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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간병일지

2013. 11. 16. by 현강

                                             I.

내 처가 몸이 아파 거의 한달 째 간병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에 글을 올린지도 꽤나 오래 되었다. 무릎 연골이 마모되어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수술을 양쪽에 일주 간격으로 두 번 했는데, 그 전후 과정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우선 나이도 많은데 심장도 시원찮고 혈압도 높아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과정이 부담스러워 고심했다. 그래서 본인이나 병원 측 모두 꽤나 망설였는데, 막판에는 다리를 거의 쓰기 어려운 형편이 되니 다른 도리가 없어 수술하기에 이르렀다. 수술 며칠 전 서울에 와서 각종 검사를 하고, 수술 전날 입원해서 보름간 병원에 머물다가  지난 주 퇴원해서 서울 집에서 재활 및 통원치료를 하고 있다. 그런데 엎친 데 겹친 격으로 며칠 전부터 내 처 허리와 등에 대상포진이 시작되어 다시 비상사태다. 자칫하다가는 또 입원을 해야 할 지경이다. 그러다 보니 10월 후반이후 서울에 장기 체류 중이다. 요즈음 마누라 간병하는 게 내 일과가 되었다.

 

                                          II.

집 사람이 워낙 일을 보면 몸을 사리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눈에  보이는 게 모두 일이라, 그간 너무 무리를 많이 했다. 처의 무릎이 시원찮은 것은 일찍부터 알았으나, 늙으니 그런거지 하고 소홀이 하다 일을 크게 키웠다.

자식들이 입원기간 동안 간병인을 쓰자고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반대했다. 내가 어차피 서울에 머물 것이고, 내 처의 습성을 제일 잘 알기에 남의 손에 맡길 이유가 없어서였다. 자식들이 자주 와서 거들어 주었지만, 입원기간 중에 주로 내가 환자 곁에서 함께 자며 보살폈다. 다행이 수술은 성공했는데 회복과정에서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전혀 먹지를 못하고 무엇이 들어가면 여지없이 토했다. 양쪽 다리가 말 못하게 부어올랐고, 통증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운신이 어려워 병원에서 권하는 재활치료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보름 입원기간 중 옆 자리의 환자가 다섯 번 바뀌었는데 그중 두 사람은 말기에 접어든 중환자라 병실 분위기도 시종 침울했고, 매사에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입원기간이 길어질수록 간병인으로서의 나의 능력은 일취월장했다. 병원 돌아가는 시스템도 익숙해 졌고, 주치의, 레지던트,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관계자들을 대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눈인사하는 낮익은 얼굴도 꽤 늘었다. 무엇보다 환자 자신이 스스럼없는 내가 옆에서 거두어 주는 것을 편하게 생각해서 잘 한 듯 싶었다. 크게 걱정했던 것이 내가 자면서 코를 고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그리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간병 10일 쯤 지난 후, 내가 내 처에게 “새로 직업능력 하나를 개발했네, 이 정도면 일류 간병인일이 아닐까” 라고 말했다. 처가 그냥 웃었지만 수긍하는 눈치였다.

 

                                            III.

내 어머님께서 무척 병약하셨다. 그래서 50대 이후 자주 입원하셨다. 80대 중반에 돌아가실 때 까지 세브란스 병원에 27번이나 입원하셨는데, 길 때는 한, 두 달씩 장기 입원하셨다. 주치의 P 교수님께서 “한번 알아보아야겠어요. 횟수나 기간이나 세브란스 기록일 것 같은데요” 라고 말씀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때문에 내가 연세대 교수를 30여년 하면서, 학교로부터 받은 가장 큰 혜택은 세브란스 병원의 의료혜택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런데 죄송하게도 입원기간 중 많은 경우 내 아버님께서 어머님 간병을 도맡으셨다. 간병인을 쓰자고 말씀드려도 한사코 거절하셨다. 그 때마다 늘 “네 어머니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내가 아니겠니. 내가 건강하고 내가 보살피는 것을 환자가 제일 편해 하는데, 왜 다른 이의 손을 빌려야 하니”라고 말씀하셨다. 두 분 연세가 높아지시고, 아버님마저 노쇠해 지셔서 나중에는 붙박이 간병인을 집에 두었다. 그래도 아버님은 집에 도우미가 있어도 일상 속에서 어머님 병 수발에 정성을 다하셨다. 그런데 세상일은 정말 알 수 없어 그렇게 건강하시던 아버님께서 어머님보다 1년 앞서 타계하셨다. 나는 아버님의 발굼치도 따라 가지 못하지만, 내 처가 입원할 때  처음부터 내가 간병을 자청한데는 아버님의 영향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내 처 간병을 하면서, 그 당시 어머님을 성심껏 보살피시던 아버님 생각을 자주 했다.

 

나나 내 처나 비교적 건강한 편이어서 병원에 장기입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처를 간병하면서 생노병사에 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구나 하는 얘기지만, 핵심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70대 중반에 이르른 우리 나이를 생각하면 앞으로 어쩔 수 없이 아픈 일이 더욱 잦아질 텐데, 부부 중 한 사람이 크게 아플 때, 적어도 다른 배우자의 건강이 웬만해서 간병이 가능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병원 측에서는 2, 3일 더 경과를 보자는데, 환자가 퇴원하기를 간절히 원해 연희동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웬걸 퇴원 이틀 후부터 대상포진이 시작되어 환자는 이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힘들지만, 아는 병이고 시간이 지나면 낳아 질 터라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견디어 가고 있다.

 

                                               III.

몸을 서울에 있지만, 내 마음은 자꾸 설악산 기슭으로 달려간다. 10월은 내가 가장 아끼는 계절이다. 그런데 올 가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설악 천불동 계곡과 오색 주전골, 흘림골  단풍도 그 결정적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다. 제자들과 오래 벼르던 만추의 산행도 불발이 되었다. 그 뿐인가. 우리 집 앞, 노란색이 눈물이 나도록 찬란한 은행나무도, 요염하기 짝이 없는 공작단풍의 자태도 그 절정을 함께 하지 못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내 소박한 바람인 즉, 부디 내 처 무릎이 겨울동안 거뜬히 나아  내년 봄에는 같이 설악산 산행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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