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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몇가지 일화

2014. 1. 6. by 현강

                                        I.

  내가 자동차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바쁘면 택시를 타고 그렇지 않으면 버스나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 그리고 웬만한 거리면 그냥 걸어 다닌다.

  장관을 할 때, 가까운 친구가 내게 “이제 많은 이가 자네 얼굴을 알 텐데, 장관 그만둔 후에도 예전처럼 버스타고 다닐 작정인가”라고 물었다. 나는 “물론이지, 그게 내 제 모습인데”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글쎄, 혹 좋게 볼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좀 초라하게 보일 듯하네, 그냥 택시를 타게”라고 조언을 했다. 나는, “고맙네, 그렇지만 장관 그만두면, 그냥 옛날로 돌아갈 생각이네. 내가 어떻게 보일 것인가에 대해서 신경 안 쓸 생각이고”, 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제껏 별로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

  아래 일화들은 장관을 그만두고 내가 대중교통과 관련해서 겪었던 몇가지 웃으개들이다. 다 내겐 재미있는 추억들인데, 읽는 이들에게는 요즘 날씨만큼이나 '썰렁'할지 모르겠다.  

                                       

                                       

                                     II.

  1997년 8월 초, 장관을 그만 두고 이틀 뒤의 일이다. 친구 아들 결혼식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그런데 웬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며, 자리를 양보하는 게 아닌가. 나는 급히 손사래를 치며 “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앉아 계셔요,”하며 그를 눌러 앉히려 애썼다. 당시 나는 아직 한창 50대였고, 머리도 검은 편이어서 자리를 양보 받기에는 쑥스러운 처지였다. 그래서 극구 사양했고, 반면 청년은 막무가내로 나를 앉히려 들었다. 그렇게 약간의 옥신각신이 있자, 옆에 사람들의 눈총이 우리에게 몰렸다. 그 때, 그 청년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게 가까이 다가와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장관님, 저 교육부 직원입니다. 그냥 앉으셔요”.

나는 두말없이, 다급히 자리에 앉았다.

 

 

                                       III.

  처음 장관을 지낸 후, 2년 쯤 되어서이다. 대체로 장관 그만두고 두어해 지나면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른 아침 나는 시내에서 전임 행정학회장 조찬 모임이 있어 시간에 대가려고 택시를 탔다. 시간이 빠듯해서 마음이 조금 바뻤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길이 어둔지 두 번이나 길을 잘못 들어 시간이 지체됐다. 나는 부아가 나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 왜 이러세요. 길을 모르면 물으셔야지요”라며 신경질조로 질책을 했다. 그리고 나니 꽤나 미안했다. 분명 고의가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심했다 싶었다.

  만나는 장소에 다다르니, 택시비가 4600원이 나왔다. 나는 내 미안한 심경을 탕감할 겸해서, 5000원을 건네며, “ 그냥 받으세요, 아까는 제가 미안했습니다”라고 말 했다.  내리면서 막 택시문을 닫는데, 뒤에서 운전기사의 낭낭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맙습니다. 장관님!”.

  나는 등골에 찬물을 느꼈다. 그가 나를 처음부터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나마 내가 택시값으로 조그만 예의를 차린 게 천만 다행이다 싶었다.

 

                                         

                                         IV.

  두 번째 장관을 그만 두고, 몇 달이 지난 후였다. 지하철을 탔는데, 자리가 비어있기에 노약자석에 앉았다. 노약자석 저쪽 끝에 나보나 몇 살 위인 듯싶은 남자 노인 한분이 앉아있었고, 가운데 자리는 비어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더니 저 쪽 노인이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나는 신경이 쓰였지만 어쩔 수 없어 그냥 옆 눈질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내 옆에 바짝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귀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요사이 어떻게 지내슈, 뭐 한냔 말이유”. 반말에 가까운 말투였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다시 대학에 돌아갔습니다”라고 속삭이듯 답했다. 그러자, 그는 “잘됐구만, 걱정이 됐는데”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아까와는 반대방향으로 다시 엉덩이를 조금씩 들썩이며 제 자리로 옮겨 갔다. 그렇게 다시 자리를 잡고는 내 쪽을 향해 무척이나 순진한 웃음을 보냈다.

