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교수에게

    시카고에 도착해서 보낸 편지 잘 받았네. 나이 들어 외국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일주일 만에 그곳에 안착한 느낌이라니 새 터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네. 무엇보다 둘째가 그곳 학교를 좋아한다니 큰 다행이네. 시작이 반이라는데, 처음이 좋으니 앞으로 1년 성공적으로 연구년을 보내리라 믿네.

     대체로 누구나 연구년을 떠날 때는 부푼 가슴으로 오랜만에 한껏 공부하고 오겠다는 결의를 다지네. 그러나 막상 떠나면 새 터에 적응하는데 두어 달, 또 이런저런 일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얼마를 보내다 보면 쉽게 후반으로 접어들게 되네. 그러면 불가피하게 공부계획을 하향 조정하고, 이왕 온 김에 골프도 치고 여행도 좀 다녀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다시 일을 그르치게 되네. 그러다 보면 귀국 날짜가 다가오는 경우가 많네. 부디 자네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네.

     공부라는 것이 제법 열심히 해도 별로 표가 안 나는 법이네. 시간을 두고 지속적으로 해야 조금씩 축적이 돼서 한참 가야 얼마간 성과를 거두네. 감질나는 일이지만, 그나마 그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게 바로 공부네. 그래서 공부는 소처럼 꾸준히 일하는 사람이 이기는 경주네. 나는 그동안 준마(駿馬)처럼 멋지게 달리다 경주 후반에 제풀에 주저앉는 학자들을 수없이 보았네. 공부꾼이 학업에 성과를 올리는 데는 인내와 끈기, 노력과 자제가 최상의 열쇠네. 그래서 내가 자네 만날 때마다 부디 밖의 일 줄이라고 싫은 소리를 하고, 전에 청와대에서 자네를 애타게 찾을 때도 절대 가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이네. 이렇게 말하면, 마치 나는 공부의 정도(正道)만 걸은 것 같은데, 실은 자네가 알다시피 나도 그러지 못했기에 뒤늦게 아쉽고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니 오해는 말게나.

     네 명 가족이 세 군데로 나뉘었으니, 오죽 마음이 편치 않겠나. 그러나 모두 더 큰 발전을 위해 한 해 동안 약간의 무리를 하는 것이니, 너무 힘들어하지 말게나. 기약 없이 여러 해 떨어져 사는 ‘기러기 가족’들도 많은 데, 그 생각하면 그래도 형편이 나은 것 아닌가. 자네 말 대로 도전이자 기회로 삼아 의연하게 이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기기 바라네. 당연히 그러겠지만, 자주 이메일이나 화상 통화로 가족 간에 사랑하는 마음을 나누고, 서로 고무, 격려하기 바라네.

    연구년 제도는 나와 인연이 깊네. 이야기가 나오니 옛날 얘기를 하나 하겠네. 조금 무용담 같은 얘기라 시작하려니 쑥스럽네. 1989년 초였던 것 같네. 내가 연세대학교 교무처장을 할 때인데, 연구년 제도의 실시를 학교에 강력하게 건의했네. 모든 교수가 6년 열심히 일하고 한 해 재충전하자는 내용이었네. 그랬더니 총장님 이하 모든 실, 처장들이 한결같이 펄쩍 뛰며 시기상조라며 크게 반대를 했네. 그래서 내가 연차계획과 소요예산, 예상되는 성과를 치밀하게 분석한 기획안을 내보이며, 실제로 예상되는 성과에 견주면 그만한 지출은 연세대학교가 넉넉히 감내할 만하다고 우겼네. 논란 끝에 결국 내 제안이 교무회의를 통과했네. 그렇게 해서 연세대학교가 한국 최초로 전 교수 대상의 ‘연구년 시대’를 열었네. 그런데 놀라웠던 것은, 그때 연세대가 힘들게 테이프를 끊자, 이 제도가 마치 요원의 불길처럼 삽시간에 크게 번져 불과 몇 년 사이에 대부분 주요 대학들이 연구년을 제도화하였다는 사실이네. ‘제도 개혁’, ‘쇄신의 확산’ 등 내가 평소 강의시간에 즐겨 읊었던 주제들을 앞장서서 실천했던 일이기에 아직도 그 얘기를 하면 가슴이 뛰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교수들이 연구년 제도를 진정으로 자신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래서 나는 연구년에 외국까지 나가서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도록 골프하기에 여념이 없는 젊은 교수들을 보면 정말 부아가 나네. 아예 ‘골프 실력 올리는 게 이번 연구년의 첫째 목표‘라고 공언하는 철없는 학자도 보았네. 그래서 내가 미국에 연구년을 갔을 때 한번은 작심하고 그런 친구를 불러서 나무라기도 했네. 그렇다고 허구한 날 공부에만 매달리라는 얘기는 아니네. 얼마간 여유를 가지고 그곳 세상도 둘러보고, 건강도 보살피고, 모처럼 가족에게 봉사해야 할 걸세. 공부도 당장 써먹을 것이나 세부전공에 매달리기보다 좀 더 긴 안목으로, 또 전공의 경계를 넘어 옆 동네도 기웃거리면서 폭넓게 새 지식을 섭렵하는 게 필요하리라 생각하네.

