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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단순한 삶'을 향한 여정

2011. 5. 1. by 현강


     I.
복잡하고 고단한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은 내심 ‘단순한 삶’(simple life)을 동경한다. 특히 근자에 크게 일고 있는 이른바 웰빙(wellbeing) 붐과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철학도 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실천한다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한 삶’은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그 양식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꼭 필요한 것만 갖고 살자>라는 철학을 가장 앞세운다. 인간의 욕심과 현대 문명이 우리에게 삶의 본질과 무관한 많은 것을 과도하게 추구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그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시간을 필요한 일에 제대로 쓰자>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괜한 짓, 허튼짓,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많이 하며 사는데, 소중한 시간을 사랑 나누기와 보람 있는 일에 한껏 아껴 쓰자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자연으로의 회귀를 염원하며, 지나치게 현대문명의 편리에 기대지 않으려 한다. 어떤 이는 단순한 삶의 정신적 측면을 강조해서 그것은 <‘내적 자아’(inner self)와 함께 하는 삶>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II.

 언제부터 내가 단순한 삶을 꿈꾸어 왔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거기에는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세계 최빈국으로 극한의 가난을 겪었던 우리가 이제 과분할 정도의 풍요를 누리면서, 그것도 모자라 물질주의, 소비주의에 탐닉하여 끝없는 탐욕과 이기심의 노예가 되고 있는 데 대한 내적 성찰이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도 내가 좋아하는 톨스토이, 타고르, 간디, 소로우, 법정 등이 모두 단순한 삶을 추구하였기에 그들의 사상이 부지불식간에 내 뇌리에 스며들었으리라 생각된다.

 실제로 나는 2001년-200년에 걸쳐 1년간 캐나다 벤쿠버의 UBC 대학에 방문교수로 있을 때, 그러한 삶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본 경험이 있다. 방 하나에, 거실과 부엌이 딸린 작은 교수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곳에 나 혼자 약 8개월, 내 처와 함께 4개월 지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집기 몇 점만 있었고, 서가에도 당장 볼 책 몇 권만 놓았다. 그 기간 동안 따로 물건을 사지 않았다. 옷도 편하게 입고 항상 걸어 다녔다. 그러면서 나는 실제로 생활에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항상 마음이 즐겁고 충만했다. 그때 나는 지난 날 내 생활에 불필요한 거품이 많았다는 것을 절감하고 부끄러웠다. 그러나 귀국 후 다시 옛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후 자주 그때 그 생활이 그리웠고, 은퇴하면 다시 그렇게 살리라 다짐했다.

 속초에 온 후, 그런대로 처음 몇 달은 당초의 결심을 지키려고 나름대로 애썼다. 가구도 최소화하고, 신문, T.V도 없이 지냈다. 책도 꼭 필요한 것만 서가에 꽂았다. 그러나 이 생활이 오래가지 않았다. 첫해 겨울밤이 왜 그리 긴지, 늦은 저녁 이후 시간 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결국, 겨우 석 달을 버티고 TV를 들여 놓았다. 나는 서울에서 핸드폰 없이 잘 지냈다. 그런데 오히려 이곳에 온 후 내가 혼자 산행을 자주 하는 것이 걱정된다는 가족들 성화에 못 이겨 끝내 그것도 하나 장만했다. 그러면서 차츰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인간적 최소한>(human minimum)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면서 날이 갈수록 그 <최소한>의 범위가 자꾸 넓어졌다.

 2년 속초 생활을 뒤로하고 속초 위 고성으로 이사를 왔다. 단독주택을 지었는데, 처음에 30평 안쪽을 예정했었다. 그런데 짓다 보니 규모가 훨씬 커졌다. 욕심이 곁들인 것이다. 새집이 원룸 형식의 훤하게 열린 공간이어서 빈 공간을 얼마간 채워야겠다는 생각에 가구도 몇 점 들여 놓고 그림도 새로 걸었다. 그러다 보니 우선 집안 모습부터 당초 내가 생각했던 단순한 삶의 양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아직 마음으로는 <필요>의 범위를 가능한 한 좁히고, 삶의 바탕을 자연의 품속에서 찾아보려고 애쓰고 있으나 날이 갈수록 그 실천의지가 약해지는 느낌이다. 5년째 신문은 구독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유가 <조. 중. 동>이나 <한겨레> 모두에게 질린 탓이니, 이 또한 단순한 삶의 양식과 무관한 얘기가 아닌가. 그러다보니 날이 갈수록 내가 꿈꿨던 삶의 양식에 가까이 가기 보다는, 오히려 그로부터 자꾸 멀어지는 느낌이다.

  III.

‘단순한 삶’은 온갖 인간의 탐욕 때문에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는 <하나뿐인 지구>를 살리고, 정신적, 문화적으로 보다 고양된 삶을 위해 바람직한 생활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소식(素食)이 건강에 좋은 것이나 같은 이치다.

  단순한 삶은 강요된 가난이 아니라 자발적 생활양식이다. 스스로 즐겨서 찾아 나서는 길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단순한 삶의 요체는 무엇보다 스스로의 마음을 비우는 데 있다고 본다. 내가 그 길목에서 반복해서 실패하는 것도 역시 마음을 제대로 비우지 못하고 아직 세속에 집착하기 때문이 분명하다. 법정스님이 늘 말씀하셨던 <빈 마음>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삶을 지향하면서도 그 길목에서 마냥 비틀거리는 나를 위로하는 말이 있다. 이 길을 걷는 이들이 흔히 인용하는 대목이다.

  그것은 목적지(destination)가 아니라 여정(journey)이다”
 
"그것은 두 걸음 전진하고, 한 걸음 후퇴하는 것이다.“

 나는 우선 단순한 삶을 향한 여정이 보다 즐거운 것이 되도록 노력할 작정이다. 아울러 잦은 후퇴에도 불구하고, 전진에 대한 낙관적인 확신을 스스로에게 불어 넣는 데 더 힘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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