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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10000번의 클릭! I. 몇 달 전 감기약을 사려고 속초 시내 중앙시장에 있는 한 약국을 찾았다. 그런데 약사분이 나를 보고 “안녕하세요. 제가 가끔 선생님 블로그에 들립니다.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라는 게 아닌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기에 깜짝 놀랐다. 이럴 때면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예의 부끄럼증이 발동해, 얼굴부터 달아오른다. 어떻게 내 블로그를 아시느냐 물었더니, 그분은 “ ’좋은 교사‘에 실린 선생님 글에서 블로그 주소를 알았어요.” 라고 대답했다. 나는 “고맙다.”라는 말을 남기고 빨리 약국을 나왔다. 내 블로그 주소는 몇몇 주변에 지인들, 제자들이나 알거니 했더니, 생각지 못한 곳에서 독자를 만난 것이다. 고마운 마음이 앞서지만, 역시 부끄러움이 따른다. 벗겨진 내 몸을 모르는 사람에게 들킨 느낌 같은 .. 2011. 12. 25.
미리 적는 발문(跋文) I. 어제 제자 한 사람이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가끔 선생님 블로그를 들리는데, 왜 요즘 글이 뜸하세요? 전에는 일주일에 한편씩은 올리시더니, 요즘은 글이 늦어지고, 이번에는 20일이 가까워지는데도 소식이 없어 걱정되네요. 혹 어디 편찮으시든가, 심기 불편한 일이라도 있으신 것은 아니시죠?”라고 물었다. 나는 황급히 “아니, 나는 별일 없네, 단지 요즘 내가 뭐 따로 전념하는 일이 있어 블로그에 소홀히 했네. 앞으로 좀 더 자주 글을 올리겠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전념하시는 일이 무엇이신데요? 속 시원하게 털어놓으시지요.”라고 재차 물었다. II. 요즘 나는 책을 쓰고 있다. 책 제목은 가칭 이다. 이 책은 내가 지난여름 유럽 여행을 가기 전부터 구상한 것인데, 몇 달 전부터 .. 2011. 12. 21.
새벽찬가  I 나는 수면패턴이 이른바 에 속해 대체로 새벽 4시면 침대에서 일어난다. 이 습관이 이미 젊었을 때부터 몸에 배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되면 그냥 일어난다. 늦게 자도 이때쯤은 으레 잠에서 깬다. 그래서 자명종이 따로 필요 없다. 나는 새벽 시간을 사랑한다. 새벽은 하루의 처음이고 시작이기에 그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회가 있다. 거기에는 첫사랑이나 첫눈과 같은 설렘, 순수와 신비가 있고, 출발선에 선 마라토너의 긴장과 결의가 있다. 그리고 잠든 영혼을 무섭게 깨우는 힘과 소명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 때면, 나는 마치 내가 온 세상을 처음 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또 이때만은 내가 70대의 노인이 아니라 세상 무슨 일도 해낼 수 있는 한창나이의 청년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새벽 .. 2011. 12. 1.
유석진 박사님의 추억 I. 고등학교 3학년 (1958년), 한창 대학입시에 열을 올리던 5월 즈음에 나는 불면증에 걸렸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자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정신은 더 말똥말똥해지고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져서 멀리 수돗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마저 크게 들렸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잠시 눈을 붙이곤 했다. 온 종일 머리는 빠개지는 것같이 아프고 밥도 잘 못 먹어 몸도 여위어 갔다. 그러다 보니 6월 이후 겨우 중간, 기말시험 때만 학교에 갔던 기억이 있다. 고3이라 학교에서 출석은 관대하게 봐 주었던 것 같다. 시기가 시기인 지라 아버지를 따라 유명한 병원 여러 곳을 찾았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단은 언제나 신경쇠약이었고, 어떤 의사는 ‘고3병’이니 대학에 들어가면 낳는다고 했다... 2011. 11. 15.
아름다운 순간들  I. 나이가 70을 훌쩍 넘으니 아무래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때가 많다. 더욱이 요즈음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친지들을 별로 만나지 않고 지내니 가끔 그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함께 지냈던 시간이 어제인 듯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들과 즐거웠던 일, 기뻤던 일도 적지 않지만, 간혹 섭섭했던 일, 아쉬웠던 일들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면 나는 내 기억 속에 좋은 일은 크게 담으려 애쓰고, 덜 좋은 일은 지워버리려 노력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름다운 순간들만 내 머럿속에 소중히 간직하려 한다. 그리고 가끔 그것을 꺼내 아껴둔 좋은 차를 마시듯 깊게 음미하려 한다. Ⅱ 대학에서 30여 년을 가르쳤으니, 관계의 차원에서 보면 이 내 삶의 여정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아쉬운 일이 .. 2011. 10. 26.
주례 이야기  I. 교수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제자들 결혼식 주례를 자주 서게 된다. 나도 지난 세월 동안 300번 가까이 주례를 섰다. 그러다 보니 한창 주례를 자주 섰던 50대 때는 학자로서, 또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가장 바쁜 시기였는데, 모처럼의 주말마다 한, 두 차례 주례하다 보니 여러 가지로 생활에 지장이 컸다. 결혼은 인륜지대사이므로 주례는 그 전 과정에서 추호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래서 자주 하더라도 매번 긴장하고 적잖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일단 주례를 맡기 시작하면 누구는 해 주고 누구는 마다할 수가 없어 그 횟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주례는 우리나라에서 교수가 피할 수 없는 업보거니 생각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첫 주례를 38세에 섰다. 본의 .. 2011. 10. 15.
덕수궁에서 만나요 I. 나는 서울에서 친구나 제자를 만날 때, 웬만하면 강남보다는 강북으로, 그리고 음식점이나 커피숍보다는 으로 약속장소를 정할 때가 많다. ‘교보빌딩 앞’, ‘인사동 입구’ 하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덕수궁 앞, 운현궁 안 등 고궁을 선호하는 편이다. 내가 강북에서 나서 자랐고, 그곳에 오래 살았기 때문에 강북은 정겹고 어디 가나 옛 추억이 담겨 있어 좋다. 그런데 강남은 아직도 생소하고 거리도 익숙지 않아 가까운 사이면 강북을 고집할 때가 많다. 내가 만나자는 곳은 대개 전철로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고, 얼마간 서울의 옛 정취가 서려 있는 곳이라 상대방도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다. 또 함께 주변을 거닐며 얘기를 나누기 좋은 곳이라서 한번 그렇게 만나고 나면 상대방도 “이번에도 덕수궁 앞, 어때” .. 2011.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