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에게
아랫글은 내가 두 번째 교육부장관 재직할 때(2003/12-2005/1), 약 5만 명의 ‘정책고객’(E-family)들에게 인터넷으로 보냈던 <부총리 서한문> 중 하나다. 이는 주요 교육정책 쟁점에 대해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 위해 시도했던 새로운 소통 방식이었다, 글 속에 내 교육관(敎育觀)과 당시에 교육 현안에 대한 나의 절실한 심경이 그대로 담겨 있다.
K형에게
제가 교육부장관직을 두 번째로 맡은 지 9개월이 조금 넘었습니다. 말이 아홉 달이지 하루 하루를 마치 천(千) 날처럼 힘겹게 보냈습니다. 언제나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고, 밖에서는 평온하게 보일 때에도 안에서는 매일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었습니다.
형(兄) 자존심에 저에게 미리 전화할 리 없고, 천상 내가 미리 연락을 드려야 마땅한데, 실은 그동안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간을 내어 요즈음의 제 어려운 심경을 형께 글로 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른 새벽 시간입니다. 혹시 제 사설이 좀 길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 일을 두 번째 맡을 때는 여간 모진 결심을 한 게 아닙니다. 한번 해 봐서 이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세상에서 교육열이 가장 치열한 나라, 전 국민이 교육전문가인 나라, 그뿐인가요, 국민 대부분이 교육과 연관하여 적고 큰 아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그런 나라에서 교육부의 수장을 맡는다는 게, 그것도 한번 본때 있게 잘해 보겠다고 나서는 게 얼마나 무모하고 미련한지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이 과중한 짐을 짊어졌던 것은, 이 일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추구하는 나랏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멍에임에 틀림 없지만, 다른 한편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게 더할 수 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일을 제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제 온 정성과 열정을 다하여 헌신 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요즈음 가끔 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성취감보다는 좌절과 위기감에 시달리면서 정말 누구에게 이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고 싶은 심경에 이를 때가 많습니다.
우선 힘든 것은 교육에 대한 주요 현안에 대해 우리 사회가 너무 나뉘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교육쟁점의 경우 여론이 반반씩 갈라지는 경우가 많고, 그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얼핏 보기에 교육문제는 탈(脫)이데올로기의 영역인 듯하지만, 실은 거기에 이념적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문제해결에 나서면 나설수록 사회적 갈등의 수렁에 깊이 빠져들기가 일쑤입니다.
제 스스로 판단할 때, 제 이념적 지향은 대체로 중도개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념이나 교조보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추구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일단 어떤 쟁점이 불거지면, 진보적인 쪽에서는 저를 시장과 경쟁만을 앞세우는 신자유주의자로 공격하고, 보수적인 진영에서는 평등에만 집착하는 반(反)시장주의자, 급진적 민중주의자로 매도할 때가 많습니다.
언론도 크게 둘로 갈라져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보다는 일단 이념적으로 상대방을 규정하고(간혹 낙인찍고) 나서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저나 교육인적자원부는 많은 경우 좌우로부터 협공(挾攻)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교육의 경우 수월성과 보편성, 경쟁력과 사회적 형평이 상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언제나 양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합과 조화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가치는 어떤 경우도 함께 존중되어야 하며, 문제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양자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논의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크게 쟁점화되는 ‘평준화(平準化)’ 문제만 해도 그러합니다.
저는 ‘어떤 경우도 평준화는 고수되어야 한다’라던가, ‘평준화는 절대적으로 해제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제 입장은 ‘평준화는 보완, 개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평준화의 기본틀을 유지하되, 그 안에서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함으로써 내적 역동성과 경쟁력을 보장하자는 입장이 제 생각입니다. 말하자면 대중교육의 견실한 보편구조 위에 수월성 구조를 효과적으로 접목하자는 접근입니다. 다시 말해 가능한 한 사회통합을 해치지 않으면서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것입니다.
요즈음 사회적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이른바 ‘고교등급제(高敎等級制)’에 대해서도 드릴 말씀이 많습니다. 학생들의 학교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학교차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자기모순이기 때문입니다. 또 오늘과 같이 입시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고교등급제가 용인되는 경우, 고교서열화가 빠르게 촉진되어 우수고교로의 진학경쟁이 과열되고 사교육 열풍은 더욱 무섭게 불어닥칠 것입니다. 우수학군으로의 위장전입 등 사회적 혼란이 야기될 것 또한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뿐인가요. 선배들의 대학진학 실적에 따라 획일적으로 후배들의 진학기회가 좌우되는 연좌제 논란은 또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신설학교에 추첨배정되는 학생들의 경우,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그들의 학교등급이 매겨져야 하나요.
