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에 인사드립니다. 

 

나이가 들면서 세월의 흐름을 빠르게 느낀다더니 정말 그러네요. 한 해가 후딱 지나갔습니다, 자연에 기대어 멀리서 내다보는 세상은 늘 그랬듯이 어지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사이 역사는 한 발짝씩 전진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 나마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프지 않고 집안에 큰 변고없이 세밑까지 왔으니 퍽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 70대 후반기에 접어듭니다. 새해가 되면 제가 이곳 속초/고성으로 내려 온지 도 어언 10년이 됩니다. 해가 갈수록 점차 농사짓기가 힘들어져서 요즈음은 몇 년이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자신에게 물어 보곤 합니다. 앞으로 그런대로 서너 해는 괜찮을 것 같으나, 글쎄 그것도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겨울에 글 쓰는 것도 생각 같지만 않습니다. <데드라인>에 쫓기지 않아 좋지만 지적 영감이 메말라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지인들은 시골 살며 외롭지 않느냐고 자주 묻습니다. 그리 절절하게 외롭다고 느끼지는 않으나, 간혹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곤 하지요. 글쎄요. 그게 바로 외로움인지도 모르겠네요.

 

분명한 것은, 제가 자연 속에 혼자 있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시골생활을 마다하지 않은 제 처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자연의 품속에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책 보고, 혼자 산책하고, 그리고 혼자 땀 흘려 일하는 게 즐겁습니다. 이일 저일 혼자 걱정할 때도 많지요. 나라 걱정, 세상걱정, 아픈 친구 걱정, 걱정꺼리도 끝이 없네요. 드물게 기도도 드립니다. 세상 잘 되라고 하기 보다는 제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하는 것 같습니다.

 

새해에 별다른 소망은 없습니다. 그냥 웬만한 정도의 건강과 일할 능력이 새해에도 주어졌으면 백번 고맙겠다는 생각입니다.

 

한, 두 줄 쓴다고 시작했는데, 글이 길어 졌습니다. 일기일회(一期一會)라는 데, 여러분들과의 긴 인연을 소중히 생각합니다. 새해를 앞두고 늘 건안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안병영 드림

'삶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사를 보는 눈  (0) 2016.02.25
신영복의 친구 N 이야기  (1) 2016.01.22
세모에 인사드립니다  (3) 2015.12.29
겨울에 생각나는 의사 두 분  (0) 2015.12.13
장기려, 그 사람  (0) 2015.11.18
산, 그 그윽한 품속  (0) 2015.09.18
글쓴이 현강재 현강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엄종식 2015.12.31 08:39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렇게 연말 잊지 않으시고 먼저 연락주시고 관심가져주심에 제자로서 항상 죄송스럽고
    또한 너무 감사드립니다.
    인생의 하산길이 더욱 조심스럽고 중요하다고 하는데 부총리님의 삶은 저에게 귀중한 모델이 되십니다.
    저도 이제 퇴직한지 4년이 넘어가는데 혼자 제가 하고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4년동안 이것 저것 모양내기로 해보았는데 마음은 좀 허전해져서 이제는 외부시선보다 내면의 소리에 더 귀기울이려 합니다.
    저는 몸은 비록 경기도 평촌에 살지만 마치 마음은 '속초에 사는 농부'처럼 살고 싶다고 할까요. 그렇게 노력중입니다.
    년말에 제 넉두리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정말 활동하시기에 충분한 건강유지하시고 사모님과 평안하시고 행복하신 새해가 되시길 간곡히 기도합니다. 엄종식 올림 2015.12.31 오전8시반

  2. 김만곤 2016.01.02 22:5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총리님!
    세모에 쓰신 글을 몇 번이나 읽었습니다.
    먼 빛으로나마 부총리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들을 짐작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조심스러운 말씀이지만, 세상이 자꾸 마음을 불편하게 합니다. 새로 등장하는 단어들도 어쩔 수 없이 주로 그런 것들이 눈에 띕니다.
    모두들 애를 쓰고 있으므로, 세월이 가면 뭔가 좀 달라지고, 그렇게 달라지는 게 세상을 밝게 하기를 기대하며 지내는데 왜 거꾸로 가는 것 같은가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럴 때마다 이곳으로 부총리님을 찾아옵니다.
    별다른 소망은 없으시다는 말씀처럼 지내셔서 부디 늘 편안하시기만을 기원합니다.
    주제넘지만, 저와 같은 심정으로 <현강재>를 찾는 분들이 많을 것이므로 그런 점에서라도 부디 잘 지내셔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송구스럽지만 큰절을 올리고 싶다는 말씀도 올립니다.

  3. 현강 2016.01.04 07:44 Address Modify/Delete Reply

    엄종식 차관, 김만곤 교장 선생님,
    새해에 큰 복 받으시고 만사형통하시기 빕니다.
    아직 이곳 이곳 속초/고성에는 큰 추위가 없었습니다. 먼산에는 희끗 희끗 눈이 있지만
    제가 사는 데는 두어번 흩날렸을 뿐 눈같은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진짜 겨울은
    이제 부터이니 곧 매서운 추위가 오겠지요. 제 처는 따듯해서 좋다는데, 저는 쨍하게 춥고
    하얀 눈이 온누리를 덮어버리는 겨울같은 겨울이 기다려 지네요. 나이가 들어도 마음속에
    동심은 그대로 인것 같습니다.
    지난 몇년 동안 새해 첫날에 가까운 봉포 앞바다에 나가 해맞이를 했는데, 올해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매년 나가니 심드렁해지기도 했지만, 북적이는 인파가 오롯이 해를 향하는
    마음을 어지럽혔던 기억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분과 더불어 밝고, 아름답고, 기운찬 새해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