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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이어가기. 쌓아가기

2013. 12. 24. by 현강

                                 I.

지난 12월 19일 조찬모임인 국회의 <국가모델 연구모임>에 가서 내가 최근에 쓴 책 <왜 오스트리아 모델인가>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참석한 국회의원들과 토론을 했다. 국회의원들의 학구열이 기대이상으로 높은데 놀랐다.

내가 국회에 간다니 내 처는 지난 7년 동안 공공연한 자리는 극구 피해오더니 이제 <정치 1번지>를 마다 않으니 웬일이냐고 꽤나 말렸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에게 할 말이 꽤 많다며, 새벽 찬바람에 눈길을 밟아 택시를 잡아타고 국회로 향했다. 그날 토론과정에서 내가 간간히 했던 말, 낙수(落穗)를 여기 모아 본다. 그들이 이 말들을 잘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면 벌써 잊었을까.

 

 

                             II.

정치는 <이어가기>이다. 이념과 정책이 달라도 앞선 정권이 이룩한 의미 있는 성과는 가능한 한 다음 정권이 잘 보존하고 이어가야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새로운 성과를 덧붙여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쌓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어떤 정권도 이념성, 교조성이 짙은 변혁지향적 정책을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좌 혹은 우로 강하게 편향된 정책을 입법화한다는 것은 <새집 짖기>식 모험이다. 따라서 정권이 강수를 두어 <새집 짖기>식 입법을 하거나 정책을 강행하면,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제 일하기에 앞서 그 집 부수기에 온 힘을 쏟는다. 이는 자칫 <새집 짖기>와 <집 부수기>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고, 그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민생정치는 표류하고, 불임(不姙)정치가 일상화된다. 따라서 모든 정부는 혹 다음에 정권이 바뀌어도 후속 정권이 크게 손대지 않을 실효성 있는 정책을 장기적 관점에서 입안, 집행해야 한다. 비록 작은 발걸음으로라도 <이어가기>와 <쌓아가기>를 할 때 역사는 발전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의와 상생>의 정신이다.

 

 

                           III.

문화와 제도는 모두 중요하다. 문화적 바탕을 고려하지 아니한 공식적 제도개혁은 실패를 자초하기 쉽다. 그러나 문화를 핑계 삼아 기존 제도를 온존하려 들면, 역사발전은 없다. 따라서 제도는 문화보다 몇 발 앞서 가며 문화 변화를 슬기롭게 견인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가 너무 크게 앞서가면 문화와의 불화합 때문에 오히려 혼란과 파국이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시기를 고려하며 문화와 제도 간의 적정한 거리를 조율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라는 예술이다.

 

                           

                            IV.

한국은 이제 후진국이 아니다. 글로벌한 맥락에서 볼 때, 한국은 이미 <성숙국가>의 반열에 오른 <준 선진국>이다. 따라서 제도개혁에서 앞서, 지나치게 나라 수준, 문화와 민도를 걱정하고 스스로를 폄훼하지 않아도 된다. 적정 수준의 제도개혁은 언제나 필요하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이다. 국민을 슬기롭게 설득하고, 또 그들의 참여를 통해 제도개혁의 공감대를 넓히는 것, 그것이 모든 제도개혁의 선결과제이다.

 

                            V.

여야, 보수와 진보는 양극으로 치닫기 보다는 가능한 한 중도적 정치공간을 향해 구심적 이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형성된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간의 <중도통합형> 합의정치는 한국정치가 고뇌하는 갖가지 국가적 과제들, 통일, 노사갈등, 사회통합,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보다 합리적으로 풀어 갈 수 있다. 효율적 중도정치를 효율적으로 펼치기 위해서는 극좌와 극우세력에게 이른바 <방역선>을 쳐서 그들의 과도한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방역선을 치는 것은 결국 국민의 몫이나, 그에 앞서 중도좌파가 극좌에 대해, 그리고 중도우파가 극우에 대해, 단호히 선을 긋고 서로 간의 경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진보세력은 독일의 사민당이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통해 공산당과 결별했던 일, 오스트리아 사회당이 그 보다 한해 앞서 마르크시즘과의 오랜 인연을 청산했던 일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국가모델 연구모임 시즌2 종강 네이버 뉴스.m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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