    내 경우를 좀 얘기하겠네. 나는 40년 가까운 교수 생활 중, 연구년 만은 놓치지 않고 열심히 챙겼네. 아마 내 연배 교수로는 드문 예 일걸세. 1978년 독일 만하임 대학, 1982년 강원대학교, 1992년 미국 씨라큐스 대학, 2001/2002 캐나다 UBC 대학의 네 번 기회였네. 하나하나 사연이 많았네. 첫 번째는 Humboldt Fellowship을 받았던 경우인데, 연세대 재직 기간이 짧아 규정상 월급의 대부분을 포기하면서 독일행을 감행했네. 내 첫 번째 단독저서, <현대공산주의연구>(1982, 한길사)가 그 결실이었네. 어떻든 매번 나에게는 연구년이 대단히 유익한 시간이었네. 그러한 재충전이 없었다면, 내가 그 오랜 세월동안 크게 어긋나지 않고 교수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하네. 네 번 기회를 독일, 미국, 캐나다, 그리고 한국의 지방도시에서 보내며 세상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얼마간 거리를 두고 한국과 서울생활을 관조하며, 자신을 깊숙이 성찰할 수 있었다는 것만 해도 내 학문과 정신세계를 살찌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네. 그래서 나는 입버릇처럼 “연구년 1년 동안 충전해서 10년간 버텼다.”고 애기하곤 했네. 무엇보다 비교문화론적 관점에서 엄청난 학습을 했다네. 그런 의미에서 M박사도 익숙한 유학지 영국을 택하지 않고, 미국을 새 연구지로 택한 것은 정말 잘할 것 같네.

   그래서 나는 제자나 젊은 후배 교수들에게 연구년이라는 재충전의 기회는 놓치지 말고, 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라고 항상 조언하네. 꼭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좋다고 보네. 그러나 한국에 머무는 경우, 그간 자신을 옥조였던 온갖 일거리와 잡무로부터 스스로를 완전히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 않은 듯하네.

    내 동료 들 중에는 오랜 교수 생활 중 연구년을 한 번도 활용하지 않은 분들이 적지 않네. 집안 형편이나 건강 등의 이유도 있지만, 학교 보직이나 다른 세속적인 욕심과 집착 때문에 일 년간 자신을 이곳 일상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네.

   그러나 교수에게 연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언가. 누구나 재충전 없이 몇 년을 버티다 보면 점차 지식이 고갈되고 자신의 연구능력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되네. 이처럼 자신의 지식 통장의 잔고(殘高)가 바닥이 날 때쯤,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도는 연구년을 떠나는 것이네. 그러나 그 때는 조금이라도 <라싸>로 향하는 티베트 순례자의 경건한 마음가짐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것이 학문하는 사람의 도리네.

    M박사, 얘기가 너무 길어졌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연구년은 교수에게 주어진, 그리고 그들만이 누리는 엄청난 특혜이자, 축복이네. 그 기회를 한 점 후회 없도록 최극점까지 활용하기 바라네. 그래서 내년 이맘때 쯤, 귀국 후 우리 연구모임에서 멋진 학술 발표를 통해 그간 노력의 결실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네,

    이곳 고성은 아직 겨울 풍경이네. 멀리 울산 바위와 달마봉에 아직 눈이 덮여 있고, 꽃샘추위도 만만치 않네. 집 앞마당에는 봄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뒤뜰은 한겨울 그대로 눈 속에 파묻혀 있네. 그러나 자연의 절기는 어쩔 수 없는 듯, 앙상한 나무들 사이사이로 나르는 새들의 지저귐이 한결 밝아지고 봄의 전령사인 작은 벌레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네. 무엇보다 겨우내 칙칙하던 소나무 빛이 하루가 다르게 청청한 빛을 더 하고 있네.
  
   그곳은 어떤가. 미시간 호에도 머지않아 봄빛이 완연하겠지. 
 부디 늘 건강하게, 즐겁고 보람차게 모처럼의 연구년을 잘 보내기 바라네.

    안교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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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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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31 12:20 Address Modify/Delete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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