 

                                     

                                         V.

   두 번째 장관을 그만두고 한 반년 쯤 되어서였다. 홍재동 로타리까지 급히 갈 일이 있어서 연희 교차로에서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는 운전기사에게, “그냥 곧장 가셔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택시기사는 “잘 알겠습니다”라고 어디로 갈지 잘 아는 듯 답했다. 그런데 웬걸 기사는 조금 더 가다가 서대문 소방서에 이르더니, 연세대학교 북문 쪽으로 우회전을 하려는 게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아니 그냥 직진하세요. 연세대로 들어가지 마시고요”라고 황급히 말했다. 기사는 가까스로 방향을 바로 잡고는, “공직을 그만두시고 옛 친정으로 돌아가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당연히 대학 연구실로 가시는 줄 알았지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나는 “옳습니다. 대학으로 돌아간 건 사실인데, 오늘은 딴 데 볼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어떻게 제 얼굴을 기억하시죠"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초면이지만, 척 보면 삼천리지요. 평소에 TV는 그냥 보나요“라고 말하더니, ”제가 눈썰미가 있지요. 세상 정보도 넘치고요“ 라며 최근에 있었던 무용담을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몇일 전에 교육부장관을 지내셨던 김숙희 교수님을 모셨지요. 제가 ‘장관님 안녕하셔요’ 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처음에는 조금 당황해 하시면서 ‘잘못 보셨나봐요’ 하며 웃으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장관님, 제 눈은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라고 백미러를 똑 바로 쳐다보면서 말씀드렸더니, ‘맞아요, 그런데 제가 장관한지가 도대체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제 얼굴을 기억하다니’라며 놀라시더군요.”

   그 얘기까지는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이야기를 듣고는 나는 크게 놀랬다. 두 번째 일화는 이 운전기사의 엄청난 정보력과 연관되는 것이었다.

 

  “두 주 전에는 제가 은평구 기자촌에서 점잖은 부인 한분을 뫼셨지요. 장난기가 들어 제가 그 사모님께 ‘어머니, 바깥양반이 왕년에 기자셨어요, 아니면 교수셨어요’라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부인이 깜짝 놀라시며, ‘아니 기사양반, 아시는 것도 많네요. 이 동네에 교수와 기자가 많이 사는 것은 어떻게 아셨나. 그런데 제 바깥양반은 처음에 기자를 하다가, 나중에 교수가 됐어요. 그러니 둘 다 맞는 걸요’라고 맞받아치시더군요. 그러자 제가 곧장, ‘사모님 그럼 제가 바깥양반 성함을 맞춰 볼가요”라며 한걸음 더 치고 나갔죠. 그러자 그 사모님이 조금 기가 막힌 표정으로 “그래 보셔요”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보아하니 바깥양반이 천하의 우파 논객 연세대 송복 교수님이시군요’라고 직격탄을 쏘았지요. 그랬더니 그 부인이 정말 경악을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세상에 이럴 수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맞아요. 송복 교수가 바로 제 남편이에요’하셨습니다."

그의 얘기에 나도 아연했다. 송복 교수가 젊은 시절 한 때 S 신문에 있었는데, 워낙 오랜 일이라 나도 깜박하고 있었는데, 이 기사가 그것까지 상세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택시기사는, 다시 장난기 충만한 눈빛으로 “안 교수님, 교수님 이력도 제가 다 꿰차고 있습니다. 한번 읊어 볼 까요”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놀라 “아네요, 됐습니다. 그 정도면 제가 손들었습니다”라며 손을 저었다. 다행이 택시는 그 때 막 홍제동 로타리에 다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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