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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해방, 그리고 70년 I. 신기하게도 내 뇌리에 각인된 내 생애의 첫 기억이 바로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던 날 서울 거리의 역동적 모습이다. 1941년 9월생이니 그 때가 만으로 네 살 되기 얼마 전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때지어 돈암동 전찻길 쪽으로 몰려가는 극적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파도처럼 밀려가는 사람들의 물결, 그리고 거기서 분출하는 환희와 열광의 도가니가 어린 나에게 꽤나 충격적으로 감지되었던 것 같다. 앞뒤 없이 그 장면만 오롯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훗날 내가 엘리아스 카네티의 을 읽으면서, 내 뇌리에 불현듯 떠오른 것이 바로 그날 군중의 모습이었다. 나는 내 눈에 비쳐진 생애 첫 기억이 해방, 바로 그 날이라는 사실에 얼마간 의미를 두고 싶었다. 그래서 혼자 지각이랄까, 의식.. 2015. 8. 15.
어느 불자의 보시(布施) 이야기 I, 언론계 출신인 내 가까운 친구 S는 독실한 불자(佛者)다. 천주교 신자인 나도 그를 따라 이곳저곳 전국의 사찰을 자주 찾는다, 고즈넉한 산사의 법당에서 나는 서양 작은 마을의 오래된 옛 성당이나 공소를 찾았을 때와 흡사한 느낌을 갖을 때가 많다. 아래 글은 오래 전에 S로 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인상적으로 뇌리에 남아 그에게 당시의 상황을 다시 물어 여기 옮긴다. II의 화자(話者)는 S다, II. 1993년 11월, 한국 불교계의 큰 별 성철스님이 입적하셨다. TV를 통해 성철스님의 다비식을 지켜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의 다섯 상좌 중 한 분이 눈에 익어, 자세히 살펴보니 TV화면에 등장한 W 스님은 나와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재학시설 무척 가깝게 지냈던 죽마고우 K가 아닌가. W 스님이 “면벽좌.. 2015. 8. 1.
보론(補論) 얼마 전 출간한 졸저 의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오랜만에 깊고 편한 잠을 잤다. 그런데 웬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니 무언가 찜찜하고 미진(未盡)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치 여름 새벽에 농터에 나가 땀흘리며 일하다가 샤워도 하지 않고 아침상을 받은 그런 기분이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다가 “아 그렇지!” 하고 속으로 외쳤다. 이 책을 쓴 목적과 연결하여 마지막에 꼭 하고 싶은 얘기를 빠트린 것이다. 그래서 급히 책상에 앉아 쓴 글이 여기 소개하는 다. 책 말미에 이란 이름으로 덧붙였다. 책을 쓰면서 늘 궁리했던 내용이라 그런지 잘 감아놓은 실타래에서 실이 풀리듯 글이 술술 나왔다. 정리하기 힘든 대목인데 거짓말처럼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빠른 시간에 썼다. 읽는 사람에게는 그저 뻔.. 2015. 7. 19.
<슈뢰더>가 주는 교훈 I. 몇 주 전, TV 채널을 돌리다가 화면에 전 독일 총리 슈뢰더(Gerhard Fritz Kurt Schroeder, 1998-2005 재직)의 얼굴이 나와 급히 채널을 고정시켰다. 그가 방한하여 이라는 데서 전직 대사하던 분과 대담을 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내가 워낙 과문(寡聞)해서 그가 한국에 온 것도 몰랐는데, 화상으로나마 그를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아쉽게도 대담 프로그램은 꽤나 진행된 듯 했으나, 나는 눈을 모으고 귀를 곤두 세웠다. 슈뢰더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현존 정치인들 중 하나다. 총리시절(2003년) ‘아젠다 2010’으로 불리는 총체적 국가개혁을 추진하여, 통일후유증으로 경제부진의 늪에 빠져 허덕이던 독일을 다시 일으켜 세워 오늘 유럽 제1국으로 재탄생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 2015. 6. 22.
'스승의 날'에 I. 며칠 전 에는 평소에 침묵하던 내 핸드폰이 온 종일 요란했고, 이메일에도 많은 글들이 답지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특히 까마득히 잊었던 제자들이 보내 온 따듯한 말과 글들이 내 마음을 많이 적셨다. 제대로 스승 노릇을 하지 못해 늘 부끄러운 심경인데, 옛 제자들이 간혹 내가 기억도 못하는 지난 일을 더듬어 가며 고맙다고 할 때는 정말 면구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서 적어도 이 날만은 세상의 많은 선생님들이 자신이 택했던 직업에 대해 자부심과 보람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다. II. 1992년 내가 1년간 객원교수로 미국 시라큐스 대학에 가 있었다. 그 때 역시 한국에서 객원교수로 그곳에 오셔서 나와 가까이 지냈던 선배교수 Y씨가 한번은 내게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 교수, 당신은 .. 2015. 5. 24.
탈고(脫稿) 나의 이곳, 원암리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단순하다. 소규모나마 여름에는 열심히 농사짓고 겨울에는 힘껏 글 쓰는 것이다. 어찌 보면, 여름에 일을 통해 몸을 단련해서, 그 기운으로 겨울에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년부터 농사, 글쓰기 모두 점차 힘에 부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면서 앞으로 몇 년이나 이러한 삶의 패턴이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농사가 대략 4월부터 시작되니 가능하면 글쓰기를 그 이전에 끝내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빨리 끝내 보려고 아등바등했지만 결국 올해에도 4월 중순에 이르러, 그저께에서야 비로서 탈고를 했다. 글을 파일로 출판사에 넘기고, 어제 처음 농터에 나가니 벌써 잡초가 말이 아니다. 새로 쓴 책은 ‘한국교육의 패러다.. 2015. 4. 16.
63년만의 해후 I. 지난 8일(일) 오후 불현듯, 아니 조금 엉뚱하게, 초등학교 동창 한명 생각이 떠올랐다. 부산 피난시절 보수산 중턱 피난민 학교 판자집 가교사에서 1년 가까이 함께 공부했던 R이라는 친구였다. 공부 잘하고 매사에 자신만만했던 친구였다. 나의 맞수였던 기억이다. 무척 가까이 지나다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헤어졌다. 나는 K 중학교에 그는 S 중학교에 진학했다. 다 60여 년 전 까마득한 이야기다. 그런데 언젠가 그와 중. 고등학교 같이 다녔던 지인에게 R의 소식을 물었더니, 그가 S대 법대를 나와 도미해서 미국 어느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가 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이후 그 얘기를 머리에 담아두었다가 가까운 S대 사회학 교수에게 혹시 R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R은 현재 미국 동부에 있는 R 대학에 재직.. 2015.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