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聯想)
I.
얼마 전 이제 50대 후반 깊숙한 나이, 초로(初老)의 내 딸아이가 내게 느닷없이 물었다.
“아빠, 혹시 아빠가 고집스럽게 강원도 산골에 20년째 사시는 이유가
얼마간 ‘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일종의 오기나 과시 때문이 아니세요?”
순간 나는 조금 황당하고 섭섭했지만, 그냥 덤덤하게 대답했다.
“얘야, 오기로는 2, 3년 견딜 수 있지만, 아마 20년은 버티기 어려울 게다”.
II.
그러면서, 내 뇌리에 문득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었다.
1963,4년 쯤, 한창 5.16 구데타 이후 군사정부 때였다. 내가 대학교 졸업한 직후 쯤이 아닌가 한다. 무척이나 답답한 마음으로 은사이신 고(故) 이극찬 교수님을 찾아뵙고 이런저런 시국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불쑥 이 교수님께 엉뚱한 질문을 드렸다.
“선생님, ‘사상계’에 글을 자주 쓰시고 함석헌 선생님과도 무척 가까우신 것으로 아는데, 저는 어째 그 분이 좀 위선자처럼 보여요. 그렇지 않나요?
그랬더니 이 교수님은 웃으시면서, ”아니, 왜?“ 하고 되 물으셨다.
그러자 나는,
”늘 긴 흰수염, 흰 한복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선지자 연(然)하시면서 묵시론적 메시지를 전하시는
품이 좀 그래서요.“라고 대답했다.
이 교수님은 얼굴에 미소를 띠우시고, 한 동안 가만히 계시더니 이윽고,
”안군, 내가 함 선생님을 오래 모셔서 잘 아는데“하고 운을 떼시더니,
”사람이 위선은 한, 두 번 하던가, 얼마간 하는 것이지, 평생은 못 하네“
라고 답하셨다.
* 아랫글(‘딸과의 약속’)을 참고하세요.
https://hyungang.tistory.com/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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