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오랜된 얘기이다. 사회과학을 하는 비슷한 나이 또래 교수 몇 명이 옛날 조교 시절 얘기를 함께 나누었다. 1960년대 빛바랜 기억들이었는데, 얼마간 낭만적 기분으로 모두 가난하고 힘들었던 옛날 예비학자 시절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S 대학의 H 교수가 이미 고인이 되신 자신의 은사를 아래와 같이 회상했다.

“제 교수님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L 교수님이셨죠. 학문도 좋으셨고 인품도 훌륭하셨죠. 제자 사랑도 남다르셨어요. 한마디로 모든 면에서 존경스러운 분이셨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제가 정말 그분을 만난 게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 분이 바둑을 지나치게 좋아하셨다는 거 에요. 예를 들어 보죠. 이 어른이 점심때 쯤, ‘H군, 내가 잠시 혜화동 기원에 다녀올게.’ 하고 훌쩍 나가시면, 그다음에는 종무소식인 거예요. 그러다가 밤 9시가 넘어서야 연구실로 돌아오셔서 급히 책가방을 챙겨 댁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러시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 제가 굳게 결심을 했죠. 앞으로 나는 결코 바둑은 두지 않겠다고. 그런 의미에서 L 교수님은 제게 반면교사 노릇도 톡톡히 하신 셈이죠.”

이후 화제는 반면교사로 옮겨져 너도나도 반면교사 타령을 읊었다. 어떤 이는 자기 스승이 너무 술을 좋아하셨는데 따라다니다가 자신도 술이 너무 늘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큰 결심을 하고 술을 끊었다는 말을 했다. 또 다른 이는 스승이 너무 학교 보직을 즐기셔서 연구생활이 자꾸 뒷전으로 가기에, 자기는 앞으로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고 이제껏 보직을 피해 가며 교수 노릇을 한다는 얘기도 했다.

나도 한몫 거들었다. 대학원 때 내가 모시던 A 교수님이 워낙 사람이 좋으셔서 지인이 꽤 많으셨는데, 웬걸 하루는 내게 “내가 보니 너는 남자 기생이다. 왜 그리 친구가 많으냐. 연구실로 전화 거는 놈, 찾아오는 놈이 부지기수니. 분명히 말하지만, 앞으로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친구들부터 정리해라.”라고 일갈하셨던 기억을 되살렸다. 속으로 “세상에 선생님처럼 사람 좋아하시는 분이 또 계실까. 선생님부터 정리하시지.”하는 불충한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그 말씀을 진심으로 고맙게 받아들이고 지금껏 마음속에 깊이 새겨 큰 가르침이 되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자 한 교수가, “아마 그때 A 교수님 말씀이 내심 안 교수보다 본인 자신을 겨냥했던 말씀이실 수도 있지.” 라고 말해 모두가 함께 웃었다.

그러던 중, K 교수가 “지금 우리가 이렇게 떠들고 있는데, 어디선가, 혹시 우리 제자들이 우리에 대한 품평회를 신랄하게 하고 있을지 모르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그동안 반면교사로나 구실을 했을까, 쓸 만한 스승으로 제대로 평가받기는 글렀어요.”라고 자괴감을 피력하자, 이 사람, 저 사람 ‘동병상련’이라며 자신의 스승 구실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II.

그날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무슨 일이든 제대로 하자면 얼마간 자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둑이던 술이든, 아니면 친구든지 간에 즐기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한껏 다 하면서 제 본업에 충실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언제나 성공에는 얼마간 희생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런 의미에서 그 자제와 희생은 값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나처럼 별로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내가 술도 골프도 하지 않고, 오락이나 취미에 능하지도 못한 것이 그나마 크게 어긋나지 않고 평생 교수 노릇을 하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이 별도의 자제력을 발휘해서가 아니라, 그냥 천성이 그래서 그러했던 것이기에 그 점도 내 바탕을 그렇게 만들어 주신 하느님과 부모님께 고맙게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학습자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워낙 불완전한 존재라서 스승이라고 해서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이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도 어딘가 결함이 있고 빈틈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의 장점을 간과하고 단점에 주목하는 대신에, 그 분의 장점을 열심히 따라 배우고, 그 분의 결점은 반면교사의 관점에서 거꾸로 학습한다면, 스승의 단점마저 생생하고, 귀중한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있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승 당사자의 그릇 못지않게, 배우는 사람의 학습자세가 매우 중요한 열쇠라는 것이다.

III,

그러다가 엉뚱한 결론이 머리에 떠올랐다. 사회현상이든 사람이든, 아니 어찌 보면 자연형상까지 세상 모든 것,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다 우리의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카다피나 김정일도 이 시대에 더 할 수 없이 좋은 학습자료가 아닐지.

그런데 이 논리가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옳고 그른 것을 바르게 판별할 수 있는 예지(叡智)가 우선 갖춰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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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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