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의 약속
I. 1995년 12월 20일, 벌써 20년 저 너머의 오래된 얘기다. 그날 저녁을 먹고 서재에 앉았는데, SBS에서 교양 PD를 하는 딸애가 노크했다. 내 방을 찾은 일이 흔한 일이 아니기에 나는 그녀를 반겨 맞았다. 그랬더니 불쑥 “아빠,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이야, 아빠에게 장관을 하라고 하면 하실꺼야”라고 묻는 게 아닌가. 의외였다. 평소에 말 수가 많지 않고 그런 류의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 결코 그런 일이 없겠지만,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걸, 뭐가 아쉬워서 이제 와서 장관을 하겠니”. 그랬더니, 딸애는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그럼 나하고 약속해. 절대 안 하신다고.”라고 다그쳤다. 나는 분명히 답했다. “물론, 그거야 어렵지 않지, 절대 안 ..
2017. 8. 22.
내 사랑 영랑호
I. 얼마 전에 내 처가 느닷없이 내게 물었다. “만약에 내가 먼저 세상을 뜨면, 당신 혼자 여기 원암리(내가 사는 동리 이름)에 그냥 살겠어요?” 나는 별로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그럴 생각 없는데. 당신 없이 혼자 농사를 어떻게 져. 떠나야지” 그러자 내 처는, “그럼, 서울로 되돌아가겠다는 얘기네” 이에 대해 내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 내가 왜 서울로 다시 가. 그곳이 진저리나서 내려 왔는데” 그러자 내처는 답답한 듯, “여기는 떠나겠다. 그런데 서울은 안 가겠다.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라고 재차 물었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내 쉰후 , “ 만약에, 그럴리 없겠지만 정말 만약에 말이야, 당신이 먼저 죽으면, 나는 영랑호 주변에 한 20평짜리 몇 년 된 아파트 하나를 구해서 거..
2017. 5.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