많은 연구들에 따르면, 대학의 여러 전형 요소 중 내신성적과 대학에서의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학생의 발전잠재력과 학교에서 가르친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내신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전형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학교등급제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입장도 강력한 논거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그들은 학교간의 학력격차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무시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엄연히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고교등급제는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또 ‘내신 부풀리기’가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내신을 중시할 수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설령 고교간 평균적 학력격차가 존재하다 할지라도 그 격차를 개인의 학력격차로 환원한다는 것은, 더욱이 그것도 선배의 성격이 후배에게 대물림된다는 것은 크게 무리한 일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경우 학교 간의 학력 격차를 엄정하게 평가할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현장에서 내신 부풀리기가 꽤나 성행되는 것도 잘 알고, 이 점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비(非)교과기록 등 다른 평정요소를 고르게 고려하는 대신, 고교등급제로 선회한다는 것은 온당한 일이 못됩니다. 2008학년도 대입전형에서 내신 부풀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상대평가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도 바로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어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뭔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은 완성된 사람, 이미 다 갖춰진 인재를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대학이 마음먹고 크게 키울 미완(未完)의 좋은 재목을 발굴하려는 점입니다.
따라서 대입전형 과정에서 수능점수와 같은 정량적 지표에 집착하기 보다는 발전잠재력이 큰 사람을 찾아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도시 특정지역 고교 출신이 변두리 소외지역의 고교를 나온 학생보다 언제나 발전잠재력이 뛰어나다고 보기 어려우며, 그러한 이유로 ‘고교등급제의 인정’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입니다.
2008학년도 대입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고교교육의 중심축을 사교육시장에서 학교 안으로 옮겨오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교교육을 정상화, 내실화하는 것이 입시개혁의 주된 목표이며, 이를 위해 수능비중을 상대적으로 줄이고, 대신 학교생활을 가장 바르게 반영하는 학교생활기록부의 비중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당장은 어렵지만 앞으로 날이 갈수록 학생들의 비교과기록, 즉 독서기록, 봉사활동, 특별활동, 기타 학교 나름의 다양한 창의적 프로그램의 중요도도 더 높아질 것입다. 우리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고교등급재 파동 때문에 새 대입전형제도의 본질과 기본방향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실종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밝힐 것은 교육부는 고교등급제 불허 방침을 계속 지켜 나갈 것입니다. 현제 고교등급제 인정 의혹을 받고 있는 몇몇 대학에 대해 저희는 우선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해졍을 요구했고, 그것이 충분치 못하자 실태조사에 나갔습니다. 일각에서는 감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저는 지나치게 대학을 옥죄고, 전형자료나 과정을 낱낱이 들춰내는 일은 오히려 대학의 자율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대학은 앞으로 점점 더 움츠려져서 아예 말썽을 없애려고 교과기록과 점수 한 점의 공정성에 더 집착하게 되어 자칫 살아있는 학교교육과정을 중시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와는 반대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6개 대학에 대한 이번 조사는 사실 확인 차원의 실태조사일 뿐 감사가 아닙니다.
K형, 제 얘기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한국의 교육문제는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책의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한국의 교육도 분명히 개선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대입전형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어 많은 국민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비판도 있음니다만, 이번 입시개혁안은 2002년 대입전형안이 추구하는 큰 방향을 유지하되 운용과정상 나타났던 문제점을 발전적으로 개선 보완한 개혁안입니다, 그 점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었으면 합니다.
당초 생각에는 내친김에 최근 쟁점화되고 있는 사립학교법을 비롯해서 몇 가지 뜨거운 논제에 대해 제 입장을 두루 밝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고교등급제를 언급하다보니 글이 너무 길고 장황해져서 오늘은 이쯤에서 제 말씀을 줄이려 합니다.
앞으로 자주 글로 문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허심탄회한 의사소통 이상 좋은 방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귀찮으시더라도 제가 자주 글을 올리겠습니다.
좋은 주말 되시기를 빕니다.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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