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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덕수궁에서 만나요

2011. 10. 2. by 현강

     I.

나는 서울에서 친구나 제자를 만날 때, 웬만하면 강남보다는 강북으로, 그리고 음식점이나 커피숍보다는 <어디 앞>으로 약속장소를 정할 때가 많다. ‘교보빌딩 앞’, ‘인사동 입구’ 하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덕수궁 앞, 운현궁 안 등 고궁을 선호하는 편이다.

내가 강북에서 나서 자랐고, 그곳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강북은 정겹고 어디 가나 옛 추억이 담겨 있어 좋다. 그런데 강남은 아직도 생소하고 거리도 익숙지 않아 가까운 사이면 강북을 고집할 때가 많다. 내가 만나자는 곳은 대개 전철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고, 얼마간 서울의 옛 정취가 서려 있는 곳이라 상대방도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다. 또 함께 주변을 거닐며 얘기를 나누기 좋은 곳이라서 한번 그렇게 만나고 나면 상대방도 “이번에도 덕수궁 앞, 어때” 하며 스스로 제안할 때가 많다.

특히 가을에는 고궁에서 만날 것을 권하고 싶다. 도시의 번잡함을 피할 수 있고, 작은 역사. 문화 탐방도 겸할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그곳에서 휴식과 여유를 함께 즐기면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 금상첨화이다.

      II.

광화문 <교보빌딩 앞>은 실은 그 밑에 교보문고가 있어 내 편의 위주로 택했던 곳이다. 책을 보러 일부러 그곳에 갈 때도 적잖은데, 친구 만나는 김에 미리 한 시간쯤 앞서 가서 책방을 둘러보면 일석이조가 아닌가. 책 좋아하는 친구면, 아예 교보문고에서 만날 때도 많다. 여기저기 책방을 기웃거리다가 조우하듯 마주치는 재미도 쏠쏠하다. 친구와 만난 후, 교보빌딩 1층, <에비뉴 1>이라는 곳에서 가벼운 식사를 하곤 했는데, 지난번 보수공사 후 그곳이 문을 닫아 아쉬웠다.

또 자주 만나는 곳이 인사동 입구이다. 안국동 네거리에서 인사동으로 내려가는 초입에 미팅 포인트가 있다. 빈터에 작은 석상도 있는 곳이라 금방 눈에 띄는 곳이다. 그곳에서 친구를 만나면, 인사동 길을 따라 내려가며 화랑, 필방, 고서적, 민속공예품에 눈길을 보낸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악세사리 가게도 많다. 이 동네는 남녀노소가 서로 불편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동네라 좋다. 외국인들도 자주 만난다. 외국에도 이 거리는 Mary's Alley라고 제법 알려졌다는데 한국의 풍물을 접하고 신기해하는 그들의 눈초리가 재미있다. 문화적으로 격조가 떨어진다는 비판도 많지만, 그래도 예스럽고 소박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이곳 특유의 분위기가 그런대로 좋다. 인사동과의 인연은 오래됐다. 한 40년 전부터 그림과 서예에 능통한 K 교수를 따라 수업받는 기분으로 이곳에 자주 오기 시작했는데, 근년에는 그림 구경보다 풍물과 사람 구경이 더 재미있다. 어쩌다가 옛 지인을 만나는 일도 있다. 몇 년 전 혼자 이곳을 거닐다가 책 좋아하기로 유명한 전 언론인 N의원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는데, 작년에 다시 여기서 조우했다.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향(茶香)처럼 얼마간 문화적 향기가 배어 있는 사람들이다.

이 길을 친구와 함께 거닐다가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전통찻집을 들르던가, 아니면 함께 산책길에 나선다. 안국동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풍문여고 옆 골목길을 따라 화동, 경복궁, 삼청동으로 오를 때가 많다. 내가 중. 고등학교를 그 동네에서 다녔기 때문에 그 근처에 가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옛 추억이 떠오르고 내 마음도 반세기 저 너머로 줄달음쳐간다.

   III.

이미 10여 년 전부터 덕수궁을 자주 약속장소로 잡고 있다. 덕수궁은 고층빌딩이 즐비하고 번잡하기 이를 데 없는 거대도시 한복판에 숨겨진 듯 자리하고 있어 마치 비밀의 화원 같은 곳이다. 다이내믹한 현대의 한 가운데 고전미 넘치고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보물단지가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현대와 고전, 동(動)과 정(靜)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대한문만 들어서면 완전히 딴 세상이 펼쳐진다. 산책하며 대화하기 좋고 휴식을 취하면서 한가로이 사진 찍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상설 미술 전시장과 함께 자주 특별전, 초대전 등이 열려 언제 가도 얼마간의 문화욕구를 채울 수 있다. 덕수궁은 서울의 여느 궁궐과는 달리 비교적 작고 아기자기하며, 그 안에 고전과 함께 근대의 숨결이 함께 느껴지는 곳이다. 중화전, 함녕전 등 유서 깊은 전각들도 많지만, 그와 함께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전, 그 앞의 분수대, 고종이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 등 근대 서양 문물도 함께 자리하고 있어 흥미롭다. 중화문 처마 끝 어처구니가 옛 풍을 상징한다면, 정관헌의 청동색 단청 및 금빛 장식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유럽의 <유겐드스틸>의 분위기를 멋스럽게 연출한다. 따지고 보면 덕수궁은 아관파천(1896)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이곳(당시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궁궐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던 곳이니 옛 모습 그대로의 다른 궁궐들과는 차이가 큰 게 당연하다. 신기한 것은, 덕수궁 안에서 담장 너머를 내다보면, 소용돌이치듯 바삐 돌아가는 서울이 마치 동네 사진관의 배경그림처럼 그냥 뒤에 조용히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늘도 바깥 시내에서보다 더 파랗고 높게 보인다. 이 여유와 아늑함을 어디서 느낄 수 있을까. 정관헌(靜觀軒)이라는 이름이 이곳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다.

