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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유럽으로 떠나며

2011. 5. 18. by 현강

내일(5월 19일) 약 한 달 반 예정으로 처와 함께 유럽 여행길에 나선다. 그 중 많은 시간을 내가 유학했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보낼 생각이다. 1971년 초 공부를 마치고 귀국할 때, 먼 훗날 반드시 이곳을 다시 찾아 한 1년 여유롭게 머물면서 이 도시 특유의 학문적, 지성사적 전통을 탐색하고, 예술과 문화의 향기에 취해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때, 엄청난 지적, 문화적 자산을 지닌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 5년을 지내면서, 박사 학위에 매달려 주변에 지천으로 쌓여있는 영롱한 보석들을 외면한 채 마치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자신이 무척이나 한심해서 내린 결심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 <빈>을 들렸으나, 언제나 스치듯 지나갔고 한 번도 제대로 그 문화에 흠뻑 젖어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제 40년 만에 나 자신과의 옛 약속을 지키기로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이다. 형편상 1년을 한 달 반으로 줄였다. 하지만, 내가 그곳의 지식 창고, 문화 창고를 얼마간 꿰뚫고 있으니, 비교적 단기간 내에 열심과 성심으로 임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귀국 후 나는 미국 학문을 많이 섭취했고, 영어책을 주로 보았다. 그동안 한국이 미국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에 있었고, 그런 가운데 마치 세계가 <미국과 한국>으로 이루어진 소우주인양 생각하는 한국의 지적 풍토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생존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숙국가>의 반열에 오른 한국으로서는, 이제 미국보다 유럽으로부터 배울 것, 취할 것이 훨씬 더 많아졌다. 이러한 상황변화가 나를 다시 유럽으로 등을 떠 밀고 있는듯 싶다. 짧은 기간이나마 이번 기회에 유럽 현대사를 탐구하며 <유럽식 문제 풀기>에 빠져 들어가 보고자 한다.

머리는 한껏 비우고 떠나려 한다. 머리를 비워야 채워 넣을 게 많을 게 아닌가. 손도 가능하면 가볍게 하려 한다. 그래서 짐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컴퓨터도 없이 떠난다. 내 처는 모처럼의 유럽 여행인데, 왜 손바닥처럼 잘 아는 <빈>에 그리 오래 머무르려 하냐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나는 세계 여러 도시를 다녀 보아도 현대사, 지성사 연구, 역사, 문화 산책, 추억 만들기에 <빈>만한 도시는 없는 것 같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공연장이 아닌가. 계절의 여왕, 5월의 <빈>은 또 얼마나 찬연한가. 

그래서 벌써 가슴이 무척 뛴다. 아무래도 여행기간 동안 내 <블로그>는 반 휴면상태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행은 많은 얘깃거리를 만들 터이니, 가을부터 <블로그> 내용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섣부른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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