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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5Km부터 시작하세요

2012. 1. 24. by 현강

           I.

    2000년 여름학기부터 1년간 나는 캐나다 밴쿠버의 University of Columbia에 객원교수로 가 있었다. 대학도 마음에 들었지만, 대학주변의 숲이 좋아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한, 두 시간씩 숲을 거닐었다. 그런데 역시 UBC에 객원교수로 와 있던 K교수는 장거리 달리기를 즐겨 자주 해변과 숲길을 길게 누볐고, 제법 이름 있는 밴쿠버 마라톤 대회에도 출전해서 아마추어로서는 비교적 좋은 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나보다 한 10년 연하인 그는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한 은둔자형의 공부꾼이었다. 그런 그가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달리고 엄청난 체력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마라톤에 자주 도전한다는 게 무척 신기하고 멋지게 보였다. 그래서 한번은 그에게 어떻게 마라톤을 하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5Km만 뛰세요. 그러면 됩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선문답 같은 그의 대답에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재차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처음 5Km 뛰기가 무척 어렵죠. 그런데 5Km를 뒤고 나면, 10Km는 뛸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열을 올리면 10Km가 됩니다. 10Km에 성공하면 다음 20Km에 도전하고 싶어지죠. 또 그게 가능할 것 같구요. 그렇게 하프 마라톤을 하고 나면, 마라톤 풀코스가 멀리 눈에 들어옵니다. 처음부터 욕심만 내지 않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선생님도 함께 뛰세요.” 그는 말을 이었다. “마라톤을 한다는 것은 제게 오랜 꿈이었죠. 비전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런데 5Km에 성공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저는 뜀뛰기에 워낙 재주가 없어서 처음 5Km가 그렇게 어렵더라구요. 그게 제겐 분수령이었죠.”

   나는 그의 말을 경청했고, 그의 말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러나 나는 달리기에 도전하지 않았다. 내 체질에도 맞지 않을 것 같았고, 자신도 없어서였다. 또 당시 혼자 숲 속을 걷는 데 훔뻑 빠져 있었던 것도 이유의 하나였던 것 같다.

                      II.

    몇 년 전에 대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는데, 어떤 학생이 “선생님, 많은 분이 저희에게 비전을 가지라고 하시는데, 비전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룰 수 있나요?”라고 질문을 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 같은 게 아닐까요. 거기에는 자신의 꿈과 삶의 철학이 담겨져 있는 그런 거죠. 그런데 쉽게 이룰 수 있는 목표는 비전이 아니지요. ‘힘들게 최선을 다해서 겨우 이룰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비전입니다. 비전은 삶의 길잡이인데, 비전이 없으면 삶의 길목에서 헤매게 되고, 비전을 가당치도 않게 높게 잡으면, 그건 허망한 꿈이 되지요. 그래서 비전을 바로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전을 가지면, 그것을 이룩해야지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제가 그 방법 한 가지를 말씀드리지요. 예를 들어 마라톤은 뛰는 게 자신의 비전이라고 생각한다면, 처음부터 무리한 욕심을 가지지 말고, 우선 5Km부터 뛰어 보세요........”.

   이렇게 나는 그때 K교수의 경험담을 그대로 옮겼다. 당시 인상 깊게 들었던 그의 경험담이 내 뇌리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나는 그가 제안했던 마라톤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자신의 비전을 성취했던 방식은 의미 있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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