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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연평도 사격훈련을 재고하라

2010. 12. 18. by 현강

I.
연평도 사태는 인륜을 무시하고 한반도를 다시 전쟁공포로 몰고 온 북한정권의 잔인무도한 폭거였다. 북한의 이러한 반이성적이고 불가측적 행동에 대해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가 경악했다. 이런 악덕의 표본 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와 피를 나눈 동포이고 우리와 경계를 맞닿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이 가공한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실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우리의 대북 정책은 보다 사려 깊고 신중해야 한다.

나는 연평도 사태가 터졌을 때 마침 텔레비전 앞에 있었다. 그 숨 가쁜 상황 속에서 청와대에서 ‘강력 대응하라, 그러나 확전은 피하라’ 라는 지령 보도가 나왔다. 그 때 나는 일견 논리적으로는 모순되어 보이는 그 지령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현지 수준에서 강력하게 대응하여 북한의 예기를 꺾되 큰 전쟁으로 번지는 것은 막으라는 얘기가 아닌가. 그 짤막한 멘트 안에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청와대의 깊은 고뇌도 담겨 있다고 느꼈다. 또 그 보도를 들으며 밀려오는 불안 속에서도 안도의 숨을 쉰 국민이 엄청나게 많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웬걸 이후 그 지령 때문에 청와대는 보수 언론과 우국충정이 앞서는 국민으로부터 엄청난 공격과 질타를 받는다. 그렇게 되자 청와대는 허둥대며 책임회피에 급급하면서 대북 강경일변도로 방향 선회를 했다. 이후 고삐 풀린 말처럼 나가고 있다. 새 국방장관 청문회를 보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다수 언론과 국회는 그에게 강경 발언을 유도했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북 강경 의지를 과시했다. 한편 믿음직하면서도 걱정이 증폭됐다.

 나는 북한의 엄포와 중국의 만류에도 미국과 대규모 해상훈련을 한 것은 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강력한 대북 대응의지를 과시하고 한미공조의 방위태세를 보여 줌으로 북한을 크게 압박하고 많은 국민을 안심시켰다. 그런 가운데서도 해상훈련을 북한에 턱밑에서 하지 않고 얼마간 거리를 둔 것도 사려 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연평도 해상 사격훈련계획은 사정이 다르다. 우선 북한이 거듭 강력 타격을 공언하며 이제 핵전쟁 위협까지 공언하고 있다. 우리가 북한이 불가측적이고, 비이성적 폭력집단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아울러 또 저들이 현재 무리한 정권승계 과정과 경제위기 속에서 극적인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시점에서의 우리의 대응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만약의 사태>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저들에게 가능한 한 작은 빌미조차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북한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연평도 지역에서 사격훈련을 감행한다는 것은 자칫 국제사회에 우리의 평화 이미지를 희석하고, 마치 ‘전쟁불사’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

 

II.
나는 지난 연평도 사태가 우리에게 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초기 대응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났듯이 우리의 방위태세는 엉망이었고, 빈틈이 많았다. 항상 말만 앞섰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우리의 벌거벗은 모습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만시지탄이 있으나 이제 스스로를 바르게 추수 릴 기회를 얻었다. 정부도 정신 차리고, 국민도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국방부와 군 당국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성찰하며 뼈를 깎는 쇄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임전무퇴의 자세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제2, 제3의 연평도 사건을 저지르는 경우 그에 대한 대응은 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이어야 한다.

 나는 이 백척간두의 상황에서 공허한 평화만을 앞세우며, 대화만을 주장하는 야당의 자세나 입장도 못 마땅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장외투쟁으로 향하는 국민의 싸늘한 눈초리를 의식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폭거와 만행에 대해 최소한의 비판적 발언마저 자제하며 상황을 호도하는 일부 북한 추종세력에 대해서는 과연 <저 들의 조국이 어디인가> 묻고 싶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북 방위태세를 강화하여 안보입국을 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남북 간의 물리적 갈등이 야기될 소지를 최소화하는데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 최근의 강경분위기에 편승하여 미리 큰 소리치고 과장된 반응을 보이거나 불필요한 빌미를 제공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장관이 왜 이 시점에서 북한이 또 타격을 가하면 항공기 폭격으로 대응하겠다고 큰 소리를 치는지, 왜 정부가 대북심리전에 앞장서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대북심리전은 탈북단체나 우익 시민단체들에게 맡기고 얼마간 거리를 두는 게 슬기로운 일이 아닌가. 북한과의 물리적, 심리적 대결상황을 연출하는 데는 보다 신중과 자제가 요구된다.

 그런 의미에서 연평도 해상 사격훈련은 자제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껏 강경일변도로 나가던 정부가 이 시점에서 스스로 제동을 건다는 것이 명분상, 그리고 실제로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용기를 가지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북한정권이 비이성적인 폭력집단이라 빌미를 찾아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고, 만약의 사태가 빚어질 때 우리가 잃을 것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작금의 대북 강경분위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불안에 떨면서도 차마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많은 국민이 있다는 사실과 요즘 자제를 군에 보내고 노심초사하는 많은 부모들의 애타는 심경도 함께 헤아려야 할 것이다.

어떤 정부도 천하의 무뢰한을 상대로, 또 국민을 담보로 뱃장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 정부는 이성과 슬기를 잃고 있다.

  III.

나는 4년 전 서울을 등지고 이곳 속초/고성으로 내려 왔다. 석달 전 불로그를 개설하면서 여기에 정치, 사회적 쟁점에 대해서는 일체 글을 안 쓰기로 작정을 한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 나와의 그 약속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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