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삶의 단상

국민배우 안성기

2011. 2. 21. by 현강

Ⅰ.


나는 요즈음 평소에 존경했던 경륜 있는 배우가 암이나 실버보험, 상조나 장례보험 광고에 나와 과장스러운 내용의 멘트를 하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어느 채널을 돌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가 나올 때는 부아가 나서 아예 TV 를 꺼 버릴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 안성기가 생각난다.

Ⅱ.

국민배우 안성기를 처음 만난 것은 1959년 내가 대학 1학년 때이다. 그때 안성기는 장난기가 얼굴에 가득한 초등학교 1, 2학년짜리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1957년 <황혼 열차>로 영화계에 데뷔한 지 2년이 됐고, <10대의 반항>으로 샌프란시스코 국제영화제에서 특별상(아역 상)까지 받은 후라서 유명 스타였다. 그런데 우연히 그가 내가 다니던 돈암동 성당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그를 찾아 어렵게 우리 집에 초대했다. 물론 온 가족이 환영 일색이었다. 귀엽고 천진난만한 꼬마 유명 배우를 앞에 두고 모두가 희희낙락 했다.

그러던 중 내가 “성기야, 네가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구나. 여기서 한번 해 볼래?”라고 청했다. 그랬더니, 웬걸 그가 정색하고, “형, 저는 감독님이 시키시지 않으면 함부로 연기를 안 해요.”라고 딱 잘라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어조가 분명하고 단호했다. 나는 머쓱해서 “알겠다. 미안하다.”라며 머리를 긁적였던 기억이 있다. 그가 간 후에 온 가족이 이구동성으로 “대견한데”, “어리지만 카리스마가 있어.”, “프로의식이 보통이 아닌데.”라고 한마디씩 했다. 벌써 반세기가 넘은 얘기다. 이후 나는 그를 다시 만날 기회가 없었다.

한동안 은막에서 보이지 않던 안성기는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로 다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후 30년 동안 승승장구를 거듭, 이제 온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대배우가 됐다. 그간 안성기는 수많은 작품에서 명품 연기를 선보이며, <캐릭터의 만물상>으로 명성을 쌓았다.

Ⅲ.

나는 그의 ‘광팬’이어서 그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언제나 신이 났다. 그가 출연한 <라디오 스타>(2006)를 두 번이나 봤다. 그래서 집에서 그와의 어쭙잖은 인연을 자주 들먹이다, 내 처로부터 “또 그 얘기. 한 번만 더 들으면 백 번째 네”하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얼마 전, 한 때 한국 굴지의 의류업체 사장을 지냈던 옛 친구 S 씨로부터 배우 안성기의 일화 한편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용인 즉, 90년대 중반 S 사장이 안성기를 자기 회사의 광고모델로 세우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모델료를 제시하면서 수차 시도했는데 끝내 거절당했다는 것이었다. 안성기는 자신이 이미 여러 해 동안 커피모델을 하기에 다른 광고에 나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완곡하게 고사(固辭)했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전하는 S 사장은 “다른 배우는 겹치기 광고를 못해 야단이고, 그걸 자랑으로 삼는데, 정말 놀랐다”며, “거절당하면서도 내심 그의 처신이 고맙고 존경스러웠다.”라고 자신의 감회를 곁들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반세기 전 소년 안성기가 내 청을 단호히 거부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역시 안성기답군.”하고 혼자 되뇌었다

Ⅳ.

그는 우리 시대 최고의 명배우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최선을 다하고, 그러한 진지한 모습이 관객을 매료시킨다. 한마디로 ‘깊게 연기하는“ 배우다. 그러나 우리가 안성기를 국민배우라고 부르는 것은 비단 그의 뛰어난 연기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선 그는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이다. 겹치기 출연을 삼가고,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을 골라 선택하며, 영화배우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반듯하게 지킨다. 이런 일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엄청난 자제력과 직업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영화가 위급할 때 스크린 쿼터 저지투쟁에 앞장섰다. 그러나 한 번도 정치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않았다. 언제나 영화 현장을 지키며 ‘꼭 있어야 할 자리’에만 있었다. 그런가 하면 배우 안성기는 깨끗한 사생활의 본보기를 보여 준 배우다. 사소한 스캔들 한번 없었다. 이 또한 다른 배우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무엇보다 안성기는 매우 따듯하고 겸손한 사람, 또 신뢰가 가는 사람이다. 그런 느낌이 그의 인상이나 행동거지, 그리고 작품 구석구석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아마 그것이 그의 인간적 향기일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인품의 뒷받침이 있기에 그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국민배우에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인격을 담은 연기를 통해 그는 우리나라에서 배우의 격(格)을 높이고, 한국 영화의 수준을 올리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지치고 고단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안성기가 자신과 직업의 격을 지키기 위해 거금의 광고 모델료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용기이자 자기희생이다. 뚜렷한 소명(召命)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안성기와 같은 본분(本分)과 염치(廉恥)를 아는 ‘참된 배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지극히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안성기의 ‘광팬’임을 자처하는 모양이다.

 


'삶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면교사(反面敎師)  (0) 2011.03.09
고 이태석 신부가 남긴 것  (2) 2011.03.01
부끄럼에 대해  (0) 2011.02.13
시골에서 '세상 보기'  (3) 2011.02.06
한국인의 의식구조  (2) 2011.01.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