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탈(脫)정치화, 메르켈에게 배운다
I.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우리의 삶이 너무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다. 이념적 양극화와 진영화(陣營化)가 심화되면서, 내 편, 네 편이 갈라지고, 정치적 입장이 다르면 가까운 친구, 심지어는 가족 사이도 마치 남남처럼 멀어진다. 그런가 하면, 정치가 빚어내는 이념 과잉, 애(愛)와 증(憎), <적과 동지>의 관계가 삶의 모든 영역에 침투하여, 정치나 이념과 무관한 영역까지도 그 압도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히 <삶의 정치화>라고 불러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실로 참담한 심경이다.
우리의 정치 세계는 이미 합의와 상생(相生), 균형과 조화, 적정(適正)과 유연(柔軟)의 선진 민주주의의 기본 룰을 잊은 지 오래다. 그 대신 대결과 독점, 극단과 교조(敎條). 끝없는 힘겨루기와 팬덤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그렇다면, 날이 갈수록 첨예화되고, 일상화되는 대결 정치의 늪에서 헤어날 길은 없을까.
필자는 아래에서 독일의 전 총리 메르켈의 정치적 리더십 스타일을 소개한다. 대결보다는 협력, 가시적 힘의 과시보다는 이성과 과학적 접근, 그리고 따듯한 ‘모성(母性,Mutti) 리더십’이 돋보이는 그녀 특유의 이른바 ‘소프트(soft, 軟性) 카리스마’가 그것이다. 여기서 한 가닥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까.
II.
주지하듯이, 앙겔라 메르켈은 35년간 동독 공산치하에서 살았던, 물리학 전공의 과학자로 독일통일 후 총리에 올라 장장 16년간 재직했던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이다. 그녀는 그 임기 동안 글로벌 차원에서 전개되는 몇 번의 미증유(未曾有)의 역사적 위기들, 즉 2008년 금융위기, 2010년이 유로위기, 2015년의 난민사태, 그리고 2019년의 코로나 펜데믹과 같은 어려운 고비들을 그녀 특유의 방식으로 슬기롭게 극복하여, 뛰어난 위기 관리자임을 입증했다. 그뿐인가. 사민당과의 두 번의 대연정(大聯政)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그녀의 집권 기간 중 허덕이던 경제도 되살아났다. 그래서 그녀는 2021년 정치무대를 떠난 후에도 많은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다. 이렇듯 메르켈의 삶의 궤적, 특히 그녀의 정치 역정은 여러 면에서 ‘경이(驚異)’ 그 자체다. 그렇다면 이러한 메르켈 리더십의 특징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메르켈은 통창력을 가지고 미래를 조망하고, 그 빛을 쫓는 빌리 브란트와 같은 비전가는 아니다. 그녀는 이념이나 비전을 앞세우기 보다는 실용주의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며, 가급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데 역점을 둔다. 따라서 그녀는 늘 문제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대결보다는 합의와 협력를 모색한다.
메르켈의 리더십은 개인적 권위를 과시하거나 힘의 사용이나 위협과 같은 남성상(男性像)이 부각되는 가시적 지배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 대신 그녀는 이성(理性)과 협력, 과학적 접근과 네트워킹을 중시하고, 자주 따듯하고 편안한 ‘무티(Mutt, 母性) 리더십’을 선보인다. 그런 면에서 그녀는 남성상 중심의 기존의 리더십 개념을 재(再)해석, 재정의했다.
메르켈이 자주 쓰는 전략은 의도적으로 이슈를 둔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은 이슈를 한껏 크게 키우고, 비(非) 정치적 이슈도 모조리 정치적 이슈로 만드는 우리네 정치 방식과는 정반대다. 특히 그녀는 반대파와의 첨예한 갈등의 원인이 되는 뇌관(雷管)을 제거하는 데 고수(高手)다. 메르켈은 가능한 한 어떤 이슈에서 ‘정치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주제를 전문성과 사실의 영역으로 옮겨 놓는 데 능숙하다. 그 결과 정치무대에 대결과 갈등이 줄어들고,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 모색이 시작된다. 이러한 정치의 탈(脫)정치화 접근은 과학자 출신인 그녀 특유의 접근 방식이었다. 바로 이점이 우리가 학습해야 할 최고의 덕목이 아닐까.
메르켈의 또 다른 특징은 그녀가 기본적으로 심오한 도덕적 심성를 지녔다는 점이다. 그 점이 메르켈이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 대응하는 단순한 기능적 실용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5년 9월, 대량 난민들의 독일 입국을 허용한 메르켈의 통 큰 세기적 결단이다. 이는 거센 여론의 반발과 걷잡을 수 없는 정치적 후폭풍을 불러왔으나, 온 세계는 그녀의 심오한 인류애와 내면적 강인함에 압도되었고 이에 놀라고 크게 감동했다.
메르켈이 그처럼 오랫동안 독일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가장 기본적 요인은 무엇보다 그녀가 국민의 마음을 읽는데 뛰어났고, 학습능력과 적응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III.
메르켈은 정치권력의 독점과 영속화를 추구하기보다는 권력의 공유와 나눔을 중시하고, 정적(政敵)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2005년 오랜 협상 끝에 사민당과의 대연정이 성사된 일에 대해, 훗날 이렇게 적었다.
“연정협상에서 기민당과 사민당은 서로에 대한 적대적 이미지를 벗어던졌고, 때로는 서로가 얼마나 많은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지 확인하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적이 없는 정치가 가능할까? 그런 정치가 기쁨을 줄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깊이 확신했다.”(앙겔라 메르켈, 『자유』. 한길사. P.348)
우리에게는 실로 동화같은 얘기다.
그녀는 2005년 취임후 연방의회에서의 첫 정부성명에서 전임 총리 사민당 슈뢰더와 그가 추진했던 <어젠다 2010>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나는 어젠다 2010으로 용기있고 단호하게 개혁의 문을 열어졌히고, 숱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밀어붙인 슈뢰더 총리에게 개인적으로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슈뢰더 총리는 우리나라에 큰 봉사를 했습니다.”(위의책, P.349)
필자가 독일의 전후 현대사가 <이어가기, 쌓아가기, 함께 가기>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보이는 단절과 불연속, 허물기와 극한 대결과는 너무나 대척적이 아닌가.
IV.
2006년 이후 미국 잡지 <포보스(Forbos)>는 거의 매해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인으로 선정했고, 2017년 예측불허의 세계적 망나니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세계는 그녀를 유럽의 가장 영향력있는 지도자를 넘어, 트럼프에 맞설 민주주의와 서방 가치의 참된 수호자로 공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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