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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두루 고맙습니다 I. 지난 7월 말경, 장마가 오락가락할 때다. 내가 이틀간 서울에 다녀와 보니 집 뒤 창고 옆에 택배로 보내진 선물상자가 있었다. 그런데 포장지가 비에 흠뻑 젖어 보낸 분의 주소를 확인할 수가 없었다. 찢긴 조각에서 겨우 ‘전남’이라는 두 글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용물은 무화과였는데, 속 포장에서도 정성스런 손길이 느껴졌다. 물이 조금 배었지만 먹기에는 지장이 없었다. 두 식구가 고마운 심경으로 맛있게 먹으면서도, 머리에는 온통 누가 보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 택배 기사들에게 우리가 집에 없을 때는 따로 연락하지 말고 물건을 창고 옆에 놓아두라고 한 것을 후회했다. 외진 시골집이니 누가 가져갈 리도 없어 서로 편하자고 그런 것인데, 그러다 보니 어떤 택배회사에서 전달한 것인지 확인할.. 2011. 9. 19.
제3의 물결 I. 요즈음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단체관광에 나선 중국 관광객을 곳곳에서 만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국력을 반영하듯 중국 관광객들은 특유의 크고 굴곡진 목소리로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거침없이 유럽의 거리를 누빈다. 돌이켜 보면 1970년대 말에 시작해서 1980년대에 일본 관광객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갔던 것이 아시아인 유럽으로 향하는 제 1의 물결이었다. 이후 1989년 한국이 외국여행 전면 자유화를 실시하자 한국 관광객이 1990년대에 유럽 곳곳에 넘실댔다. 그것이 말하자면 제2의 물결이다. 제1, 제2의 물결은 이후에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2000년대 후반 이후 폭증하는 중국관광객들이 유럽에 제3의 물결을 만들고 내고 있다. 10여 년을 주기로 세 나라 관광객들이 물결을 이루며 .. 2011. 9. 5.
유럽의 다문화화와 그 긴 그림자 I. 유럽의 주요 도시에는 대중교통이 잘 발달하여 있다. 그래서 웬만하면 지하철이나 전차,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그런데 에서 지하철이나 전차를 타면, 예전 보다 무척 시끄럽고 떠들썩하다. 주위를 둘러보면, 터키나 동남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이국인들이 많이 눈에 뜨이고 이들이 거침없이 제 나라 말로 떠들어대는 통에 차내가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다. 정작 들려야 할 독일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이들 외국인은 한결같이 당당했고,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보면, 오스트리아인 친구가 지하철에서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는데, 크게 과장한 것은 아닌 듯싶다. 예전의 에서는 패스트 후드라면, 겨자에 찍어 먹는 소시지가 고작이었다. 간혹 피자집이 있었지만, 와 같은 미국식 간편식도 드.. 2011. 8. 21.
추억여행 I. 40년 만에 내가 유학했던 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에서 이번 유럽여행은 회고적인 의미가 강했다. 20대 후반 찬란한 젊음을 보냈던 그곳을 찾아 옛 추억을 더듬으며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에 도착한 후 첫 번째 한 일이 옛날 내가 살던 곳을 한곳, 한곳 되돌아보는 일이었다. 옛터를 다시 찾는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가슴이 설렜다. 유학시절 나는 거처를 일곱 번이나 옮겼다. 그 중 네 번은 총각 시절이었고, 결혼한 후에도 세 번 이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결혼 후 2년간 살았던 14구에 (Wolfersberg)라는 산간 동네다. 도심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 숲(Wienerwald) 가까이에 자리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인데, 그곳에서 첫 딸을 낳았고 내 공부도 크게 진척이 되었다. .. 2011. 8. 2.
귀국인사 두 달 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49일간의 유럽여행에서 돌아와 여독도 풀지 못한 채, 마치 정글처럼 크게 변한 집 주변을 손보느냐 그간 정신이 없었다. 이곳 영동에는 바로 그제까지도 지리한 장마가 계속되어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려웠다. 아직도 집 앞마당, 텃밭, 그리고 새로 나무 심은 터가 어수선하고 일감이 지천이지만, 이제 그런대로 사람 사는 곳처럼 되었다. 유럽여행은 기대했던 이상으로 좋았다. 오랜만에 새롭게 많이 체험하고, 생각하고, 또 배웠다. 앞으로 공부꺼리도 꽤 장만했다. 을 전진기지로 그곳에 머물면서 주변 여러 나라를 다녔던 여행인데, 무엇보다 70이 넘은 부부가 별 탈 없이 장기 여행을 소화했다는 것과 바쁜 가운데 그 동안 하루도 소홀히 하지 않고 의미 있게 보내려고 애썼다는 것이 스스로 .. 2011. 7. 22.
유럽으로 떠나며 내일(5월 19일) 약 한 달 반 예정으로 처와 함께 유럽 여행길에 나선다. 그 중 많은 시간을 내가 유학했던 오스트리아 에서 보낼 생각이다. 1971년 초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 먼 훗날 반드시 이곳을 다시 찾아 한 1년 여유롭게 머물면서 이 도시 특유의 학문적, 지성사적 전통을 탐색하고, 예술과 문화의 향기에 취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때, 엄청난 지적, 문화적 자산을 지닌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5년을 지내면서, 박사 학위에 매달려 주변에 지천으로 쌓여있는 영롱한 보석들을 외면한 채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해서 내린 결심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 을 들렸으나, 언제나 스치듯 지나갔고 한 번도 제대로 그 문화에 흠뻑 젖어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제.. 2011. 5. 18.
기업가형 총장과 학자형 총장 I. 세계화 시대에 바람직한 대학교 총장 모습으로 총장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도 미국의 몇몇 사례를 들어가며, 이제는 대학경영도 기업가형 총장에게 맡겨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총장 지망자들이 선임과정에서 경영자적 경험이나 그 잠재력을 과시하며, 재임 중 밖으로부터 거액의 기금을 받아 내겠다고 공언하는 경우가 많다. 또 기업가적 자질을 앞세우는 접근이 다양한 대학관계자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대체로 기업가형 총장은 전 지구적 차원의 대학경쟁이 시대적 흐름임을 환기시키며,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의 제고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재정의 확충과 대학의 고강도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들의 .. 2011. 5.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