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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프란치스코 교황의 새 어록

2014. 2. 16. by 현강

                                    I.

얼마 전 내가 잘 아는 수녀님에게서 아래와 같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재미있는 일화를 들었다.

 

최근 젊은 나이로 주교가 되신 서울교구의 Y신부님이 로마로부터 주교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황급히 교황님께 편지를 보내, “저는 아직 나이도 젊고, 학식도 부족할 뿐 아니라 덕이 크게 모자라니 부디 뜻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간곡한 청을 드렸다는 얘기다. 그랬더니, 교황님이 “나이는 세월이 가면 자연히 먹는 것이고, 당신이 무식한 것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며, 세상 어디에도 덕이 있는 주교는 없으니 그냥 받으시게”라고 답장을 하셨다는 것이다.

 

수녀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오랜만에 기분 좋게 웃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뭔가 의아하게 느껴져  “수녀님, 그게 사실이에요. 아니면 그럴 사하게 만든 얘기에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수녀님은 “직접 확인을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저는 얘기를 듣고 그냥 믿었는데요. 왜 믿기지 않으세요”라며 순진무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의심 많은 내 속내가 드러난 것 같아 머쓱해서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지만...”하고 얼버무렸다.

 

위에 일화가 사실 그대로 인지, 아니면 지어낸 얘기인지, 혹은 약간 꾸민 것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누구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면 족히 그러실 수도 있겠다고 믿지 않을까. 나도 굳이 그 진위를 더 이상 확인하지 않을 생각이다.

 

                                     

                                          II.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문제로 퇴위한 후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열리자, 비단 가톨릭교도들 뿐만 아니라 많은 세계인들이 새 교황님이 어떤 분일까 무척 궁금했었다. 그런데 새로 뽑힌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266대 세 교황은 역사상 최초의 남아메리카. 남반구. 예수회 출신 교황이자, 시리아 출신의 제 90대 교황 성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만의 비유럽권 국가 출신 교황이다.

 

그는 역사상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선택한 최초의 교황인데, 바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따른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난의 표상이자 평화의 대변자로, 새 교황이 그의 이름을 따른 것은 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랑, 그리고 청빈의 영성을 실천하겠다는 결의를 드러낸 것이다. 나는 그가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따랐을 때, 형용하기 어려운 진한 감동을 느꼈다. 그러면서 그가 앞으로 가톨릭교회의 새 시대를 열 기념비적 쇄신을 주도할 것을 예감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이지만, 새 교황 프란치스코는 겸손하고 소탈하며, 가난을 실천하는 분이다. 교황은 지난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된 후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과 인사를 마친 후, 저녁 만찬장으로 이동할 때 교황을 위해 운전기사가 딸린 전용 리무진과 경호원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이를 마다하고, “저는 그냥 추기경들과 버스를 타고 가겠습니다”라며, 버스에 올랐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교황은 이미 추기경 시절에도 화려한 추기경 관저에 머물지 않고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추기경 관저는 가난한 선교사들에게 내 줬다. 이렇듯 그는 겸손과 가난을 몸소 몸으로 실천하며 소외받고, 가난한 이들의 대변하는 데 앞장서 온 성직자이다.

 

내가 그에게 반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특히 무신론자들에 대해 매우 관용 스럽다는 점이다. 그는 ‘신을 믿지 않거나 믿음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을 신이 용서할지’를 묻는 질문에, ‘신의 자비에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고 답한 바 있다. 일찍이 우리 김수환 추기경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한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꽤나 유머러스한 분인 듯하다. 교황 선출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나같이 모자란 놈을 교황이라고 뽑아준 분들을 주님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고 말해 온통 폭소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고 한다. 내가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위의 일화와 일맥상통하지 않는가.

 

                                             

                                              III.

어느 날 저녁 프란치스코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나가보니 한 험상궂은 나병환자가 서 있었다. 그는 몹시 추우니 잠시 방에서 몸을 녹이면 안 되겠느냐고 간청을 했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해, 같은 신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밤이 깊어지자 그 환자는 자기가 너무 추우니 프란치스코에게 알몸으로 자기를 녹여달라고 부탁을 했다. 프란치스코는 입었던 옷을 모두 벗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 나병환자를 녹여주었다. 이튿날 아침 프란치스코가 일어나 보니 그 환자는 온데간데없었다. 뿐만 아니라 왔다간 흔적조차 없었다.

프란치스코는 곧 모든 것을 깨닫고는 자신과 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주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이 기도가 바로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 유명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이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음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음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서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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