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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응답하라 1959 I.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 음이 울려, 열어보니 ‘55년전 무전여행팀 재회’ 알림이었다. 모임을 주선하겠다던 S군이 약속장소와 일시, 그리고 참석자 명단을 보낸 것이었다. “아니, 벌써 55년이 지났다니”, “정말 어제 같은데”, 하도 믿기지 않아 헛웃음이 절로 났다. 풋풋했던 청춘들이 반백년에서 또 다섯 해를 더해 칠십대 중반에 다시 만나는 것이었다. ' 응답하라 1959' II. 1959년, 7월 대학입학 후 처음 맞는 여름방학 때 일이다. 연세대에 함께 입학한 K고등학교 출신 8명이 강원도 동해안을 일주하는 무전여행을 떠났다.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대부분 집이 혜화동 근처였기 때문에 모두 개구쟁이 때부터 가까웠던 친구들이었다. 속초-강릉-포항을 거쳐 경주-대구까지 갔다가 서울로 되돌아오는 10.. 2014. 1. 27.
몇가지 일화 I. 내가 자동차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바쁘면 택시를 타고 그렇지 않으면 버스나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그리고 웬만한 거리면 그냥 걸어 다닌다. 장관을 할 때, 가까운 친구가 내게 “이제 많은 이가 자네 얼굴을 알 텐데, 장관 그만둔 후에도 예전처럼 버스타고 다닐 작정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물론이지, 그게 내 제 모습인데”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글쎄, 혹 좋게 볼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좀 초라하게 보일 듯하네, 그냥 택시를 타게”라고 조언을 했다. 나는, “고맙네, 그렇지만 장관 그만두면, 그냥 옛날로 돌아갈 생각이네.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해서 신경 안 쓸 생각이고”, 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제껏 별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예.. 2014. 1. 6.
세밑에 I. 7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에서 저무는 해를 보낸다. 최근 몇 년 새해 첫날이면 으레 집에서 가까운 봉포 앞바다에 나가 막 솟아오르는 앳된 해를 맞았는데, 올 해는 그게 안 되니 꽤나 아쉽다. 그래도 서울에 오니 정초에 가족과 친지를 두루 만날 수 있어 그 점은 좋다. 세밑이 되니 어쩔 수 없이 지난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마냥 늦장을 부리던 책이 출판되어 오랜 체증이 내려간 느낌이고, 그런대로 건강을 지키며 한 해를 보내니 그것도 다행한 일이다. 내 처의 건강이 아직 시원치 않으나 크게 우려했던 수술 자체는 잘 된 듯 하고, 하루하루 회복 중에 있으니 시간이 가면 쾌차해 질 것이다. 동갑내기인 우리 내외는 똑같이 내일이면 일흔 넷인데, 이 나이에 뭐 그리 완전한 것을 기대할 것인가. 이.. 2014. 1. 1.
이어가기. 쌓아가기 I. 지난 12월 19일 조찬모임인 국회의 에 가서 내가 최근에 쓴 책 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참석한 국회의원들과 토론을 했다. 국회의원들의 학구열이 기대이상으로 높은데 놀랐다. 내가 국회에 간다니 내 처는 지난 7년 동안 공공연한 자리는 극구 피해오더니 이제 를 마다 않으니 웬일이냐고 꽤나 말렸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에게 할 말이 꽤 많다며, 새벽 찬바람에 눈길을 밟아 택시를 잡아타고 국회로 향했다. 그날 토론과정에서 내가 간간히 했던 말, 낙수(落穗)를 여기 모아 본다. 그들이 이 말들을 잘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벌써 잊었을까. II. 정치는 이다. 이념과 정책이 달라도 앞선 정권이 이룩한 의미 있는 성과는 가능한 한 다음 정권이 잘 보존하고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 2013. 12. 24.
지식인과 진영(陣營) I. 꽤나 늦장을 부리던 필자의 새 책 (문학과 지성사)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내가 오스트리아에 주목한 주요한 이유는, 이 나라의 중도통합형 모델은 지나치게 신자유주의에 치우친 영미의 처방이나, 스웨덴 등 북유럽 여러나라의 진보적 처방보다 양극정치의 여울 속에서 허덕이는 우리에게 더 적실성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중도지향의 , 로 유럽의 변방국가에서 대표적 강소부국으로 도약한 이 나라의 국가모델이 한국의 정치인, 정책전문가를 비롯해서 언론인, 시민운동가,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에게 영감과 성찰을 선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II. 언제부터인가, 적어도 1987년 민주화 이후 누가 나에게 내 를 물으면, 나는 ‘중도개혁주의자’라고 답하곤 했다. 그러면서 시대가 지나치게 을 지향하면 의 중요성을 강조.. 2013. 12. 3.
간병일지 I. 내 처가 몸이 아파 거의 한달 째 간병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에 글을 올린지도 꽤나 오래 되었다. 무릎 연골이 마모되어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수술을 양쪽에 일주 간격으로 두 번 했는데, 그 전후 과정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우선 나이도 많은데 심장도 시원찮고 혈압도 높아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과정이 부담스러워 고심했다. 그래서 본인이나 병원 측 모두 꽤나 망설였는데, 막판에는 다리를 거의 쓰기 어려운 형편이 되니 다른 도리가 없어 수술하기에 이르렀다. 수술 며칠 전 서울에 와서 각종 검사를 하고, 수술 전날 입원해서 보름간 병원에 머물다가 지난 주 퇴원해서 서울 집에서 재활 및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며칠 전부터 내 처 허리와 등에 대상포진이 시작되어 다시 .. 2013. 11. 16.
좋은 글을 쓰려면 I 얼마 전 제자 한 사람이 내게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그거야, 글 쓰는 사람 모두의 고민이지, 내가 누군가에게 묻고 싶은 것을 지금 자네가 내게 묻고 있네” 라며 대답을 피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래도 선생님은 이 문제로 저보다 오래 고민하셨을 터이니, 경험담이라도 얘기해 주세요”라며 때를 썼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II. 첫째 절실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 내 경험으로는 정말 쓰고 싶을 때 좋은 글이 나온다. 별로 내키지 않는데 청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글을 쓰거나,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경우, 좀처럼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꼭 쓰고 싶은 주제를 만나면, 가슴이 뛰고 온 몸에 전율은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을 던지고 싶어진.. 2013.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