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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단순한 삶'을 향한 여정  I. 복잡하고 고단한 도시생활에 지친 현대인은 내심 ‘단순한 삶’(simple life)을 동경한다. 특히 근자에 크게 일고 있는 이른바 웰빙(wellbeing) 붐과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철학도 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실천한다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한 삶’은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그 양식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라는 철학을 가장 앞세운다. 인간의 욕심과 현대 문명이 우리에게 삶의 본질과 무관한 많은 것을 과도하게 추구하게 만들었으니, 이제 그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고 주장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괜한 짓, 허튼짓,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많이 하며 사는데, 소중한 시간을 사랑 나누기와 보.. 2011. 5. 1.
어머니와 함께 한 4.19 I. 올해가 4.19혁명이 일어난 지 쉰 한번째 되는 해이다. 그 화사했던 봄날, 핏빛 민주주의의 축제가 이미 반세기가 지나 저 너머 꿈결처럼 아련한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당시 나는 연세대학교 정외과 2학년인 스무 살 청년이었다. 4.19 열풍이 지나간 후 한 열흘쯤 지나서, 교내 학생신문인 에 기자로 들어갔다. 민주혁명의 열기가 나를 대학언론으로 이끌었던 것 같다. 5월 2일(월) 입사 후 첫 편집회의에 참석했다. 막 새로 배포된 연세춘추를 나누어 보며 회의를 하였는데, 아직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터라 모든 기자가 마치 열병 걸린 사람들처럼 무척이나 흥분돼 있었다. 논의가 다음 호 편집기획에 이르렀을 때, 한 선배 기자가 목소리를 높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 호에서 에 나온 ‘민족의 어.. 2011. 4. 19.
이스라엘의 추억(2) I. 1996년 가을, 내가 이스라엘 공식방문에서 잠시 짬을 내 비공식적으로 두 번째 찾아갔던 곳은 텔 아비브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키부츠(kibbutz)였다. 그런데 워낙 시간에 쫓겨 그곳에 한 시간도 채 머물지 못했다. 한번 휙 돌아보고 책임자와 몇 마디 나누는 정도에 그쳤다. 그래서 면담, 토론 등을 통해서 보다 유용한 연구자료를 얻어 보려했던 당초의 내 계획은 무산됐다. 아쉽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날 내가 방문했던 키부츠에서 얻은 전반적인 인상은, 한 때 샤피로(M. E. Spiro)가 이라고 명명했던 키부츠 정착촌이 이제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평화로웠고, 집단관리 방식이나 생활양식에서 바깥세상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려는 나름의 노력이 엿보였으나, 기.. 2011. 4. 8.
이스라엘의 추억(I) I. 1996년 가을 제네바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교육장관회의’에 참석했던 나는 이틀 짬을 내서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이스라엘 측에서 교육협의 등 공식적 일정 외에 꼭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느냐고 묻기에 나는 두 곳을 청했다. 하나는 이 나라의 대표적인 영재교육기관 한 곳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의 전설적 집단농장 ‘키브츠’였다. 많은 유태인들이 세계 역사에 ‘머리’로 기여를 많이 하는데 도대체 그곳에서는 영재를 어떻게 키우는지 궁금했고, 아울러 이스라엘 건국의 모체이면서 자본주의 사회인 이스라엘에 활력을 넣어주는 키브츠라는 ‘사회주의 공동체’의 참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난 오늘, 공식적 방문 목적이었던 교육협약과 갖가지 행사들은 이미 빛바랜 기억으로 내 뇌리에 희미한 잔.. 2011. 3. 25.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M교수에게 M 교수에게 시카고에 도착해서 보낸 편지 잘 받았네. 나이 들어 외국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은데, 일주일 만에 그곳에 안착한 느낌이라니 새 터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 같네. 무엇보다 둘째가 그곳 학교를 좋아한다니 큰 다행이네. 시작이 반이라는데, 처음이 좋으니 앞으로 1년 성공적으로 연구년을 보내리라 믿네. 대체로 누구나 연구년을 떠날 때는 부푼 가슴으로 오랜만에 한껏 공부하고 오겠다는 결의를 다지네. 그러나 막상 떠나면 새 터에 적응하는데 두어 달, 또 이런저런 일로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얼마를 보내다 보면 쉽게 후반으로 접어들게 되네. 그러면 불가피하게 공부계획을 하향 조정하고, 이왕 온 김에 골프도 치고 여행도 좀 다녀야겠다는 욕심이 생겨 다시 일을 그르치게 되네. 그러다 보면 귀국 날짜.. 2011. 3. 14.
반면교사(反面敎師) I. 오랜된 얘기이다. 사회과학을 하는 비슷한 나이 또래 교수 몇 명이 옛날 조교 시절 얘기를 함께 나누었다. 1960년대 빛바랜 기억들이었는데, 얼마간 낭만적 기분으로 모두 가난하고 힘들었던 옛날 예비학자 시절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S 대학의 H 교수가 이미 고인이 되신 자신의 은사를 아래와 같이 회상했다. “제 교수님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L 교수님이셨죠. 학문도 좋으셨고 인품도 훌륭하셨죠. 제자 사랑도 남다르셨어요. 한마디로 모든 면에서 존경스러운 분이셨죠.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제가 정말 그분을 만난 게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 분이 바둑을 지나치게 좋아하셨다는 거 에요. 예를 들어 보죠. 이 어른이 점심때 쯤, ‘H군, 내가 잠시 혜화동 기원에 다.. 2011. 3. 9.
고 이태석 신부가 남긴 것 I. ‘울지마 톤즈’는 절망의 땅 남수단에서 신부, 의사, 교사로 헌신적으로 봉사하다 48세로 선종한 이태석 신부를 기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 정신세계가 힌 눈처럼 하얗게 순수한 빛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편이 다 감동적이었지만, 그 가운데 아래 두 장면은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그 하나는, 외국인 노신부 한 분이 “왜 하느님께서 나처럼 나이 많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놔두고 이 젊고 유능한, 그리고 할 일 많은 신부님을 데려가셨는지”하며 안타까워하던 장면이다. 또 하나는 이태석 신부의 육친 형님인 이태영 신부가 동생의 죽음에 대해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던 그 삶이 부럽고, 그렇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라고 말한 대목이었다. 이 두 장면은 비단.. 2011.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