2004년 가을, 내가 교육부 장관으로 정부에 있을 때, 수능 1등급을 몇 %로 할 것인가로 청와대와의 갈등이 오래 계속되었다. 마지막 결심을 앞둔 일요일 늦은 오후, 극도로 피로한 심신을 이끌고 덕수궁을 찾았다. 답답해서 집에는 못 있겠는데 딱히 갈 데가 마땅치 않아 . 그냥 이곳을 거닐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전시가 있는지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 아무 생각 없이 나도 그 뒤에 이어 섰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분이 나를 유심히 처다 보더니, 조용한 음성으로 “아니, 장관님이 이렇게 한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엉겁결에 나는 “장관도 쉬어야 하니까요”라고 나직이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아! 그렇겠네요.” 라고 답해 함께 웃었던 기억이다. 돌이켜 볼 때 덕수궁은 이처럼 내게 알게 모르게 마음의 안식처였던 것 같다.

나는 덕수궁 약속을 하면, 적어도 반 시간 전에 그곳으로 가서 주변을 한 바퀴 돈다. 어떤 때는 친구를 꾀어 함께 돌기도 한다.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 근처에는 개화 이후 교회, 학교, 외국공관 등 근대문물이 집중되어 있던 곳이어서 아직도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성공회 서울 주교좌성당, 정동교회, 배재학당, 이화여고, 구러시아 공사관 종탑 등은 역사적 건축물들이 곳곳에 있다. 망국의 슬픈 역사와 함께 새 역사의 맥박이 힘차게 뛰었던 곳이다. 유관순과 이승만도 여기서 새 세상을 꿈꿨으리라.
근처의 미술관, 소극장,
갤러리 등도 이 동네의 문화적 정취를 높인다. 이곳을 거닐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인 조그만 교회당..>으로 이어지는 고(故) 이영훈의 애잔한 사랑 노래 <광화문연가>가 귓가에 들린다. 아마 이 동네에 가슴 저린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 나이 또래의 늙은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IV.

언젠가 더운 여름 날, 운니동을 지나다가 혼자 운현궁에 들렀다. 안채, 사랑채, 별채 등으로 이루어진 흥선 대원군의 사저인데, 궁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크지 않은 규모의 조선 후기 한옥 저택이었다. 그러나 ㅁ자 형태로 빙 둘러싸고 있는 건물은 하나같이 무척 단아하고 격조 있는 느낌이었다. 한 때 옛 운현궁은 지금의 4배나 되는 거대 저택이었다는데, 지금은 그 영화의 흔적은 별로 눈에 띠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이 흥선대원군의 삶의 여정이 녹아 있는 현장이라니 감회가 깊었다. 궁내를 거닐면서 중학교 때 이하응의 파란만장한 집권과정을 그린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을 가슴 뛰면서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대원군의 권세 기간 동안 운현궁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이 그의 정치활동의 근거지였다는데, 그곳은 옛 모습대로 그대로 있었다. 모든 편액이 추사제로 되어있어 눈을 즐길 수 있었고, 거대한 나무 그늘, 너른 마당, 아름다운 담장이 인상적이었다. 뜨락을 거닐다 보니 더위도 금방 가셨다. 길가에 이런 좋은 곳이 있는데, 항상 그냥 지나쳤던 것이 후회 되었다.

이후 나는 친구들을 이곳에서 자주 만난다. 대부분 이곳에 난생처음 왔다는 데, 그래도 이 역사의 현장에서 권력의 무상함과 옛 양반가의 운치를 느낄 수 있다며 좋아하는 눈치였다. 안에서는 먹을 게 마땅치 않지만, 이곳에서 나와 재동으로 들어서면 주변에 음식점이 많다. 계동, 가회동, 안국동, 인사동 어느 쪽으로 가도 되고, 내친김에 북촌 한옥마을까지 올라가면 바로 조선시대 권세 있는 양반촌의 그림자와 만날 수 있다.

    V.

가을철 만남의 장소로 창덕궁과 경복궁도 백미(白眉)이다. 그러나 가을 한 철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래야 그 여운이 더 길게 남을 듯하다. 입궁 절차 등이 조금 까다롭지만, 창덕궁의 부용정, 규장각, 애련지, 주합루, 어수문, 그리고 후원(비원)의 비경은 자연과 문화가 최상으로 조합된 걸작 시리즈이다. 경복궁의 향원정과 경회루의 가을 정취도 가히 환상적이다.

옛 친구는 오랜 술에 비유된다. 옛 친구를 강남의 레스토랑이나 호텔 커피숍에서 만나기보다는 함께 옛 추억을 더듬으며 강북의 고궁에서 나들이하듯 만나자. 그래봤자 우리가 이 나이에 몇 번이나 더 만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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