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에

삶의 단상 2015. 5. 24. 22:56 |

                      I.

  며칠 전 <스승의 날>에는 평소에 침묵하던 내 핸드폰이 온 종일 요란했고, 이메일에도 많은 글들이 답지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특히 까마득히 잊었던 제자들이 보내 온 따듯한 말과 글들이 내 마음을 많이 적셨다. 제대로 스승 노릇을 하지 못해 늘 부끄러운 심경인데, 옛 제자들이 간혹 내가 기억도 못하는 지난 일을 더듬어 가며 고맙다고 할 때는 정말 면구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러면서 적어도 이 날만은 세상의 많은 선생님들이 자신이 택했던 직업에 대해 자부심과 보람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다.

 

                   II.

  1992년 내가 1년간 객원교수로 미국 시라큐스 대학에 가 있었다. 그 때 역시 한국에서 객원교수로 그곳에 오셔서 나와 가까이 지냈던 선배교수 Y씨가 한번은 내게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 교수, 당신은 대화중에 제자 얘기를 자주 하는데, 내가 충고 하나 하겠네. 제자에게 너무 애착 갖지 말게. 그러다가 언젠가 마음에 상처를 크게 입네.”

  그는 그 이상 부연하지 않았고 나도 더 묻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듣는 순간, 그가 제자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러면서 인간만사가 그렇듯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도 어쩔 수 없이 기쁨과 즐거움만 함께 할 수는 없으리라는 데는 공감했다. 분명 거기에도 희. 노. 애. 락이 다 있다.

 

  사제지간의 체험 중에서 내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기억은 사랑하는 제자가 먼저 세상을 떠나는 일이었다. 내가  이제 나이가 꽤 들다보니 가까운 제자들 중에도 이미 세상을 등진 제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특히 재작년 내가 아끼던 제자 C군이 한창 나이인 50 문턱에서 하늘나라로 갔을 때는 정말 가슴이 아팠다. 대학 재학 때 글 잘 쓰고 그림 잘 그렸던 드물게 낭만적인 친구였는데, 대기업에 다니다가 사내분규에 휘말려 밀려나와 갖은 고생을 하다가 모진 병에 걸려 일찍 저 세상으로 갔다. 그가 말기암 판정을 받고 그 사실을 제일 먼저 알린 게 나였다. 이후 그는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마주 하면서, 1년이 채 못 되는 투병기간 동안 나에게 자주 이메일을 보냈다. 미혼이었던 그에게 터놓고 속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가 따로 없었던 듯 했다. 절망의 심연에서 담담하게, 때로는 애잔하게 자신의 심경을 술회하는 그의 글을 받을 때 마다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칠흑 어둠 속에서 꺼져가는 촛불을 가까이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에게 글 쓸 때마다 일말이라도 그를 위로할 수 있는 적절한 어구나 얘기꺼리를 찾아보려고 책상머리에서 멍하니 앉아 있곤 했다.

 

                            III.

  나는 세속적으로 잘 나가는 제자들에게는 내 쪽에서 연락을 하지 않는다. 우선 그들이 무척 바쁠 터이고, 또 아무런 내 도움이 필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곤경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는 내 편에서 연락을 하는 편이다. 실제로 내가 그들에게 별다른 보탬이 되기 어렵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그래도 혹시 내가 약간의 조언이나 작은 위로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냘픈 바람 때문이다. 견주기는 어렵지만, 잘 나가는 자식보다 못나고 삶에 치여 하루하루 고단하게 사는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가는 부모의 심경이나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제자들에게 그리 너그러운 편이 아니다. 그래서 같이 늙어가는 제자들에게도 그들이 돼먹지 않거나 사리에 어긋나게 행동할 때는, 심하게 야단도 치고 싫은 소리도  내뱉는다. 나의 이런 성향은 내 성품에서 비롯된 바가 크지만, 얼마간은 대학원 때 은사셨던 A 교수님에게서 배운 것이 아닌가 한다. A 교수님은 내가 60이 넘어서 까지도 가끔 집에 전화를 거셔서 호통도 치셨다. 특히 장관 재직 시에는 야단을 많이 맞았다. 유머감각이 뛰어 나셨던 교수님은 자주 나무라셨지만, 질책을 하신  뒤에는 늘 몇 마디 농담을 곁들여 분위기를 훈훈하게 반전시키시며 능숙하게 뒷마무리를 하셨다. 그런데 나는 A 교수님의 질책에 대해 단 한 번도 싫거나 불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늘 고마웠고, 얼마간 기다려지기 까지 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A 교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내게 거침없이 혼내 주실 마지막 분을 잃은 아쉬움과 슬픔이 무척 컸다. 그런데 나는 그냥 제자들에게 직설적으로 나무랄 뿐, 꾸짖으신 후  어루만져 주시는 A 교수님의 강약과 완급 조절의 능력과 묘수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제자를 호되게 나무라고, 뒤늦게 후회할 때가 적지 않다.

 

                           IV

  나는 제자와 글을 주고받기를 즐긴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아래와 같은 글귀를 받을 때 무척 고맙고, 크게 감동을 받는다.

“이럴 때 저는 선생님이시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선생님도 분명 이럴 경우, 저와 같은 결정을 내리셨으리라 확신했습니다.”

  이런 글을 받으면 아직도 내가 그들의 행동이나 의사결정의 준거(準據)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 또 그 때 마다 나는 내가 정말 흐트러지지 않은 삶을 영위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일깨우고, 다짐한다.

그래서 ‘스승’의 직분은 축복이자 평생 짊어져야 할 아름다운 멍에가 아닌가 한다.

'삶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론(補論)  (0) 2015.07.19
<슈뢰더>가 주는 교훈  (1) 2015.06.22
'스승의 날'에  (2) 2015.05.24
탈고(脫稿)  (6) 2015.04.16
63년만의 해후  (3) 2015.02.22
오스트리아 유학과 <가을앓이>  (4) 2015.02.05
글쓴이 현강재 현강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득주 2015.06.26 05:40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안녕하세요,천안 이득주입니다.스승과 제자간의 정을 나누시는 모습 감명깊게 보고, 슈레더총리에 관한 글도 많은생각을 하게 하였읍니다. 더위에 더욱 건강하세요.이득주

  2. 현강 2015.06.28 07:11 Address Modify/Delete Reply

    사돈어른, 바쁘신 중에 글을 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여기도 그 동안 꽤나 가믈었는데, 오늘 새벽부터 단비가 내립니다. 하도 기분이 좋아 빗소리를
    듣고 비오는 모습을 보려고 사방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자연을 즐기고 있습니다. 내일까지 온 다니 얼마간 해갈이될 듯 합니다.
    농사철 제일 바쁜 게 6, 7, 8월 세 달인데, 벌써 6월이 거의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농사규모가 크시니 만만치 않으실터인데, 부디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2년 전에 잠시 허리 고생을 한 이후로는 매일 새벽에 일 나가기 전에 전신 운동하고, 무척 조심을 하는 편입니다.
    얼마전 제가 새로 낸 책은 언제 이곳에 오실 때 직접 뵙고 드리려고 보내지 않았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조만간 두 분이 꼭 한번 고성에 오십시요. 그리고 농사 선배로서 좋은 조언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