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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새벽찬가

2011. 12. 1. by 현강
                      I
    
나는 수면패턴이 이른바 <종달새 형>에 속해 대체로 새벽 4시면 침대에서 일어난다. 이 습관이 이미 젊었을 때부터 몸에 배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되면 그냥 <벌떡> 일어난다. 늦게 자도 이때쯤은 으레 잠에서 깬다. 그래서 자명종이 따로 필요 없다.

   나는 새벽 시간을 사랑한다. 새벽은 하루의 처음이고 시작이기에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회가 있다. 거기에는 첫사랑이나 첫눈과 같은 설렘, 순수와 신비가 있고, 출발선에 선 마라토너의 긴장과 결의가 있다. 그리고 잠든 영혼을 무섭게 깨우는 힘과 소명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 때면, 나는 마치 내가 온 세상을 처음 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또 이때만은 내가 70대의 노인이 아니라 세상 무슨 일도 해낼 수 있는 한창나이의 청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새벽 시간을 <축복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새벽>이라는 글자가 든 어휘를 무척 좋아한다. 새벽종, 새벽 기도, 새벽 바다, 새벽 시장, 새벽 기차, 새벽 산행이 그런 것들이다. 새벽을 연상시키는 <처음처럼>이라는 소주이름도 마음에 와 닿는다. 새벽이라는 이름의 밴드, 같은 이름의 여가수가 있어 반가웠다, 그런데 내 처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새벽 단잠>을 모르는 나를 천하에 불쌍한 사람이라고 한다.

                  II.

   새벽 4시부터 아침이 되는 7시까지는 아무도 범접하지 않는 나만의 <절대 시간>이다. 머리가 맑고 집중도도 높다. 생각도 샘솟는다. 공부가 직업인 나는 이 시간을 정말 요긴하게 쓴다. 그날 다른 일로 다시 책상머리에 앉지 못해도, 적어도 그 시간만은 온전히 내 것으로 남는다. 그게 어딘가.

   내가 40, 50대에 신문에 정치칼럼을 자주 썼는데, 저녁에 대충 주제만 생각해 두고 편하게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새벽에 글을 썼다. 생각을 정리하고 조직화하는데 이 시간대만큼 효율적인 때는 없기 때문이다. 글도 빨리 나온다. 옛날에는 대부분 주요 신문이 석간이라, 아침 8시면 기자가 글을 받으러 연구실로 찾아 왔는데 한 번도 차질이 없었다.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할 때도, 새벽은 내겐 천금 같은 시간이었다. 맑은 정신으로 정책구상도 하고 그날 일정에 맞춰 사전 준비도 철저히 했다. 각종 회의 자료도 일일이 챙기고, 연설문도 새로 다듬었다. 국회 상임위 답변 준비도 치밀하게 했다. 큰 실수 없이 두 번 장관직을 수행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새벽형>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우리나라의 다른 지방에 가거나 외국에 나가면 언제나 새벽 산책을 즐긴다. 새벽 어스름에 나가 새벽 거리를 거닐며 그 도시의 첫인상을 주워 담는다. 그러다가 새벽 시장을 찾아가 서민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본다. 텅 빈 새벽거리에서 공허감에 빠지기도 하고, 다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보며 희망을 느끼기도 한다. 외국 여행 때도 나는 언제나 새벽 산책을 즐긴다. 가이드 북으로 전날 그 도시를 대충 머리에 익히고, 새벽에 약 두 시간 동안 내 방식대로 도시를 한 바퀴 돈다. 유적이나 명소도 보고 게토(gehtto)도 찾는다. 그래서 많은 도시가 새벽의 영상으로 내 머리에 각인되어 있다.

    새벽은 명상하기에도 가장 좋은 시간이다. 굳이 종교적 명상이 아니라도 그냥 앉아 생각을 모아도 명상의 세계로 줄달음칠 수 있는 시간대이다. 영성의 깃을 통해 우리의 삶을 정화시키기에 최적이 시간이다.

                                  III.

    주위를 돌아보면,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많은 사람은 대체로 <올빼미형>들이다. 초저녁부터 시작하면 새벽까지 긴 시간을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나는 <종달새 형>이냐 <올빼미 형>이냐는 이미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이 개인 의지의 소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다. 어떻든 나는 내가 새벽 형이라는 사실에 무척 고맙게 생각한다. 지금 새벽 5시,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는 많은 분을 나는 안타깝게, 아니 얼마간 안됐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 <축복의 시간>에 잠이라니.

  

* 아래 첨부한 사진은 내가 지난 6월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알프스 아랫 마을의 새벽을 밝아 오는 시간별로 찍은 것이다. 그 순간 순간이 아직도 신비롭게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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