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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이스라엘의 추억(I)

2011. 3. 25. by 현강

I.

1996년 가을 제네바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교육장관회의’에 참석했던 나는 이틀 짬을 내서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이스라엘 측에서 교육협의 등 공식적 일정 외에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묻기에 나는 두 곳을 청했다. 하나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영재교육기관 한 곳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전설적 집단농장 ‘키브츠’였다. 많은 유태인들이 세계 역사에 ‘머리’로 기여를 많이 하는데 도대체 그곳에서는 영재를 어떻게 키우는지 궁금했고, 아울러 이스라엘 건국의 모체이면서 자본주의 사회인 이스라엘에 활력을 넣어주는 키브츠라는 ‘사회주의 공동체’의 참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오늘, 공식적 방문 목적이었던 교육협약과 갖가지 행사들은 이미 빛바랜 기억으로 내 뇌리에 희미한 잔상만 남겼는데, 자투리 시간에 비공식적으로 찾아갔던 이 두 곳의 방문은 아직도 그 낱낱의 장면이 고스란히 떠오를 정도로 매우 강렬한 인상을 선사했다.

II.

내가 방문했던 영재학교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으로 이름이 ‘과학. 교육 아카데미’(Academy of Arts and Science)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에 무슨 학교 이름이 붙었는지는 기억이 확실치 않다. 불과 두 시간 남짓의 짧은 방문이었으나, 내 교육철학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우선 학교, 교실, 기숙사 모두가 무척이나 소박하고 추호의 겉치레도 없었다. 세계적인 영재학교인데, 겉모습은 마치 면 소재지에 있는 조금 뒤진 학교를 찾은 느낌이었다. 과학실험실에도 기본적인 실험기구 정도만 있었을 뿐이었고, 기숙사도 한 방에 세 명이 기거하고 있었다. 셋이 조금 많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세 명이 함께 있는 것이 가장 교육적”이라는 짤막한 대답이었다. 과학과 예술의 영재들을 함께 모은 까닭을 물었더니, “과학과 예술이 가장 창의력을 요구하는 분야이고, 둘이 함께 만날 때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또 가장 큰 성과를 담보 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예상했던 대로, 교육과정은 한마디로 창의력 계발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주입식 교육은 없었다. 대신에 교사가 질문을 던져서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학생이 답을 하면, 다시 교사가 질문하여 그가 미처 보지 못한 측면으로 생각의 물꼬를 틀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학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지적 탐색을 이어가게 하는 교육 방식이었다. ‘맞다’, ‘틀리다’ 식의 정답풀이는 가능하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주입식 교육에 길든 이주민 자녀들은 처음에는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는 얘기였다. 아울러 팀을 이뤄 함께 토론하고 공동으로 문제를 푸는 연습을 많이 하는데, 이 때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 상호 자극과 보완을 통하여 상승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특이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주에 한번 오후 시간에 이들 학생에게 필수적으로 사회봉사에 나서거나, 노작(勞作)에 임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을 찾아 그곳에서 간난과 고초를 겪고 있는 취약계층을 돕는 일과 땅을 일구는 등 육체노동을 하는 일이 그들의 교육과정에 깊숙이, 그리고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그러면서 이들 영재에게 그들의 뛰어난 재능은 하느님의 큰 축복이므로, 이 소중한 자산을 자신만을 위해서 써서는 안 되고,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작은 사람’들을 돕고, 제일 ‘어두운 구석’을 밝히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을 교육한다는 것이었다. 시골 면장 모습의 교장 선생님은, 특히 교육과정을 통해서 자칫 학생들 마음속에 움틀 수 있는 어쭙잖은 엘리트의식을 가라앉히고 이스라엘 사회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애정과 겸손, 봉사와 헌신의 정신을 심어주는데 가장 큰 노력을 경주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학생들을 어떻게 선발하느냐고 물었더니, 상시로 가동하고 있는 이른바 ‘발굴 프로그램’(discovery program)를 통해 가장 높은 수준의 ‘발전 잠재력’을 갖춘 영재들을 충원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 두 차례 시험을 통해 선발하는 대신, 우수 학생들에 대한 내신자료와 학습정보들을 바탕으로 직접 현지에 찾아가 일정 기간 그들을 관찰하고, 상담, 테스트하는 과정을 통해 신중하게 ‘진짜’ 영재를 발굴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선발된 학생들의 계층별, 지역별 구성이 대체로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계층별, 지역별 구성과 엇비슷하다며, 대부분 다른 나라의 영재학교의 학생들 대부분이 중상층 자제인 것과 차이가 난다는 설명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주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접경지역의 아랍계 빈곤계층 자녀도 적지 않다고 얘기했다.

그 학교는 영재들에게, ‘자신’에 앞서 ‘나라와 사회’를 생각하고, ‘자부심’에 앞서 ‘겸손’을 내면화하며, ‘세속적 출세’보다는 ‘사회봉사와 헌신’을 지향하도록, 그리고 ‘도구가 되기보다는 ‘본질’을 추구하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한마디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진짜’ 영재의 양성이라는 아름다운 꿈을 형상화하는데 매달리는 모습이었다,

III.

나는 이 학교를 돌아보며, 평준화 이전 한국의 이른바 ‘일류학교’들, 그리고 요즈음 크게 부상하고 있는 되는 몇몇 우수 ‘외고’, ‘특목고’ 등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들 학교의 교육철학, 입학 및 교육과정, 이들 학교 출신들의 사회적 계보, 그리고 그들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따져 보았다. 아울러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의식과 엘리트주의도 되씹어 보았다. 그러면서 한국 교육의 현주소가 너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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