란트의 동방정책 추진과정을 면밀히 참고해야 할 것이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혁명의 지상명령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지난 두 보수정권에 대해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적폐청산 작업을 감행했다. 그 결과, 보수정권의 두 대통령과 사법부 수장을 비롯한 다수의 인사들이 영어의 몸이 되었고, 이들 정권이 시행했던 많은 정책과 사업, 그리고 그와 연루된 많은 고위 공직자들이 사법적, 행정적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앞선 보수정부의 국정운영 과정에서 각종 국정논단과 적폐가 적지 않았고 그 청산은 필요하다는데 많은 이가 공감했다. 그러나 적폐척결 기간은 가능한 한 짧아야 했고,  수위는 적절한 수준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그 목적과 용도는 나라의 미래를 밝히기 위한 불쏘시개이어야 했다. 그런데 철퇴를 가하는 정도가 과도하고 장기화되면, 또 그것이 정권의 이익을 위해 남용되면, 헌정체제를 구성하는 주요 제도와 기관, 그리고 정부 정책의 권위와 신뢰가 위협받게 되고, 이는 불가피하게 체제능력의 약화와 민심의 이반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어긋난 적폐청산의 깊은 수렁인 것이다. 현 문재인 정부가 앓고 있는 정치적 어려움의 큰 원인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고 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적폐청산은 자칫 재생산되기 십상이다. 그런 맥락에서 앞으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지난 정권에 대한 과도한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일이 아닌가.

 

IV.

미래는 역사의 단절이나 과거의 부정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더욱이 이념적 독선이나 <All or Nothing>, <적과 동지>의 준별(峻別)은 바른 미래로 가는 길을 차단하는 최대의 장애물이다.

에곤 바는 그의 책 <독일통일의 주역 빌리 브란트를 기억하다>에서 브란트의 세계관은 이것이냐 저것이냐(Entweder-oder)’식의 양자택일이 아니라, ‘이것과 마찬가지로 저것도 또한(Sowohl-auch)’에 상응했다고 술회한다. 그 때문에 브란트는 종종 정치적 야유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중도주의적 세계관은 국정운영의 이어가기’, ‘쌓아가기의 바탕이며, 독일 통일정책을 성공으로 이끈 추동력이었다.

 

거듭 말하거니와 역사는 생산적 승계와 축적의 산물이다.

 

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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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보령 2021.06.12 15:30 Address Modify/Delete Reply

    독일의 현대사를 논거로 국정운영의 `이어가기`, `쌓아가기`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가르쳐주신 값진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몇몇 카페와 카톡으로 지인들과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