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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공직과의 오랜 인연

2010. 11. 27. by 현강

I.
누구나 인생의 여정에서 중요한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있다. 나도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학자의 길을 갈 것이냐 아니면 공직을 선택할 것이냐로 크게 고심을 한 적이 있다.

1964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4학기 때 일이다. 이미 학문을 하기로 작정하고 좋은 장학금을 얻어 오스트리아 빈 대학으로 유학 갈 채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당시 행정대학원에서는 졸업 요건으로 마지막 학기에 정부 부처에 인턴을 나가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나는 인턴을 나가면 몇 달 동안 보수적인 관료세계에서 문서수발이나 할 것 같아 영 마음이 내키기 않았다. 그래서 대학원에 공직 지망생이 아니니 인턴을 면제해 달라고 청원을 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기각이 됐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인턴을 나가게 되었다.

내가 배정된 곳은 총무처 인사제도과였다. 과장님은 군인출신이었는데 성실한 인상의 중년이었다. 내게 손수 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며, “한 식구가 되었으니,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무언가 의도가 담겨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 후, 그가 나를 부르더니 의외의 제안을 했다. 내용인 즉, 인사제도과에서 준비 중인 두 가지 중요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전혀 진척이 안 되니 그 일을 집중적으로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행정고시의 시험과목을 재조정 하는 일이고, 두 번째 것은 공무원의 인사 및 보수체계를 연계 개선하는 방안이라는 것이었다. 내게 너무 과중한 일이라고 펄쩍 뛰었으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한 달의 말미를 줄 테니 본때 있게 작품 하나를 만들어 보라며 내 등을 두드렸다. 나는 정말 된통 걸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내 마음 저 깊은 곳으로부터 강한 도전의지가 발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한번 해 보겠습니다”라고 군말 없이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한 달을 미친 듯이 뛰었다.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주요 도서관은 다 뒤져보았다, 교수님들께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외국사례를 구하려고 외서전문서점과 대사관도 찾았다. 외국에 유학 중인 선배에게 협조도 요청했다. 그러나 어디서도 내가 기대하는 정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걱정이 크다 보니 잠도 자주 설쳤다. 그러나 시간과 더불어 차츰 생각이 정리되고 머리에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내가 정리한 시안을 인사제도과 직원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무척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고, 과장님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인사제도과의 기존 논의수준이 워낙 낮았기 때문에 내 노력은 실제 이상으로 평가된 듯 했다. 이후 후속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내 시안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과의 안으로 확정되었고, 그것은 다시 단기간 안에 장관 데스크 앞까지 올라갔다. 이렇게 행정고시의 부별 고시과목과 공무원 인사. 보수 개혁안은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국정에 참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보람된 일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참여해서 만든 행정고시 과목들이 앞으로 적어도 여러 해 동안 공직을 지망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의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고, 새로 개선된 공무원 인사.보수체계 또한 한동안 숱한 공직자들의 일과 생계, 그리고 사기와 관련해서 주요한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러면서 공직자의 공공심과 능력, 열정과 헌신이 나라의 장래와 국민복지, 그리고 사회정의를 위해 얼마나 큰 구실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학자의 삶과 공직자의 삶 간에 저울질이 시작되었다. 인턴을 경험하기 전 까지는 내가 학자가 되는 데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학자가 공직자 만큼 대(對) 국민적, 대 사회적으로 실질적 기여를 할 수 있겠느냐에 대해 깊은 회의가 밀려왔다. 그러면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유능한 공직자의 영상이 더 할 수 없이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반면 연구실에 틀어 앉아 탁상공론이나 하는 학자의 모습이 비생산적이고, 위선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공직에 대한 열망이 불꽃처럼 치솟았다.

내적 갈등이 몇 달 동안 계속됐다. 고심 끝에 결국 공부를 택했지만 무척이나 어려운 결정이었다. 한창 꿈에 부풀었던 20대였기에 지금 되돌아보아도 힘들었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다가온다.


