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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제3의 물결

2011. 9. 5. by 현강

    I.
요즈음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단체관광에 나선 중국 관광객을 곳곳에서 만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의 국력을 반영하듯 중국 관광객들은 특유의 크고 굴곡진 목소리로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거침없이 유럽의 거리를 누빈다.

돌이켜 보면 1970년대 말에 시작해서 1980년대에 일본 관광객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갔던 것이 아시아인 유럽으로 향하는 제 1의 물결이었다. 이후 1989년 한국이 외국여행 전면 자유화를 실시하자 한국 관광객이 1990년대에 유럽 곳곳에 넘실댔다. 그것이 말하자면 제2의 물결이다. 제1, 제2의 물결은 이후에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2000년대 후반 이후 폭증하는 중국관광객들이 유럽에 제3의 물결을 만들고 내고 있다. 10여 년을 주기로 세 나라 관광객들이 물결을 이루며 유럽으로 밀려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3의 물결은 제1, 2의 물결과는 견줄 수 없는 실로 거대하고 세찬 물결이다.

중국 관광청은 올해 중국의 해외 관광객 수를 약 5,7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중 약 6%가 유럽행을 택할 것이라니 약 340만 명의 중국인이 유럽 여러 나라를 찾는 셈이다. 이들은 대체로 <7개국 10일> 식의 패키지 관광객들인데, 대체로 10일 전후의 유럽여행 비용은 중국 평균노동자의 1년 임금과 맞먹는다. 중국은 억압적 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 비롯된 사회적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여행을 허용하고 있는데, 현재 13억이 넘는 중국 인구 중 약 1억 5000에서 2억 정도가 외국여행이 가능한 관광잠재인구라 한다. 중국의 경제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이들 관광인구는 급증할 것이니, 이미 급상승 코스에 접어든 제3의 물결은 대단히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 독일의 <Spiegel>, 영국의 <Economist>등 유럽의 대표적 매체들이 앞 다투어 중국인의 유럽관광물결을 소개하고 있는데, 중국인 관광단은 아직 값싼 음식점과 호텔을 찾으면서 명품 쇼핑에는 도에 넘치게 열을 올리는 <Sleep cheap, Shop expensive>형의 수준이다. 요즈음 중국 관광객 덕분에 <루이비통>이나 <구찌>등이 문전성시라는 것이다. 한때 일본, 한국이 거쳤던 제 1, 제 2 물결의 전철을 그대로 따르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 중국 관광객 1인이 지출하는 평균금액은 718 유로(1,240불)로 이미 일본이나 미국 광관객의 구매력을 평균 1/3 정도 웃돌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유럽 관광업계는 2020년 중국관관객 1,300만 시대를 전망하며 물밀 듯이 몰려 올 중국관광객 유치에 가슴이 한창 부풀어 있다. 잠재의식 속에 황색인종에 대해 피해의식이 강한 유럽인들도 이제 그들의 전통적 <황화론>(黃禍論, yellow peril, Gelbe Gefahr)을 확실히 접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II.

대체로 유럽관광의 큰 흐름을 보면, 초기에는 대체로 관광유형이 단선적이다. 깃발을 따라다니는 단체관광 위주이고, 대도시, 명소를 주로 찾으며, 문화보다는 명품쇼핑이 우선이다. 대상을 음미하기보다는 <인증 샷> 찍기에 바쁘다. 관광객들도 대체로 중산층 이상의 유복한 계층이 주류를 이른다.

그러나 관광 역사가 10년을 훌쩍 넘어서면, 관광의 유형이 달라진다. 우선 단체관광은 줄고, 상대적으로 자유 관광이나 개인관광이 늘어난다. 또한, 2차, 3차로 유럽을 찾는 관광객 수도 증가한다. 이때 쯤 되면 유럽관광도 대중화되어 다양한 계층이 관광길에 오르고, 관광 유형도 여러 갈래가 된다. 당장 눈을 유혹하는 명품 쇼핑이나 대도시, 명소위주의 겉핥기 관광보다는 역사나 문화, 예술의 깊은 의미를 찾거나 테마 여행을 즐기는 부류가 늘어난다. 이들은 여행에 앞서 미리 공부하고 기획해서 자기 주도하에 숨겨진 ‘보물찾기’에 나서는 유형이다. 앞의 유형을 겉핥기 관광, 따라다니는 관광이라면, 뒤의 유형은 ‘음미’, ‘자기 주도 관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것인데, 일본 관광객 중 많은 이들이 이 ‘음미’ 단계로 넘어갔다는 인상은 깊이 받았다. 나도 이번 유럽여행에서 대도시나 세상이 다 아는 명소를 찾기보다는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있는 작고, 외진 곳, 나름대로 내 취향의 알짜배기를 찾아 나섰는데, 어디서나 적지 않은 일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유럽 관광업계도 이제 일본인들은 패키지 관광 단계를 넘어섰다고 진단하는데 그 얘기가 맞는 것 같다. 한국 관광객들은 아마 첫 단계와 다음 단계의 중간 정도에 있지 않을까.

 한국인의 유럽여행과 관련하여 2000년대 이후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한국 젊은이들의 배낭여행이다. 특히 여름방학이면 이들이 유럽 곳곳을 누비는데, 이들은 <큰 세상 보려고>, <견문을 넓히려>, <약간의 모험도 곁들여> 배낭여행을 떠나는데, 그 중 적지 않은 친구들이 이 여행을 위해 몇 달 아르바이트도 마다치 않는다는 얘기다. 유독 한국의 젊은이들이 유럽을 많이 찾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만 해도 미국이 외국의 동의어였고, 세계는 마치 한국과 미국으로 이루어지는 소우주처럼 생각 했다. 그런데 이제 한국 젊은이들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기에 유럽을 찾아 꿈을 키우고 다양한 학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라 생각한다. 특히 여행 중에 구 대륙,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익히고, 다른 나라의 젊은이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다면, 무척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부디 이들이 유럽이라는 새 배움터에서 <구경거리>를 찾고 <추억 만들기>에 머물지 말고, 보다 <생각하기>와 <의미 찾기>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III,

내가 사는 곳에서 가까운 설악산에도 몇 년 전부터 중국인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중국에 명산대처가 부지기수인데, 이곳이 이들의 심에 찰까 싶기도 한데, 그래도 그들이 이곳에 단체관광을 와서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관광을 위해 다행스럽다고 생각을 할 때가 많다. 그저께도 설악산에 갔는데, 아침 시간 설악산 소공원에는 중국관광객들로 붐볐다. 이들을 보면서 한 10년 전 관광전문가 한 분과 나눴던 얘기를 떠올렸다. 내가 그에게 한국의 관광사업 전망을 물었더니,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 관광의 앞날은 무척 밝습니다. 우선 입지가 기가 막히잖습니까. 중국과 일본이 이웃에 있다는 게 어딥니까. 그들이 찾아오도록 만들어야지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관광 인프라는 너무 보잘 게 없이요. 최대의 관광 잠재시장을 활성화하는 일, 바로 그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일 년 외래객 입국자 1,000만을 외쳐 왔지만, 아직 900만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보다 서글픈 것은 아직 한국은 <관광만족도> 하위 국가라는 점이다. <한류 바람>, <평창 바람>에 의존하기보다는 꾸준히 우리의 자연과 삶의 문화 속에 깃들인 관광보석을 하나하나 조직적으로 캐어 내고, 우리 국민 모두가 관광 봉사요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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