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1.
이곳 고성에 나를 찾았던 지인들이 내게 던졌던 가장 많은 질문은 “이런 외진 곳에 사니 외롭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 대답은 대체로 “가끔 외로울 때가 있죠. 그런데 그리 절실하지는 않아요”였던 것 같다.
한 10년 전에 가까운 선배 한 분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부산에 특강을 갔다가 KTX로 서울로 돌아오는 길인데, 차창 밖으로 뉘엿뉘엿 지는 해를 보며 불시에 외로움이 밀려와 내게 연락을 했다며, “아니 나는 한나절 서울을 떠났는데도 벌써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느낌인데, 당신은 10년째 그 촌구석에 멀쩡하게 처박혀 사니 도시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던 기억도 있다.
II.
서울 태생으로 이곳과 아무 연고가 없는 내가 여기와 살며 별로 외로움을 타지 않는 이유가 뭘까. 크게 보아 아래 몇 가지 이유일 것 같다.
첫째, 이곳에서의 내 생활이 그리 한가한 편이 아니다. 늘 바쁘다. 특히 일 년에 약 반 가까이 농번기에는 눈코 뜰 새가 없다. 나이 80대 중반에 농터 300평, 잔디 150평을 관리하자면 힘겨울 때가 많고, 그러다 보니 한가로이 외로움을 탈 시간이 없다. 꼭뚜새벽에 눈 떠서 비교적 일찍 잠자리에 들 때까지 주변에 보이는 것이 일거리다.
둘째,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사람들과 지나치게 어울리는 편이 아니었고, 늘 시간 틈새를 내서 혼자만의 망중한(忙中閑)을 즐겼던 것 같다. 그래서 비교적 ‘혼자’에 익숙하다. 그런데 시골에서는 서울처럼 빡빡한 스케줄에 얽매이지 않고 아무리 바빠도 비교적 하루 일과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 틈틈이 ‘내 시간’을 갖는 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 그 점이 내 성정(性情)에 잘 맞는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은 나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느낌이다.
세 번째로 내 서울 생활이 무척 힘들고, 지치고, 지겨웠던 것 같다. 그래서 50대 이후늘 ‘탈(脫) 서울’을 꿈꿨다. 그 심정이 무척 절실했다. 많은 이들이 내가 서울을 떠난 것이 마치 큰 결단이나 되는 것처럼 말하는데, 내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런 선택이었고, 단언컨데 그리 힘들지도 않았다. 다행히 내 처가 동의해 줘 일이 쉽게 진행되었다.
요즘도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그냥 서울에 머물렀다면 지난 20년간이 어땠을까? 이곳에 온 후도 내게 무슨 일을 맡아달라고 사람들이 여러 번 찾아 왔으니, 서울에 그냥 있었으면 내가 어찌 어찌하다 뭔가 했을 개연성이 크다. 그랬다면 늘 일에 몰입하는 내가 거기에 다시 흠뻑 빠져 헤어나지 못했고 허덕이며 살았을 게 뻔하다. 그러면서 거듭되는 고단하고, 세속적이고, 덧없는 일상 속에서 매일 ‘탈서울’을 꿈꾸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느꼈을 폐부에 깊게 각인된 내면적 외로움은 아마도 여기서 느끼는 일상적, 피상적 외로움보다 더 크고 깊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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