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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세상 모든 게 공부거리인 것을

2014. 3. 26. by 현강

                                 I.

  다소 어폐가 있는 얘기지만, 나는 사회현상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로서 20세기의 중, 하반기, 그리고 21세기 초에 이르는 실로 미증유의 격동기에 내 삶을 영위해 온 데 대해 고맙게 생각할 때가 많다. 어찌 보면 모질고 잔혹한 세월이었지만, 갖가지 사건과 충격, 변화와 혁신으로 점철되는 이 드라마틱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과학자로서 나는 엄청나게 많은 것을 직, 간접적으로 체험했고, 탐구. 고뇌, 학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 온 70여년을 되돌아보면, 세상, 특히 한국은 격세지감(隔世之感),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상투적 표현들이 무색할 만큼 급변, 격변했다. 내 뇌리에 각인된 최초의 영상(映像)은 해방 다음날 수없이 많은 군중이 환호, 작약하며 때지어 돈암동 전차길 쪽으로 몰려가던 장면이다.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에게도 그것이 매우 인상적인 광경이었던 모양이다. 이후 열 살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스무 살 때 4.19 혁명에 동참하여, 가슴 벅찬 감격을 맞보았다. 뒤이어 오랜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거치면서, 산업화, 민주화의 숨 가쁜 역사적 도정을 함께 했다. 그러면서 글로벌 시대, 새 천년을 맞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전형적인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첨단의 지식정보사회로 바뀌었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협소한 지역사회에 묻혀 살던 한국인은 이제 활갯짓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우리는 비교적 짧은 시간대에 인류가 오랜 역사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온갖 영욕과 명암을 압축적으로 체험했다. 외세강점과 해방, 전쟁과 평화, 절대빈곤과 경제발전, 권위주의와 민주주의, 폐쇄와 개방, 정체와 혁신,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라는 천지개벽의 연속을 당대에 골고루 겪어낸 것이다. 지난 역사가, 그리고 오늘의 생활세계가 사회과학자의 살아있는 교과서라면, 나는 이처럼 파노라마처럼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최상의 교과서를 통해 실로 많은 것을 배웠다. 나에게 지난 시대는 엄청난 자극과 동기부여, 상상력과 통찰력, 개안(開眼)과 숙고(熟考)의 원천이었고, 그를 통해 사회과학적 학습능력을 크게 배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목과 능력이 크게 부족한 것은 도무지 내 개인이 책임질 일이지, 교과서에 핑계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II.

  내가 살아 온 시대의 도움과 더불어, 나는 사회과학자로서 내 경험세계를 확장하고, 인식체계를 성숙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던 세 가지 중요한 계기가 내 생애에 있었다. 그것이 유럽 유학, 장관으로서 국정참여, 그리고 은퇴 후 시골생활이다.

 

   나는 1965년 가을 유럽의 작은 나라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갔다. 그 때도 지금처럼 미국으로 유학가는 것이 대세였다. 특히 사회과학을 위한 유럽유학은 매우 드물었고, 그것도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같은 큰 나라가 아닌 서유럽의 변방소국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간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유럽의 지성사와 학문전통에 심취하고 있었고, 비록 작은 나라지만 세계 굴지의 문화강국일 뿐 아니라, 동서냉전의 핵(核)지대에서 <중립화 통일>이라는 가장 반(反) 냉전적 해결책을 일구어낸 이 나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무척 컸다. 그곳에 가면 내 학문과 인생에 영향을 미칠 창조적 영감이 샘솟고, 새로운 인식 지평이 열릴 것만 같은 환상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래서 유학길을 떠나면서, 훗날 이 결단이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유학 기간 중, 나는 그 곳에서의 공식적 교육과정 못지않게, 그 시대, 그 곳에서의 실존을 통해 수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얻어내려고 무척 애를 썼다. 열심히 유럽의 역사와 철학, 문화와 생활양식, 그리고 그들의 관점을 익혔고, 그러면서 항상 비교론적 입장에서 대서양 건너의 미국과 내 나라 한국과 견주어 보면서, 깊게 사색하고, 고뇌하며, 열심히 학습했다. 그 5년간의 유학생활이 아직도 나의 사유의 틀과 시각, 그리고 갖가지 대안찾기 방식에서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 때가 많다. 귀국 후 나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독일, 미국, 캐나다에서 각각 1년씩 연구할 기회를 더 가졌고, 그 때 마다 나는 내 경험세계의 확장을 통해 학자적 역량을 높여 보려고 안깐힘을 다 했다.