II.
이와 연관하여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벌써 오래 전 얘기다. 미국 유학 중이던 제자 M군이 박사학위 논문에 필요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귀국해서 나를 찾았다. 그리고 경제부처의 유능한 중견 공무원 한명을 소개해 달라고 청했다. 생각 끝에 조건에 걸 맞는 공무원 K군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그런데 막상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찾은 M군은 어깨가 축 늘어지고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내가 웬일이냐고 물으니, 정부 핵심 부서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는 동년배의 유능한 전문관료를 만나 보니, 공부한답시고 외국에서 허송생활을 하고 있는 자신이 무척이나 못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공직관도 뚜렷하고, 전문능력이나 식견도 뛰어 났어요. 저도 고시를 할 걸 그랬어요” 라고 말했다. 나는 여러 말로 M군을 위로했지만 별로 소득이 없었다.

그런데 일은 공교롭게 전개되었다. 다음날 이번에는 K군이 내게 전화를 해서, 풀이 죽은 목소리로, “선생님, M 군이 다녀간 후로, 요즈음 제 처지가 비관이 되고, 도무지 사는 재미가 없습니다”라는 게 아닌가. 내가 왜냐고 했더니, “M 군은 미국 명문대학에서 학위를 눈앞에 두고 학문의 첨단을 걷고 있는데, 저는 자기계발은 외면한 채, 허구헌날 이 구석에서 다람쥐 챗바퀴 돌듯 살고 있으니 제 모습이 얼마나 딱 합니까”라며 장탄식을 했다. 그러면서 “늦었지만, 다 때려 치고 유학이나 떠날까요”라는 게 아닌가.

나는 그에게 K군이 나를 찾았던 얘기를 전하면서 그의 사기를 북돋으려 한참이나 애썼다. 뒤이어 M 군에게 전화를 걸어 K 군이 내게 했던 얘기를 그대로 전 하면서, “K군에게는 자네가 더없이 부러운 존재네”라고 말했다.


III.
학자의 길로 들어선 이후, 나의 공직 지향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러면서 교수직은 정말 내게 ‘하늘이 내린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아집이 강하고, 혼자 일하기를 좋아하는 내 성격상 정부라는 거대조직, 위계적 관료제 안에서 결코 행복 했을 리 없었을 것이기에, 정말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40년 가까이 대학에서 교수직을 수행하면서 수 백명의 제자들을 공직으로 보내고, 그들의 성장과 활약을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위에서 언급한 M군은 당초 고시 지망생이었는데, 내가 권유해서 학자가 된 제자이다. 이후 빼어난 학자로 성장하여 얼마 전에는 재직하는 대학에서 우수교수로 포상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K군도 그간 공직에 정진하여 현재 모범적인 고위 공무원으로 국정에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두 사람 다 한때 상대방의 생활세계에 매력을 느끼고 자신의 행로에 회의를 하기도 했으나, 그러한 갈등과 고뇌가 오히려 자신을 채찍질하고 스스로 택한 길에 매진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한 때 이들과 비슷한 갈등을 겪었기에 그들의 인생 경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며, 마음으로 성원을 보내고 있다.


IV
운명의 조화인 듯, 나는 이후 두 번 교육부 수장직을 맡으면서 약 3년 가까이 학계를 떠나 공직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랏일인지라 부족한 역량이나마 몸을 사르는 심경으로 열심히 일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보람도 컸고 그에 따른 아픔도 만만치 않았다.

여러 해 전, 가까운 Y 교수의 정년 기념강의에 참석했다. 그 때 그 분은 강의에 앞서 매우 감동어린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저는 제 첫 번째 직업이자, 마지막 직업이었던 교수직을 이제 떠납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  나는 이제 저 말도 할 수가 없겠구나’하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공직생활은 학자로서의 내 생애에 삽입된 에피소드일 뿐, 그것이 내 일생의 본류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직도 내게 “장관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에게는, 부디 “교수님”으로 불러 달라고 다시 청한다.

아울러 나의 공직경험이 아직 다 하지 못한 나의 학업을 더 살찌게 하는 좋은 자양분으로 계속 작용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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