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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산, 그 그윽한 품속

2015. 9. 18. by 현강

                                   I,

나는 산을 무척 좋아한다. 내가 속초/고성을 노후의 정착지로 정한 가장 큰 이유도 거기에 설악이라는 명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해바다의 푸른 물결도 내 눈 앞에 아른 거렸지만, 그보다도 웅혼한 기상과 화려한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설악의 연봉들이 마치 자력처럼 내 마음을 더 세차게 끌어 당겼다.

 

나는 비교적 시간을 아껴서 관리하는 유형이다. 그런데 산에서 보내는 시간은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그곳에 가면 언제나 과분한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누가 산에 가자고 연락이 오면 웬만하면 만사를 뒤고 미루고 산행에 나선다. 아니 산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심쿵’이 시작된다.

 

산에 가면 심신이 두루 즐겁다. 그런데 몸 보다는 마음이 더 산을 좋아 하는 것 같다. 산에 들어서면 마치 세속을 등지고 보다 격조 높은 다른 세계, 말하자면 선경(仙境)의 초입쯤에 진입하는 느낌이 든다. 그곳에선 세상만사가 부질없게 여겨지고 나를 옥죄던 온갖 시름이 눈 녹듯 사라진다. 산은 무엇보다 정신세계를 정화하고 활기를 불어 넣은 신비한 위력이 있다. 좌절, 분노, 우울, 소외, 낭패감 등 온갖 마음을 어지럽히는 어두운 그림자들이 사그라지고, 대신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이 샘솟는다. 간혹 복잡하고 골치 아픈 문제를 머리에 담고 산에 올라도 산행 도중 생각이 단순, 명쾌하게 정리되면서, 엉킨 실타래가 저절로 풀리듯 문제의 해법이 보일 때가 많다.

 

산은 거시(巨視), 미시(微視)가 다 좋다. 멀리서 바라보는 백두와 설악의 절경들, 그 압도적 위용과 빼어난 미관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뿐인가. 인근의 크고 작은 산에 가까이 다가가 그 그윽한 품에 안겨 보면, 오관으로 느끼는 환희와 성찰의 깊이는 얼마나 대단한가. 나는 무엇보다 산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있어 좋다. 그곳에 가면 부자와 빈자, 잘난 이와 못난이가 따로 없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걷는 벗이자 순례자다.

 

                                II.

돌이켜 보면 나는 늘 산과 더불어 살았다. 장성해서 살 곳을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산은 언제나 내게 주거 결정의 주요한 변수였다. 나는 무엇보다 조망(眺望)과 거리를 중시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유학했을 때, 유학 기간 5년 중 3년을 아름답기로 유명한 빈 숲(Wienerwald) 근처에 자리를 잡았고, 귀국해서 30대의 반 이상을 백운대 아래 우이동 산기슭에서 살았다. 이후 연희동에서 30년 가까이를 살았는데, 그곳이 내가 재직하던 학교 근처이기도 했지만 거기에는 매일 새벽 등산이 가능한 안산이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은퇴 후 설악산 기슭을 찾아 온지도 벌써 9년이 되었다. 내 서재 창가에 멀리 천하명품 울산바위의 웅자(雄姿)가 보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새벽등산이다. 우이동 살 때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와 약 20분간 산길을 질주, 선운각 뒤쪽에 조그만 못을 찾았다. 작은 폭포를 곁들인 아름다운 못이었는데 외지고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마치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이었다. 그 시간 그곳을 찾은 6, 7명의 단골손님들은 스스럼없이 모두 알몸으로 냉수욕을 했는데, 겨울에는 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으나, 한 겨울 영하 17도에 얼음을 깨고 물 속에 몸을 담그던 기억이 난다. 냉수욕 후에 산중턱까지 오르곤 했는데, 때 맞춰 먼동이 트고 해가 뜨기 시작하면 주변이 점차 황금색으로 변하면서 마치 축복받은 성지(聖地)처럼 온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곤 했다.

 

연희동 살면서 나는 안산 새벽등산을 즐겼다. 바쁘면 팔각정까지, 조금 여유가 있으면 봉수대까지 올랐다. 연세동산도 내게 최고의 산책로를 선사했다. 연세대학교는 는 마치 도시라는 바다 속에 자리 잡은 한 점 푸른 섬처럼 아름다운 숲과 나무를 품에 안고 있는 청정지역이다. 재학시절까지 합치면 나는 그곳에서 약 40년 이상을 보냈으니,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다. 오후 4시면 나는 으레 연구실을 빠져나와 종합관 옆길로 올라간다. 거기서 옛 담장을 따라 서문 쪽으로 향한다. 왕복 약 40분짜리 산길 산책로가 내가 즐겨 다녔던 길이다. 늦가을 낙엽을 밟으며, 또 한 겨울 눈 위에 첫 발자국을 기록하며 홀로 걸었다. 나는 이 산책로에서는 늘 의식적으로 느린 템포를 유지했다. 이 길이 내게는 사색(思索)의 길이자, 삶의 소중한 여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내가 40분간 이 꿈길을 산책하는 동안 학생이나 여타 다른 이를 조우하는 일이 무척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늘 혼자였다. 산사처럼 한적하고 추억처럼 아름다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마음을 한껏 살찌게 하는 이 천혜의 숲길을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길을 소개하며,

“자네들 교문 밖 열락(悅樂)의 바다도 좋지만 사색의 깊이를 더해 주는 이 지성의 오솔길을 왜 외면하느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별로 소용이 없었다.

 

                                              III.

얼마 전 내 처가 연희동에 갔는데, 우연히 길가에서 안면 있는 아주머니 한분을 만나 눈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부인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내 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조용한 음성으로,

 

“저 교수님 사모님이시지요. 제가 매일 새벽마다 교수님을 안산에서 뵙곤 했는데  여러 해 뵙지 못했어요. 혹시 그간 돌아가시지 않았나 해서요” 라고 묻더라는 것이다. 내처는 조금 황당했지만, 재미가 있어

“아네요. 아직 멀쩡해요. 산만 바꿨어요. 안산 대신 요새는 설악산을 자주 다니던 데요”

라고 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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