 

   나는 정치학과 행정학을 공부하고 가르쳤으나, 평소에 정치에 직접 관여한다든가 장관이 되는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더구나 일생 현실 정치의 자장(磁場)에서 맴돌아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마치 운명처럼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부 수장으로 두 번 국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백면서생인 나는 나랏일에 관여하면서 실로 말 못할 고초를 겪었으나, 그 동안 이론으로 배운 것을 실천의 장(場)에서 실험, 검증하는 값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장관은 정치와 행정이 만나는 접점에 자리하고 있어, 대통령/청와대, 국회, 정당, 언론, 시민사회와 밀접하게 상호작용을 하면서, 정책결정과 집행 및 부처관리의 책임을 두루 수행하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정치학과 행정학을 함께 공부해 온 나에게는, 그 직책은 나라에 봉사할 수 있는 중차대한 ‘일’자리 면서, 동시에 학자로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절호의 ‘공부’ 기회였다. 두 번, 그것도 보다 보수적인 정부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부에서 장관직을 고루 수행하면서, 나는 책이나 이론으로 익힐 수 없는 ‘살아 있는’ 공부를 넘치도록 할 수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때 배우고, 익힌 많은 것을 학문적으로 충분히 환류(還流)시키지 못하고 있어 무척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장관으로서의 경험은 앞으로 나의 연구와 저작 속에서 충분히 제 빛을 발휘할 것으로 믿고, 현재에도 그러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태생인 나는 젊은 시절부터 언젠가 노후에 시골에 가서 '다른 삶'을 살아 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7년 전 정년퇴임하기가 바쁘게 이곳 속초/고성으로 내려 왔다. 처음 2년간 소도시 속초에서 살다가, 이후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곳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로 옮겨 와서, 한 여름에는 농사짓고, 겨울이면 글을 쓰며, 남들이 다니는 큰 길가에서 얼마간 비켜서서 살고 있다. 생전 처음 인공의 작품인 거대 도시를 떠나, 중간 단계인 소도시를 거쳐 마침내 자연의 품인 농촌에 안착한 셈이다. 농촌의 삶과 자연 속에서 새로 배우는 게 너무나 많다. 우선 일생 책상머리나 지키던 내가, 땀 흘려 노동하며 사는 새로운 일상 속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서, 그것도 나라의 동북쪽 끝 변방에서, 그리고 자연에 파묻혀 살면서, '새' 관점에서 보고 사색한다는 것이 내게는 새롭고, 신선한 삶의 체험이다. 내가 최근에 <인생 삼모작>을 주창하며, 지적, 예술적 인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 노후의 자연의 품은 엄청난 상상력과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III.

  나는 사회과학자는 책을 통해서 보다 삶의 과정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며, 삶 속에 용해되지 않은 사회과학적 지식은 겉핥기, 흉내 내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거듭 말하거니와  사회과학자들에게 엄청난 공부거리를 제공한 파란만장하고, 변화무쌍했던 지난 시대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단조롭고 밋밋한 시대에 살다 간 선배 사회과학자들 보다 더 좋은 교과서를 택한 나는 행복한 공부꾼이다. 그런가 하면, 나는 유럽 작은 나라에 유학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 제 3의 관점을 익혔고, 장관직 수행을 통해 이론을 실천의 장에서 검증하는 값진 기회를 얻었으며, 노후 자연으로의 귀의를 통해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내게 세상 모든 게 공부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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