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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인생 3모작

2010. 12. 5. by 현강

I.
연세대학교에는 졸업 후 25년 만에 학교를 다시 찾는 이른바 ‘홈 커밍’ 이란 행사가 있다. 풋풋하던 20대의 청년들이 학교를 떠나 사반세기 만에 머리 희끗희끗한 50 문턱의 장년이 되어 모교를 찾는 것이다. 그러니 당사자들이나 그들을 가르쳤던 옛 은사들이나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들의 형편도 각양각색이다. 개중에는 관계, 재계, 학계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벌써 직장에서 밀려 나와 새 길을 모색하는 친구도 있다. 자기 직장에서 정상 가까이 올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친구들도 속 얘기를 들어 보면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은 경우가 많다. 이제 오르막은 끝나고, 내리막만 남았다는 것이다.

“선생님, 4, 5년 더 버티기도 이제 어려울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한창 돈이 들어가는 나이인데... 나와도 딱히 마땅한 일자리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II
얼마 전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직장을 다니다 정년퇴직으로 떠나는 경우가 12%에 불과하고 직장을 그만두는 나이는 평균 54세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규 노동시장 진입자 중 전문대 졸업 이상자가 75%를 넘는다. 세상에 우리처럼 매년 고학력자들을 노동시장에 쏟아 넣는 나라는 없다. 남성들의 경우,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어렵사리 직장을 잡는 나이가 평균 28세+이다. 그러니 대학까지 엄청난 교육투자를 하고 정작 직장에서 일하는 시기는 불과 25,6년 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대다수의 선진국의 경우, 평균 입직(入職) 연령이 20대 초이며 대체로 40년가량 노동시장에 머무르는 것과 비교하면 인적 자원의 활용이라는 면에서나, 개개인의 삶과 행복의 차원에서 매우 안타깝고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뿐인가. 우리나라에서 현재 비경제활동인구가 전체 생산인구의 40%에 육박하고, 구직활동을 아예 하지 않고 막연히 놀고먹는 이른바 ‘백수족’이 약 150만 명이나 된다. 그런가 하면 20대의 실업률이 40, 50대의 실업률의 세배나 된다. 딱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문제는 급속히 진행되는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추세와 연관하여 생각하면, 더욱 심각하다. 젊은 층의 생산력 인구는 점차 줄어들고 노인층의 수명은 하루가 다르게 연장되는데, 현재와 같은 인적자원의 비효율적 활용이 계속되는 경우,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부터 ‘베이비 붐 세대’(1955-1963년생)의 대거 은퇴가 시작된다. 조만간 직장을 떠나야 하는 베이비 부머는 모두 713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5%에 달한다. 이들 중 많은 이가 성과가 어떻든 일단은 재취업이나 창업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청년층의 실업난과 겹치면서 한정된 노동시장에서 세대 간 경쟁이 조성될 우려도 없지 않다.


III.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면서 최근 자주 언급되는 ‘인생 2모작’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한다. 이하의 논의는 별다른 준비 없이 이미 은퇴시기가 가까워져 온 50, 60대 보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30, 40대에게 더 해당하는 얘기일 수 있다. 20년 후를 상정해 보자. 아마도 인구 고령화가 더 가파르게 진행되어 평균수명이 80대 중반을 넘어설 것이다. 또한, 저 출산으로 인해 젊은 생산인구도 지금보다 크게 줄 것이고 노동시장의 중심인력이 중년층으로 이동할 것이다. 상황이 그럴 진 데, 우리나라가 세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 길어진 노후에 얼마간의 자립과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도 적어도 70세 혹은 70세+까지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의 최종적 이탈시점을 지금보다 10 수년 늦추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가능한 한 입직 시기를 앞당기고, 처음 선택한 일자리 무리에서 55+까지 약 30년간 일한 후, 이후 10여 년간은 다른 직역에서 일하면서 인생 후반기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생각이다.

