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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내가 신문을 안보는 이유

2014. 12. 13. by 현강

                        I.

    이곳에 내려 온 후 정규적으로 신문을 보지 않았으니, 신문을 안 보고 산지 벌써 8년이 되었다.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전혀 모르는 깜깜 절벽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짧게나마 매일 인터넷 서핑을 하니, 대충 세상 돌아가는 것은 알고 지낸다. 다만 인터넷으로 신문을 볼 때는 대개 제목만 보고 스치듯 지나가다, 가끔 아주 관심 있는 사항만 찾아 들어가기 때문에 총체적 정보량이 크게 부족하고, 그나마 아는 정보도 불균형적이고 편중된 게 사실이다. 실은 신문뿐만 아니라 T.V도 자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이 다 아는 것을 나만 몰라 엉뚱한 얘기를 할 때도 없지않다.

                      

 

                        II.

   왜 신문을 안 보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딱히 한마디로 대답하기 어렵지만 대중 아래 두 가지 이유가 아닌가 한다.

첫째 시골에 와서 좀 단순히 살고 싶은데, 신문을 보면 세상잡사에 다시 젖어 들어가 머리가 복잡하고, 기사 대부분이 서로 다투고 헐뜯는 내용이라서 신문을 덮은 후 기분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과 더불어 하루를 시작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두 번 째는 신문을 보지 않아도 제목만 훑으면 그 내용이 뻔해서 읽지 않아도 속 내용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중요 신문이 이른바 보수와 진보로 <양극화>, <‘진영’화>되어 있어서, 저마다, 진영논리에 따라 사실을 비틀어 해석하고, 흑백논리에 따라 정석화된 독백만 하고 있다. <공론>과 <정론>이 부재하는 오늘의 언론 상황에서 어떤 신문을 택해도 편향되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보수 신문 하나, 진보 신문 하나를 보면 균형이 잡힌다고 말한다. 그럴듯한 얘기고, 실은 나도 옛날 한 때 그렇게 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깊은 산골에 와 살면서 그런 수고까지 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러면 한번이면 족할 텐데 두 번 화가 나고 스트레스가 더 쌓일게 분명하기 떄문이다.

 

 

                                III.

  위의 두 번째 이유와 연계되는 오늘 한국의 언론상황은 매우 심각하다고 본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엄혹한 정치상황 속에서도 몇몇 신문은 <민주화>의 편에 서서 모진 핍박을 받아가며 <정론>을 펴려고 애를 썼다. 이제는 한국 언론에 그런 의기(義氣)나 소명의식이 없어 보인다. 진영논리에 젖어 합리적 토론이나 이성적 대화와는 담을 쌓고, 편집적偏執的),상투적 주장만 일삼는다. 한마디로 클리셰의 범벅이다. 그 뿐인가. 대결구도에서 뿜어내는 증오에 찬 공박이 언론의 품격을 크게 떨어뜨려, 이제 유명언론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참된 권위가 없다. 신문에 글을 쓰는 논객들도 마찬가지다. 데스크에 의도에 맞춰 자기검열을 하다 보니 글은 화려하나 메시지가 애매하고, 내용이 빈약하다. 백척간두에 서서 건곤일척의 심경으로 백년 앞날을 조망하며 한자, 한자 힘주어 써 내려가는 지식인의 역사의식과 비장미(悲壯美)가 없다. 안타깝고 아쉬운 일이다.

 

 

                                 IV.

  정치와 언론은 늘 상호작용한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언론이 부패하고 부도덕한 정치를 정화(淨化)하고 그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는 구실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언론은 정치의 이념싸움이나 권력노름에 때로는 편승하고, 때로는 예종하는 등, 늘 그 그늘에서 맴도는 바람에 사회의 목탁(木鐸)으로서의 참된 제 구실을 외면하고 있다.

 

  그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다. 우리 국민의 정치성향을 조사하면 중도성향을 지닌 시민들이 가장 많다. 그런데 일정한 사회적 쟁점이 부상하면, 언론이 앞서서 양극으로 갈라져 국민들을 좌. 우로 끌어당기는 통에 국민들도 부지불식간에 양쪽으로 나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언론이 중도에서 균형과 조화, 다시 말해 중용을 지키며 사회적 통합에 기여해야 마땅한데, 오히려 국민들을 갈라놓고, 편향된 입장을 주입하며, ‘진영화’시킨다.

 

   우리나라의 지식인 논객들에게도 책임이 크다. 많은 이가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자신의 ‘오디언스’를 의식하며 글을 쓴다. 그들은 자신의 오디언스의 열광과 환호에 취해 마땅히 그들이 떠받쳐야 할 더 크고 중요한 우상, <국리민복(國利民福)>을 몰라라 하고, 편향된 글을 거침없이 쓴다. 한국의 좌, 우의 대표적 논객들을 보면 양쪽 다 <세계의 시계>를 잘못 읽고, 시대착오적 독선과 아집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지식인은 혼자 일 때, 외로울 때, 가장 자유롭다. 그리고 그 때 가장 정직하다. 그들이 자신의 진영과 오디언스를 의식하고, 펜대를 잡는다면, 그의 영혼은 이미 진영 창고에 볼모로 잡혀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V.

   세계의 선진국들은 저마다 그들이 자랑하는 대표 신문을 갖고 있다. 그들 신문에 대체로 오랜 연륜 속에서 모진 시련을 겪으며 진리추구와 불퇴전의 용기로 정성껏 가꿔 온 자신들만의 개성적인 정신세계와 품격을 갖추고 있다. 이들 대표 언론들은 그 나라 민주주의와 파수꾼이자 온 국민의 자존심이다. 우리에게 과연 그런 언론이 존재하는가. 대답하기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언론을 만드는 것은 깨어있는 국민의 정치사회 의식과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분별력이라고 본다. 나처럼 신문을 안 보는 일은 현실도피에 불과하다. 안 본다고 좋은 신문이 탄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도 정말 이제 정신차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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