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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2010. 12. 24. by 현강

I.
30여 년을 대학 강단에 서다 보니 그동안 수많은 제자를 만났다. 그중에는 진지하게 자신의 장래에 대해 상담을 청하는 제자도 적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불확실한 장래에 대해 다소간 불안감을 피력하면서“저는 앞으로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이들에게 자신의 인생행로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세 가지 점을 알려 주고, 이를 감안하여 마지막 결정은 스스로 내릴 것을 권한다. 그 세 가지 점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이다. 내 답변의 레퍼토리는 이미 20년 이상 곰삭은 것이다.


II.
누구나 가능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일생의 업으로 삼는 게 좋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세상이 알아준다고 해도,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멍에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전공이나 직업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 해서 즐거운 일 근처에서 찾는 것이 좋다. 그 일을 하면 몇 끼를 굶어도 괜찮다는 바로 그런 일을 말하는 것이다. <일>이 <놀이>가 될 때, 인간은 행복하다. 또 <일>과 <놀이>를 함께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가장 창의적이다.

다음 자신이 <잘하는 일>이 무엇인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좋아해도 그 일에 재주가 없으면 생산성이 낮고 그 결실이 빈약하다. 글재주가 전혀 없으면서 소설가를 지망하거나, 그림 재주가 형편없으면서 화가를 지망한다면 무모한 일이다. 따라서 자신의 특장(特長), 특기를 찾아 그 일을 생업으로 하는 것이 백번 유리하고, 또 장래도 보장될 수 있다. 자신의 장기를 살리는 일이 특히 오늘과 같은 무한경쟁시대를 사는 지혜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려한 요소가 <일의 보람>이다. 아무리 좋아하고, 잘하는 일도 그것을 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없다면 불행을 자초하기 쉽다. 언젠가 삶의 의미를 되씹게 되고 좌절하게 된다. 노름을 좋아하고 또 잘한다고 해서 그것을 일생의 업으로 택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일생의 행로를 정할 때, 삶의 본질적 가치와 연관되는 문제에 대해 함께 깊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세상의 잣대로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으나, 보람된 삶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자신의 삶을 풍요하게 가꾸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 바로 내가 잘하는 일이고, 또 그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최상의 조합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고민이 싹트는 것이다.


III.
나는 위의 세 가지 요소를 고르게 헤아려서 진로를 신중하게 결정할 것을 권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당사자에게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회의적일 때가 많다. 생의 진로가 정했다 해도 그것을 뜻대로 이루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실업이 계속 치솟는 등 눈앞의 사회 현실이 녹록치 않다. 그런가 하면 부모. 친지의 바람과 기대, 압력도 만만치 않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진로를 찾아 나선다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나는 그들에게 인생의 진로를 정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과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할 것을 권한다. 스스로를 속 깊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고, 자신의 생을 책임질 당사자는 결국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대화는 다분히 자기 성찰(省察)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아울러 나는 주관(主觀)세우기, 멀리 보기, 그리고 능력 배양을 강조하고자 한다. 주관을 세운다는 일은 자신의 뜻에 따라 인생의 목표나 지향점을 정하는 일이다. 큰 방향이 정해지면, 지나치게 작은 상황의 변화나 주변의 관여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할 때, 아무리 현실이 냉혹하다 해도 지나치게 눈앞의 형편이나 이해관계에 집착하기 보다는 더 멀리 미래를 조망할 것을 권한다. 누구나 근시안적 관점에 서면 당장의 이익을 우선하게 되고 쉬운 길만 눈에 보인다. 그러나 장기적 조망을 하게 되면 보다 근본을 추구하게 되고 바른 길을 찾게 된다. 또 시간적 배열 속에서 자신의 목표를 점진적으로 성취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요한 것은 능력을 배양하는 일이다. 아무리 꿈이 좋고 목표가 바르게 세워졌다고 해도 실력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그것은 한낮 백일몽으로 끝날 뿐이다. 능력배양은 꿈의 성취를 위한 최상의 동력이다. 따라서 필요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위의 세 가지 요소를 조합하는 방식은 자신의 특성이나 능력, 그리고 꿈의 영상에 따라 다양하게, 또 얼마간 유연하게 구성할 수 있다. 생애주기를 염두에 두고 강조점을 옮기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즉 청. 중년기에는 잘하는 일에 비중을 더 두다가,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일, 그리고 보람 찾는 일로 역점을 옮겨 가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도 생애차원의 큰 그림을 마련할 필요가 있고, 강조점을 달리 하더라도 어느 시기에나 위의 세 가지 요소를 빠짐없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Ⅳ.
나는 젊은이들과 상담할 때, <꿈>과 <의>(義)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하는 편이다. 특히 배운 사람은 꿈이 있어야 행복하고, '선의후리’(先義後利)일 때 인간적 향기가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자주 곁들인다.

나는 우리 시대의 의인(義人)의 예로 성산 장기려 선생의 예를 자주 든다. 당대 한국 최고의 외과 의사였던 그는 평생 자신의 탁월한 능력과 창의성을 가난한 이웃들에게 오롯이 다 헌납하고 의롭게 산화(散華)했다(현강재, 자전적 에세이 중,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사람’ 장기려 박사> 참조). 나는 학생들에게 장기려 선생 얘기를 할 때면 차마 ‘장기려 박사님과 같은 사람이 되라’고 청하기가 어려워서, ‘그분을 닮아라. 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최근에 선종한 ‘수단의 슈바이처’이태석 신부님의 불꽃같은 일생도 우리 젊은이들에게 더 할 수 없는 귀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장기려 선생이나 이태석 신부는 꿈과 의(義)를 따라 평생 외로운 길을 홀로 걸으면서도 한 번도 머뭇거리지 않으셨던 분이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생애에서 꿈과 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길을 동행해 줄 걸 맞는 배우자를 택하라는 얘기도 자주 한다.


V.
나는 재주만 뛰어나고, 눈앞의 세속적인 가치에 눈을 반짝이는 젊은이들을 보면 부화가 난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이가 한 평생 꿈과 의에 의지해서 산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주례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두 사람은 인생의 길목에서 가끔은 ‘내가 왜 사는가,’‘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스스로에게 심각하게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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