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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새해 새 아침 신묘년 새 아침이 밝는다. 적어도 오늘 이 아침에는 우리 모두 새 출발점에 서서 여느 때와는 다른 꿈과 희망, 긴장과 결의를 가슴에 새기자. 한 겨울 칼바람 속 창문을 열고, 자못 경건한 마음으로 검푸른 빛의 새벽을 깊게 삼키자. 그리고 작년 새해 첫 아침에 그랬듯이 동해 봉포 앞바다로 나가서 소년같이 해말간 얼굴로 해맞이를 하자. 설혹 올해 마지막 날 또 다시 칠흑의 좌절과 실의에 빠질지라도 적어도 적어도 오늘 이 아침만은 나이를 잊고 대장정에 나서는 장수처럼 늠름하게 앞만 바라보자. 그리고 한껏 포효하자. * 아래의 시는 내가 좋아하는 정현종의 이다.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 올른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 2011. 1. 1.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I. 30여 년을 대학 강단에 서다 보니 그동안 수많은 제자를 만났다. 그중에는 진지하게 자신의 장래에 대해 상담을 청하는 제자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불확실한 장래에 대해 다소간 불안감을 피력하면서“저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이들에게 자신의 인생행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점을 알려 주고, 이를 감안하여 마지막 결정은 스스로 내릴 것을 권한다. 그 세 가지 점은, , , 그리고 이다. 내 답변의 레퍼토리는 이미 20년 이상 곰삭은 것이다. II. 누구나 가능하면 자신이 을 일생의 업으로 삼는 게 좋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세상이 알아준다고 해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멍에가 아닐 수 없다. .. 2010. 12. 24.
연평도 사격훈련을 재고하라 I. 연평도 사태는 인륜을 무시하고 한반도를 다시 전쟁공포로 몰고 온 북한정권의 잔인무도한 폭거였다. 북한의 이러한 반이성적이고 불가측적 행동에 대해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가 경악했다. 이런 악덕의 표본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와 피를 나눈 동포이고 우리와 경계를 맞닿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가공한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실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우리의 대북 정책은 보다 사려 깊고 신중해야 한다. 나는 연평도 사태가 터졌을 때 마침 텔레비전 앞에 있었다. 그 숨 가쁜 상황 속에서 청와대에서 ‘강력 대응하라, 그러나 확전은 피하라’ 라는 지령 보도가 나왔다. 그 때 나는 일견 논리적으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그 지령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현지 수준에서.. 2010. 12. 18.
개고기 유감(有感) I. 나는 식성이 까다롭지 않아 어떤 음식이든 잘 먹는다. 제때, 얼마간 양만 채우면 되니 미식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외국에 가도 음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유독 개고기만은 먹지 않는다. 못 먹는 다기 보다 안 먹는다. 그렇다고 ‘개고기 논쟁’에서 ‘먹지 말자’라는 쪽에 서서 내 입장을 피력해 본 적은 없다. 오히려 우리 민족이 옛 부터 즐겨 먹던 기호 식품이니 먹는 게 뭐 그리 문제 될 게 있느냐는 입장이고, 그래서 외국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 문제를 갖고 시비를 걸 때면 불쾌한 심경이 앞선다. 그러나 나 스스로는 개고기를 전혀 입에 대지 않는다. 나는 천주교 신자인데, 특히 한국 천주교인들은 개고기를 즐겨 먹는 편이다. 이는 옛날 천주교 박해 때 깊은 산골로 피신했던 믿음.. 2010. 12. 13.
인생 3모작 I. 연세대학교에는 졸업 후 25년 만에 학교를 다시 찾는 이른바 ‘홈 커밍’ 이란 행사가 있다. 풋풋하던 20대의 청년들이 학교를 떠나 사반세기 만에 머리 희끗희끗한 50 문턱의 장년이 되어 모교를 찾는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들이나 그들을 가르쳤던 옛 은사들이나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들의 형편도 각양각색이다. 개중에는 관계, 재계, 학계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벌써 직장에서 밀려 나와 새 길을 모색하는 친구도 있다. 자기 직장에서 정상 가까이 올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친구들도 속 얘기를 들어 보면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은 경우가 많다. 이제 오르막은 끝나고, 내리막만 남았다는 것이다. “선생님, 4, 5년 더 버티기도 이제 어려울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한창 돈이 들어가.. 2010. 12. 5.
공직과의 오랜 인연 I. 누구나 인생의 여정에서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있다. 나도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학자의 길을 갈 것이냐 아니면 공직을 선택할 것이냐로 크게 고심을 한 적이 있다. 1964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4학기 때 일이다. 이미 학문을 하기로 작정하고 좋은 장학금을 얻어 오스트리아 빈 대학으로 유학 갈 채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당시 행정대학원에서는 졸업 요건으로 마지막 학기에 정부 부처에 인턴을 나가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나는 인턴을 나가면 몇 달 동안 보수적인 관료세계에서 문서수발이나 할 것 같아 영 마음이 내키기 않았다. 그래서 대학원에 공직 지망생이 아니니 인턴을 면제해 달라고 청원을 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기각이 됐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인턴을 나가게 되었다. 내가 배정된 곳은 총.. 2010. 11. 27.
원암리 일기 I. 나는 4년 전 서울을 떠나 강원도 속초로 내려 왔다. 2년 뒤, 새 집을 짓고 이곳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로 옮겨왔다. 먼저 살던 속초 아파트에서 차로 불과 20분 안쪽의 거리이지만, 이곳으로 이사 온 후 내 생활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당초 속초 생활에는 별 불만이 없었다. 산과 바다가 가까이 있어 좋았고, 속초라는 적당한 크기의 중소도시와 새로 지은 33평 아파트가 노년의 우리 부부에게 기대 이상의 안락을 제공했다. 그러나 속초 생활이 두 해째로 접어들 무렵부터 내 처가 “조그만 텃밭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그냥 귓전으로 들었다. 어느 날 속초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아름답게 줄지어 선 소나무 사이로 예쁜 하얀 집이 눈에 띠었다. 집 구경도 할 겸해서 그 집 .. 2010. 1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