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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45

소년 정치마니아 I I. 어떤 이는 세 살, 네 살 때 일도 제법 많은 것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 뇌리에 각인된 최초의 기억은 다섯 살 때이다. 해방 다음날 군중이 환호하며 거리로 몰려 나가던 장면이 그것이다. 그 기억이 의외로 선명한 것을 보면, 그 역사적인 순간이 내게도 꽤 인상적이었던 게 틀림없다. 이렇듯, 내 인생의 첫 기억은 해방이라는 정치적 사건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대해 비상한 관심과 흥미를 가졌다. 그래서 어른 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면 언제나 귀를 종긋 세웠고, 자주 끼어들어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끈질기게 묻곤 했다. 신문을 읽기 시작한 이후 내 눈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면은 정치면이었고, 특히 정치칼럼을 열독했다. 그런데 나는 정치를 관전(觀戰)하고, 분석, 평가하는 데 관심을 가졌으나,.. 2010. 11. 7.
한 여름 제철공장의 추억 II 1967년 Voest에서의 공장 노동과 연관해서 잊혀 지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 중 기억나는 일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I. 회장과의 대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 너구리 반장은 내게 회장과 무슨 말을 나눴느냐고 끈질기게 물었다. 나는 그분이 최근 한국에 다녀오셨기 때문에 한국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둘러댔더니, 그는 꽤 미심쩍은 표정으로, 겨우 그런일로 그 바쁜 분이 너를 만났겠느냐고 계속 다그쳤다. 그런데 그날 이후 반장의 모습이 달라졌다. 위압적이고 꽤나 권위적이던 던 그가 하루아침에 나에게는 순한 양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른 노동자들에게, 내가 회장님의 지인이며 대단한 친구라고 떠벌리며, 내게 잘 보이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다. 당시 내가 30kg짜리 강판을 들어 옮겼는데 그것을 20.. 2010. 10. 12.
한 여름 제철공장의 추억 I I. 나는 1967년 6월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 유학 간 후 두 번째 맞는 여름 방학을 앞두고 색다른 계획을 세웠다. 산업사회의 가장 역동적인 삶터인 노동현장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자는 생각이 그것이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보니 에 있는 세계적인 제철소 가 가장 내가 찾는 이미지에 맞았다. 당시 Voest는 생산체계, 생산능력, 공법 등에 있어 유럽 최고수준의 제철소로서,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산업체였다. 제철공장은 노동강도가 높고 얼마간 위험이 따르는 작업장이나, 산업사회의 참 모습을 가장 잘 살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알아보니 이미 여름 방학 학생 아르바이트 신청기간이 지났다는 얘기였다. 궁리 끝에 Voest의 회장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일자리를 부탁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지금 돌아.. 2010. 10. 9.
나도 모르게 한 배를 탔던 많은 이들 I. 1995년 말 내가 교육부장관으로 발령이 났을 때, 무척 당황하고 아득한 심경이었다. 전혀 예상치도, 아니 꿈꾸지도 않았던 상황이었다. 개각 발표 1시간 10분 전 쯤, 김영삼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을 때, “제가 저를 잘 압니다. 전혀 그 직책에 합당한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누누이 말씀을 드렸다. 그냥 인사치레로 한 게 아니라, 진심을 토로한 말이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궁지에서 빠져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수락하고 말았다. 그날 늦은 오후 시간에 얼마 전 까지 정부 고위직에 있었던 가까운 친구 한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내일 임명장을 받으려면 검거나 짙은 곤색의 정장이 필요한 데 그런 양복이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내 옷은 모두가 밝은 계통의 옷뿐이라고 답하니, 그는 “그럴 줄 알았다”.. 2010. 9. 5.
학자로 산 지난 40년 * 이 글은 2009년 12월 5일 에서 발표한 내용의 요약본이다. 학자로 산 내 생애 40년을 성찰적으로 되 돌아 보았다.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 그리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하나로 겹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글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워낙 다른 재주가 없어 그 나마 공부 잘하는 것이 내 딴에는 장기였다. 또 학자로 산다는 것에 항상 의미를 부여했고 자부심을 느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 무척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학자, 특히 사회과학자는 자신의 생활철학이 어쩔 수 없이 공부 속에 녹아 들어간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 기본적 생각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난 40년간 격동의 생활 속에서 학.. 2010. 9. 3.
학자로 가는 길목 (2009년 3월)에 수록된 글이다. 2010. 9. 3.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사람' 장기려 박사 . 2000년 12월 2일 서울대학교 병원교회에서 열린 성산 장기려 선생 5주기 추모예배에서 행한 추모강연 전문이다. 2010. 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