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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시골에서 '세상 보기'

2011. 2. 6. by 현강

  I.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으레 ‘시골에 사니 오죽 외롭겠느냐’라고 내게 말을 건넨다. 얼마간 연민의 정이 서린 인사법이다. 그러면 나는 ‘그렇지요.’라고 일단 수긍하면서, ‘그런데 대신 여긴 마음의 여유가 있지요.’ 라고 답한다.

 그렇다. 이곳에서 살면서 좋은 것이 세상에 덜 부대끼며 살 수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얼마간 편한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곳 생활 4년 여 동안 세상 보는 눈도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여기서 조금씩 터득해 가는 세상 관상법觀想法)은 ‘두루 보기’, ‘얼마간 떨어져 보기’, ‘멀리 보기’, 그리고 ‘깊이 보기’다.

II.

우선 ‘두루 보기’다. 오랜 교수생활을 하면서 내 관심은 대체로 내 전문영역에 한정되었고, 내 눈도 얼마간 그것에 고정되었다. 그러다 보니 젊어서 좋아하던 역사나 철학, 문학과 예술은 내 관심영역에서 멀어지고 까칠하기 짝이 없는 ‘외눈박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여기 와서 옛 관심사를 하나하나 복원하면서 뒤늦게 세상 두루 보기 수련을 하고 있다. 시골생활이 선사하는 삶의 여백이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다음 ‘얼마간 떨어져 보기’다. 세상 속에 파묻혀 살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얼마간 떨어져 보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도 그렇고, 사회현상도 그렇다. 약간 떨어져서 보아야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말하자면 전모(全貌)가 다 드러난다. 그렇다고 너무 떨어져도 안 된다. 눈에서 너무 멀어지면, 서양 속담처럼 마음마저 떠나 버린다. 그런데 내가 사는 여기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세상을 보는 데 적정한 객관화의 거리, 가독성(可讀性)의 거리라고 느껴진다. 이쯤이면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의 숲 속에서 적당히 벗어나서, 얼마간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리 보기’다.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 빠지면, 아등바등 오늘 하루 살기도 힘겨워 시계(視界)가 언제나 현재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외진 시골에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먼 미래도 조망하게 되고, 한참 지나간 과거도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과거, 현재, 미래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때, 가능하면 과거는 성찰하는 심경으로, 현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미래는 작은 보람을 그리면서 내다보는 게 좋다. 그러면, 시간적 배열 속에서 직관과 통찰력을 키우면서 시계를 먼 옛날부터 저 멀리 훗날까지 연장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깊이 보기’다. 크고 복잡한 도시에서 쫓기며 살다 보면 숱한 세상사를 그냥 스쳐 가듯 체험하기 일쑤다. 그러다 보니 피상적, 상투적, 겉핥기 관상법이 일상화된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마음을 담아 주제를 깊숙이 살펴보고 진지하게 따져보게 된다. 정신적 여유가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깊이 본다는 말은 깊이 생각한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그러다 보니 더 심오한 사고과정을 통해 본질에 한 걸음씩 다가가며 문제를 풀어가는 기쁨을 체득할 때가 많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도시생활에서 도시 이것이 가능했을까.

 III.

현대 도시는 격류처럼 진행되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다. 사람들은 그 한가운데서 세상과 가까이 마주하고 치열하게 부딪치면서, 넘치는 정보와 지식을 빠르게 소화하고,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민첩하게 헤엄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도시의 관상법을 생활화한다.

 그런데 시골의 ‘세상보기’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어 세상을 보다 깊숙이 관조하고,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을 함께 시도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은퇴 후 노년에는 후자가 제격이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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