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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아름다운 순간들

2011. 10. 26. by 현강


               I.
    나이가 70을 훌쩍 넘으니 아무래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때가 많다. 더욱이 요즈음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친지들을 별로 만나지 않고 지내니 가끔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함께 지냈던 시간이 어제인 듯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들과 즐거웠던 일, 기뻤던 일도 적지 않지만, 간혹 섭섭했던 일, 아쉬웠던 일들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내 기억 속에 좋은 일은 크게 담으려 애쓰고, 덜 좋은 일은 지워버리려 노력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름다운 순간들만 내 머럿속에 소중히 간직하려 한다. 그리고 가끔 그것을 꺼내 아껴둔 좋은 차를 마시듯 깊게 음미하려 한다.

              Ⅱ

    대학에서 30여 년을 가르쳤으니, 관계의 차원에서 보면 <사제지간>이 내 삶의 여정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아쉬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때 그들을 좀 더 열심히 가르쳤어야 하는데, 학생들의 마음을 더 헤아렸어야 했는데, 혹시 나로 인해 상처받은 학생들이 없었을까 하는 등의 상념이 항상 따르고 그때마다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들과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만드는데, 내 노력과 정성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더없이 고마운 일은 많은 옛 제자들이 학창시절에 스승과의 만남을 대체로 아름다운 순간으로 추억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거기에는 사제지간의 관계를 중시하는 전통적 유교 가치가 크게 작용할 것이다. 제자들 중 어떤 친구는 “선생님이 강의시간에 이러 저러한 말씀을 하셨는데, 아직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라고, 실은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얘기를 꺼내거나, 다른 친구는 “학점이 엄격하셨죠. 제가 선생님 과목에서 처음 D 학점을 받았어요. 그때 제가 반성을 많이 했고 그게 약이 됐습니다.” 라고 쓰린 옛 기억을 아름답게 더듬기도 한다. 또 어떤 친구는, “선생님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 많으실 겁니다. 저희가 늘 그것을 희원하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모여 엄청난 염력(念力)으로 작용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백만불 짜리 덕담을 하기도 한다. 모두 고마운 말이다. 면전이라 그렇지 아마 그들의 기억 속에는 섭섭한 일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쭙잖던 선생들의 행태도 향수 어린 아름다운 학창시절의 추억 속에 적당히 미화되는 모양이다.

   객관적인 상황이 그리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일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6.25가 터졌을 때 나는 10살 소년이었다. 두 번 피난길에 올랐고, 오랜 피난살이를 하면서 생전 처음 큰 고생을 했다. 그래도 그때를 돌아보면, 얼마간의 슬픔을 머금은 아름다운 순간이 되살아온다. 그때 나는 가난 속에서 사랑과 연민을 배웠고, 상황극복의 의지도 익혔다. 무엇보다 내 자의식이 크게 성장했다. 그러면서 전쟁의 참화가 내게 정신적 외상으로 남겨지기보다는. 자아 발전의 계기로 내 가슴속에 하나하나 아름다운 보석처럼 박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내 나이 또래의 많은 이들이, 소년기에 겪은 전쟁의 추억을 결코 비극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그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배 고품을 달래가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던 소년기의 그날을 아련한 향수처럼 아름답게 추억한다. 단언컨대 그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순간들이 없었다면 1970년대 이후 우리 세대가 앞장섰던 대한민국의 발전은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견 참담했던 그들의 슬픈 소년기가 이 나라의 내일을 창출하는 숨은 원동력이었기에 더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아름다운 순간은 감각적 즐거움이나 쾌락의 차원보다 오히려 얼마간의 갈등과 아픔, 슬픔과 연민, 배려와 성취가 있어 의미가 담길 때, 더 빛난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순간들은 결국 우리 마음속에서 피어나며, 결코 세속적인 쾌락이나 부귀영화와 연관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진부한 세속적 잣대나 클리쉐(cliche)로 자신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재단하기보다는, 그 순간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치를 찾음으로서 재정의(再定義) 할 필요가 있다.

                 III.

     되돌아 보면, 나는 많은 이들과 아름다운 순간을 너무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아름다운 순간을 이루는데, 내가 기여한 것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다. 그 아름다운 순간은 대체로 상대방의 호의와 노력, 배려와 도움 위에 쌓인 것이지, 실제로 내 노력이나 희생의 결과가 아니므로 부끄럽고 미안한 심정이다.

     내가 과거를 되새길 때 아름다운 추억만을 간직하려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아마 그러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좋다는 나름의 생각도 곁들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친지들과의 관계에서 덜 좋았던 일에는 본의든 아니든, 또 적던 많든, 언제나 내 책임이 수반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대체로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 게 아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내가 지나치게 이기적 이었던가 속이 좁아서, 혹은 괜한 오해를 해서 상대방의 비우호적인 행동을 유발한 경우가 많았다. 또 내가 불쾌했다면, 상대방도 마음 편했을 리 없고 그도 나로 인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런 일에 내가 섭섭하기에 앞서, 그에게 사죄해야 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친지와의 아름다운 순간만을 기억하려는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원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 간의 관계에서 언제나 좋은 일만 기대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얼마간 이기심과 집착에 매달리고, 거기서 오는 잦은 실수와 무례, 분노, 그리고 거듭되는 후회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모든 인간은 결국 거기서 헤어나 보려고 애쓰다 스러져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혹 얼마간 상대방의 잘못이 있다 해도 나도 백번 그럴 수 있기 때문에 일일이 따지고 문제 삼기보다는 크게 마음쓰지 말고, 가능하면 잊도록 노력하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더욱이 그와의 추억에서 덜 좋았던 일을 덮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었다면, 굳이 그늘진 추억을 떠올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Ⅳ.

     친지나 세상과의 관계에서 가능한 한 덜 좋은 기억은 한(恨)으로 남기지 말고, 지워버리자. 그리고 아름다운 순간들을 의미를 찾아 재정의하자. 그리고 새롭게 정제된 아름다움 순간들을 우리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다시 담자. 그러면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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