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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추억여행

2011. 8. 2. by 현강

 I.

40년 만에 내가 유학했던 <빈>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에서 이번 유럽여행은 회고적인 의미가 강했다. 20대 후반 찬란한 젊음을 보냈던 그곳을 찾아 옛 추억을 더듬으며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빈>에 도착한 후 첫 번째 한 일이 옛날 내가 살던 곳을 한곳, 한곳 되돌아보는 일이었다. 옛터를 다시 찾는다는 생각에 처음부터 가슴이 설렜다.

<빈> 유학시절 나는 거처를 일곱 번이나 옮겼다. 그 중 네 번은 총각 시절이었고, 결혼한 후에도 세 번 이사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결혼 후 2년간 살았던 <빈> 14구에 <볼풔스베르그>(Wolfersberg)라는 산간 동네다. 도심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 <빈>숲(Wienerwald) 가까이에 자리한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인데, 그곳에서 첫 딸을 낳았고 내 공부도 크게 진척이 되었다. 그래서 그곳을 가장 먼저 찾아보고 싶었다. <빈> 도착 다음 날 서둘러 추억여행 길에 나섰다.

 어떻게 갈까 궁리하다가 40년 전 내가 다니던 옛길을 그대로 더듬어 보기로 했다. 그간 전차나 버스노선이 다 바뀌었을 터이니, 얼마간 고생을 할 각오를 했다. 우선 <빈>대학 앞에서 전차를 타고 두 정거장을 가서 <폭스가르텐>(Volksgarten) 앞에 내렸다. 거기서 길을 건너면 14구 <휘텔돌프>(Huetteldorf)로 가는 49번 전차 정거장이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면서 아직도 그 전차노선이 그대로 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건너편 전찻길 옆 표지판에 49번 노선명이 선명하게 새겨 있는 게 아닌가. 무척 반가웠다. 가슴도 뛰었다. 몇 분 후 앞머리에 <휘텔돌프>라는 종점명을 단 49번 전차가 다가왔다. 전차는 40여 년 전 내가 매일 다녔던 그 익숙한 노선을 한 치의 어김도 없이 그대로 따라 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길거리 모습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40여 년 전 대학에서 오후 세미나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고 있다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40여분 지나 <휘텔돌프> 종점에 내렸다. 여기서 코너를 돌아 한 20M 걸어가면 마을버스 출발점이 나온다. 마을버스 번호가 몇 번이던가. 나는 코너를 돌면서 가까스로 149번 마을버스 번호를 기억해 냈다. 아니 그런데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정류장에는 149번 버스 표지판이 옛 모습 그대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 노선도와 시간표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낮 시간에 매 시간 네 번 왕래가 있는 것도 옛날과 다름없었다. 거기에는 <볼풔스베르그> 동네사람들로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 두서너 명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정겹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정경도 보며, 마치 내가 타임 머쉰을 타고 40여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1960년대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15분 후 옛집 앞에 내렸다. 작은 2층집이 옛 모습 그대로였고, 집 앞마당 조그만 정원에는 5월의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집 앞 작은 성당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시계를 보니 <빈>대학 앞에서 출발한 지 1시간 20분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소요시간도 그때와 똑같을까.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내 과거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미리 짜고 설정해 놓은 가상의 상황 속에 내가 들어간 느낌이었다. 40여 년의 세월이 사라진 그곳에, 70대의 노인이 20대 후반의 청년으로 돌아가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II.
이런 식으로 이틀 동안 <빈>시절, 내가 살았던 여덟 곳을 다 찾아다녔다. 동네가 완전히 변해 옛집이 아예 자취를 감쳐버린 한 곳, 옛터에 새로 교회가 들어선 또 한 곳을 빼면, 나머지는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나를 반겼다. 그동안 도시를 가로질러 지하철 노선이 몇 개 생긴 것을 빼면 거의 모든 전차, 버스노선이 옛날 그대로였고, 집 근처 빵집, 세탁소, 구멍가게도 그대로 있는 곳이 많았다. 마치 내 방문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견디며 기다렸던 것 같았다.

 반세기 가까이 지나는 동안 천지개벽을 몇 차례 거듭한 서울의 변화와 견주면 <빈>은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곳의 지인들은, “도시가 많이 변했지, 지하철이 대중교통체계를 많이 바꾸어 놓았어. 이제 <마리아힐훠스트라세> (Mariahilferstrasse)에 전차가 안다니고, <서부 역>(Sued Bahnhof)에 어마어마한 공사가 진행 중이야”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빈>은 마치 시간이 머물러 있는 도시 같았다.

추억여행에 나선 내게는 <빈>이 아직도 옛 모습 그대로라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옛 풍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그 때문에 당시의 ‘나’를 보다 쉽게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이 보배처럼 값지게 느껴졌다. 그 중 결혼 후 살았던 네 곳은 내 처와 함께 돌아보며 옛날을 더 생생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서로 “아 참, 그때 그랬지”를 연발했다. 내 처는 고생했던 일을 많이 회상했고, 나는 즐거웠던 일을 더 많이 얘기했다. 당시의 희비애락을 되새기며 추억의 공유가 부부를 엮어 주는 중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을 했다,

 <빈>은 조용히 변하는 도시다. 오랜 문화와 예술, 그리고 역사를 안고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바로 그 지난날의 하중 때문에 변화가 어렵다. 급격한 변화는 고사하고 작은 변화에도 진통이 따른다. 나는 옛터를 찾아 도시 곳곳을 누비면서 내가 서울이라는 격동적인 위성에서 찾아온 외계인처럼 느꼈다. 그러면서 <빈>의 그 간의 ‘작은 변화’에 감탄하고 크게 감사했다. 그리고 여러 번 <옛것이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 복고적이 되어서 그럴까. 아니, 분명히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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