같은 논에 여름에는 벼, 가을에는 보리나 밀을 심어 가꾸듯, 첫 번째 일자리와 두 번째 일자리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일자리면 더 낳을 듯 하다. 예컨대 20대에 첫 취업 때 일자리가 치밀하게 구조화되고, 고도의 생산성,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성(硬性) 노동이었다면, 두 번째 일자리는 보다 유연하게 구성되고, 서비스나 문화적 가치를 지향하는 연성(軟性)의 일이면 더 좋겠다는 말이다. 청, 장년기에 몸을 던져 열심히 일하다가, 인생의 후반, 초로에 접어들면서 좀 더 느슨한 일자리에서 자신의 적성이나 취향을 살리거나 평소의 그렸던 꿈이나 보람을 쫓는다고 상정해 보자. 그러면 생애 주기에 따른 일의 배분 또는 자아성취의 차원에서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질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들어 재택근무, 탄력적 근무, 원격노동이 활성화되고, 임시직, 계약직, 파견직 등의 고용비중이 늘어나는 등, 근무 및 고용형태가 점차 다양화, 유연화 되는 추세도 이러한 ‘2모작’ 구상의 실현가능성을 높인다.

실제로 ‘인생 2모작’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확산하고 있다. 50대 중반의 내 제자 한 사람은 큰 기업의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미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하고 다가 올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행정학 전공의 60세 후배 교수 한 분은 전문 심리상담사가 되기 위하여 시간을 내어 2년째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이들 모두 두 번째 못자리는 자신들의 적성과 꿈에 부합되는 일이며, 첫 번째 못자리에서 터득한 지식과 지혜가 거기서도 쓰임새가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III.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는 출산율의 제고, 유휴 화된 인력의 발굴과 활용, 그리고 인구의 전반적 능력향상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는 과도한 대학진학과 직업교육 인프라의 미흡, 군 복무 등으로 입직시기가 늦고, 반면 퇴직시기가 유례없이 빠르다. 그런가 하면, 노인, 여성, 장애인의 노동시장 참여율이 무척 낮다. 이들 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사람에 대한 바른 투자’다.

위에서 ‘인생 2모작’을 언급했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21세기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일자리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대세이다. 그런가 하면 노동시장의 유동화로 인해 일자리 창출, 소멸이 일상화되는가 하면 직장 간, 직업 간 이동이 빈번하다. 이처럼 냉혹하고 숨 가쁜 고용시장에서 40년 이상 ‘지속 가능한 고용’ (sustainable employability)을 실현한다는 일 자체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미래학자들을 따르면, 지식근로자가 지식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깊고, 넓고, 유연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인접 분야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더불어 유연한 사고/행태가 몸에 배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학습’하는 길밖에 없다고 본다. ‘일과 학습’이 교육단계에 따라 체계적,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평생교육의 개념 속에 자연스럽게 수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에서 생애주기의 후반기에 ‘연성’의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애 전반기에 후반기를 위해 부단한 준비를 해야 한다. 필요하면 공식, 비공식 교육기관을 통해, 혹은 E 러닝과 같은 개방적 학습을 통해 학습의 장을 넓혀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사회학습망(Social learning net)이 구축되어야 한다.

최근에 부쩍 '학습복지‘(learnfare)라는 개념이 각광을 받는 것도 이와 연관된다. 스웨덴 등 북유럽국가들은 높은 복지수준으로 유명하지만 국가경쟁력도 매우 강하다. 그 핵심적 열쇠는 바로 학습복지이다. 이들 나라의 평생학습참여율은 50%를 상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진학률이 80%를 웃돌면서, 평생학습 참여율은 이들 나라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따라서 평생교육의 양적, 질적 제고가 절실히 요구된다.


IV.
그렇다면 ‘인생 3모작’의 세 번째 못자리는 무엇인가. 나는 ‘자연과 더불어 하는 삶’이라고 말하고자 한다. 앞으로 인생 90을 바라본다면, 70살이 넘어 2모작을 마치고도 10여 년의 여생이 기다린다. 그렇다면, 이제 큰 도시를 떠나라고 권고하고 싶다. 복잡한 대도시에서 부대끼며 살기보다는 소도시나 산촌을 찾아 자연의 품에서 보다 단순하고 마음 비운 삶을 영위하자는 얘기다.

시골생활은 심신 건강에 좋고, 인생을 관조하고 자아를 찾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과소비와 사치가 일상화된 도시와 달리, 작은 농사를 짓고 텃밭을 가꾼다면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도 가능하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지적 작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도시보다 더 생산적인 토양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인생의 마지막을 영성적으로 준비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터전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세 번째 못자리도 얼마간 ‘생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결국, 내가 구상하는 생애주기의 설계도는, ‘일’ 중심의 첫 못자리에서 ‘보람’ 중심의 두 번째 못자리로, 그리고 ‘자연회귀’ 내지 ‘자아 찾기’ 중심의 마지막 못자리로 중심이동 하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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