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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기업가형 총장과 학자형 총장

2011. 5. 8. by 현강

     I.
세계화 시대에 바람직한 대학교 총장 모습으로 <기업가형> 총장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론도 미국의 몇몇 사례를 들어가며, 이제는 대학경영도 기업가형 총장에게 맡겨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총장 지망자들이 선임과정에서 경영자적 경험이나 그 잠재력을 과시하며, 재임 중 밖으로부터 거액의 기금을 받아 내겠다고 공언하는 경우가 많다. 또 기업가적 자질을 앞세우는 접근이 다양한 대학관계자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대체로 기업가형 총장은 전 지구적 차원의 대학경쟁이 시대적 흐름임을 환기시키며,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의 제고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대학재정의 확충과 대학의 고강도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그들의 화두는 대체로 경쟁과 돈이며, 그런 의미에서 주로 시장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오늘 한국의 대학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우선 향후 10여 년간 고교졸업생 수가 67만 명 에서 41만 명으로, 약 40%가 급감한다. 이렇게 되면 적지 않은 대학이 신입생 부족으로 재정적 위기에 처하고 급기야 폐교에 이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대학은 전면적인 학사개혁을 서둘러야 하며, 예견되는 재정적 어려움에 대비하여 경영합리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앞으로 대학의 국제적, 국내적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가운데, 대학과 기업 및 정부 간의 이른바 <삼중 나선구조>(triple helix) 또한 대폭 강화될 것이다. 그런 가운데, 외부의 재정지원 및 협력을 얻기 위한 대학 간 평가경쟁이나 수주경쟁도 그 수위가 날로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제반 상황은 기업가형 총장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크게 높인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총장이 대학총장으로 선임되는 예가 근년에 들어 계속 늘고있다.

대체로 기업가형 총장은 다음의 몇 가지 성향이 강하다. 즉 그들은 목표지향성이 강하고, 조직의 내적 경영 및 대외적 교섭능력이 출중하다. 자신의 업적을 세상에 알리는 데도 능하다. 이 유형은 또한 조직 내에 쇄신의 기풍을 일깨우는 장점이 있다. 한편 이런 유형의 총장들은 대학을 유사 기업조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경쟁력과 가시적 성과에 크게 역점을 두며, 경영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고강도 구조조정이나 징벌적 규제도 마다하지 않는다. 때문에 조직을 필요 이상 긴장시킨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중시하는 공식적, 양적 평가지표 이외에 조직 내의 민주적 합의과정이나 구성원의 복지와 행복 등 질적 지표는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유형의 총장 들 중 적지 않은 이가 대학문화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부족하여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는다.

     II.

기업가적 총장에 대조되는 유형이 학덕을 갖춘 총장상이다. 학문이 깊고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뛰어나, 대학 구성원으로부터 두루 존경을 받는 고전적 총장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얼마간 옛 선비의 고고한 기품이 남아 있는 경우다. 나는 여기서 편의상 이런 유형의 총장을 <학자>형 총장이라고 명명하고자 한다. 생각 같아서는 <학덕인>(學德人)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그것이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냥 쉽게 이해되는 <학자>라는 개념을 택했다. 이러한 유형의 총장상은 오늘과 같이 변화무쌍하고, 경쟁적인 대학상황에서는 대체로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곤 한다. 실제로 선거를 통하여 총장을 선출하는 경우, 이러한 유형의 교수는 선뜻 경선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고, 경선에 나와도 치열하고 간혹 혼탁까지 한 총장 선거과정을 잘 견디고 총장에 당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학자형 총장 유형을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은 대체로 대학에서 학자적 삶으로 일관했으므로 대학경영이나 사회접촉에 서투를 가능성이 크다. 또 변화에 대한 순발력이나 위기관리능력도 뛰어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형은 대체로 조직의 이익보다 사회의 공익을 먼저 생각하고, 대학의 발전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균형감각과 통합능력이 두드러지며 사회적 합의를 중시한다. 이들은 또한 파격과 쇄신보다는 점진적 개혁을 선호하며, 변혁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구성원의 소외와 좌절, 그리고 마음의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면서 가시적 성과지표보다 구성원의 삶과 관계있는 질적 지표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무엇보다 이들은 인문학적 지성을 바탕으로 대학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다양한 대학구성원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 한다.

  III.

위에서 기업가형 총장과 학자형 총장을 대비하여 보았다. 비교를 위해 양자를 대척적으로 서술하였으나, 현실 세계에서는 총장 대부분이 비중이 다를지언정 두 가지 성향을 얼마간 겸비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어떤 쪽에 더 큰 비중을 두는가에 문제로 귀결될 때가 많다. 그런데 나는 오늘과 같은 변혁의 시대에도, 학덕을 갖춘 학자형 총장상에 대해 아련한 향수와 미련이 남아있다. 그래서 비중이 전자 보다는 후자 쪽으로 기울어졌으면 한다. 기업가형이 보여주는 기능적 효율성과 가시적 성과 못지않게, 학자형 총장이 보여 주는 인문학적 통찰력이나 통합적 리더십이 대학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도 순수 유형의 학자형 총장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들은 오늘과 같은 경쟁시대에 조직발전의 맥락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학자형의 기품을 지니면서 얼마간 기업가적 이해와 센스를 함께 지닌 사람이면 좋겠다는 얘기다. 지나친 바람인가.

그 이유를 한마디만 더 들어보자. 대체로 기업가형 총장은 대학의 주요 보직을 자신을 빼어 닮은 <아바타>들로 채우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에 비해 학자형은, 자신의 참모를 보다 다양하게 구성하면서, 자신의 부족분을 채워 줄 경영전문가를 중용하는 경우가 잦다. 예컨대, 부총장을 전형적인 기업가형으로 임용하고, 편견 없이 그의 조언을 경청하며, 그의 힘을 크게 빌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옛 선비출신 정승들도 그들의 출중한 인문학적 통찰력을 바탕으로 인재를 적재적소에 고르게 등용하여 성공적으로 제도개혁과 조직쇄신을 수행한 예가 많다. 바로 그게 통합적 리더십이다. 나는 그러한 숨은 능력에 기대를 건다.

  IV.

나는 학자적 기풍과 인격을 갖춘 ‘선비’ 같은 총장을 만날 때는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싹트나, 눈에 핏발을 세우며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장사꾼’ 같은 총장을 만나면 맥이 탁 풀린다. 그러면서 ‘도대체 당신이 대학을 아느냐’고 한마디 하고 싶어진다. 대학은 이미 상아탑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 수장의 모습에서 상아탑의 옛 정신, 아니 그 그림자라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대학교육’ (2011년 5,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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