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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190

내 아호(雅號) 현강(玄岡) 이야기 II I. 처음 청남(菁南) 선생으로부터 ‘현강(玄岡)’이라는 아호를 받고, 나는 급한 대로 옥편을 찾아보았다. 그랬더니 한자로 ‘현(玄)’은 검(붉)다, 멀다, 아득하다, 심오하다, 하늘 등의 뜻과 함께 노자. 장자의 도에 이르기 까지 실로 다양한 의미를 지녔고, ‘강(岡)’은 산등성이, 고개, 작은 산 등을 뜻했다. 쉽게 ‘아득히 보이는 작은 산’ 정도로 이해해도 그 그림이 낭만적으로 가슴에 다가왔다. 또 여기에 노장철학을 곁들여 보다 심오한 뜻을 부여해도 내 생활철학의 관점과 그리 멀지 않게 느껴져 그 철학적 무게가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현강’이라는 음(音)또한 듣기에 그리 경박하지 않고, 다분히 진중하고, 사려 깊은, 그러면서 어딘가 결의에 찬 울림이 있어 좋았다. 그래서 무척 마음이 끌렸다. 하.. 2020. 12. 5.
내 아호(雅號) ‘현강(玄岡)’ 이야기 I I. 과거에는 문인, 학자, 예술가들은 이름 외에 별칭으로 아호(雅號)를 가졌다. 흔히 집안 어른이나, 스승 혹은 친구들이 지어서 불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호에는 자신의 인생관, 좌우명, 출신(지), 선호 등을 담았는데, 많은 이가 2종 이상의 아호를 가졌다.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서화가인 김정희(金正喜)는 추사(秋史)를 비롯하여 완당(阮堂)ㆍ시암(詩庵)ㆍ예당(禮堂)ㆍ노과(老果) 등 200여개(일설에는 503개)를 가졌다. 단연 기록보유자가 아닐까 한다. 그런가 하면, 김소월(金素月 김정식), 김영랑(金永郎 김윤식), 이육사(李陸史 이원록), 박목월(朴木月 박영종) 등 한국의 대표 시인들은 우리에게 주로 아호로 기억되고 본명은 거의 잊혀졌다. 역시 천하의 묵객들에.. 2020. 11. 24.
"꽃길만 걸으셨지요" I. 작년으로 기억된다. 속초에 사는 지인 두 분과 점심을 했다. 두 사람 다 나와 동년배로 나와 비슷한 시기에 속초/고성으로 내려와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다. 이곳에서 처음 만났지만, 한국사회의 인간관계가 늘 그렇듯이 따지고 보면 친구의 친구들이고, 한국 현대사의 온갖 풍파를 함께 겪으며 동시대를 함께 살아 왔기 때문에 공통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호간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만나면 가끔 옛 추억을 더듬으면서, 어린 아이들처럼 자주 “그랬지”, “그 때 그랬었지” 하며 맞장구를 치기도 하고, 요즘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누면서 때로는 함께 기뻐하거나 감탄하고, 때로는 비분강개하거나 안타까워 할 때도 많다. 그날도 이런 저런 얘기를 꽃피우는 가운데, 그 중 한분이 느닷없이 “안 교수님, 교.. 2020. 10. 22.
내가 살았던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I. 되돌아보니, 80년 가까운 내 생애에서 8년을 조금 넘는 기간을 해외에서 보냈다. 처음 오스트리아 빈(Wien)에서 5년 남짓 유학 생활을 했고, 이후 독일 만하임(Mannheim), 미국 시라큐스(Syracuse), 그리고 캐나다 벤쿠버(Vanquver)에서 각각 1년씩 그곳 대학에 연구교수로 있었다. 이들 유럽과 북미의 여러 나라, 도시들은 저마다 삶의 양식과 지적, 문화적 특성에 차이가 있어, 거기서 보낸 세월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하고, 공부와 생각을 여물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영감과 숱한 추억을 남겼다.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해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순위를 매겨 발표하고 있다. 안전과 보건, 문화, 환경, 교육, 인프라 등 다양.. 2020. 9. 24.
농사 삼재(三災) I. 이곳 고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 중에 가장 힘든 것 세 가지를 꼽으라면 ‘바람’과 ‘병충해’, 그리고 ‘새떼’가 아닐까 한다. 이들 세 가지 재해들의 피해는 정말 장난이 아니어서 가뜩이나 변변찮은 내 농작물 수확을 늘 반 토막 내곤 한다. 처음에는 꿰나 안타깝고 화도 치밀었지만, 이젠 앙앙불락하기보다는 ‘그러려니’ 하고 편하게 받아들이며 친환경적 차원에서 느긋하게 내 방식대로 대응한다. II. 우선 바람 얘기부터 시작하자. 이웃 속초 학사평과 내가 사는 고성 원암리는 워낙 바람이 세기로 이름난 곳이다. 과일나무에 막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철과 과일 열매가 한창 익어가는 가을철에 여지없이 찾아드는 모진 강풍은 낙화(落花)와 낙과(落果)를 불러 과일 농사를 망쳐 놓는다. 그중 .. 2020. 8. 20.
농사예찬 I. 요즘 농사일이 무척 바쁘다. 새벽 동트기 전에 농터에 나가 몇 시간 일하고, 늦은 오후 햇볕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다시 일하러 나간다. 잡초 뽑고, 이제 끝물에 이른 보리수, 오디와 지금 한창인 블루베리를 딴다. 가물면 물주고, 간간이 곁가지 전지도 한다. 온통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일거리다. 그 중 많은 일이 처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가끔 힘에 부친다고 느껴지지만, 그런대로 아직 할 만 하다. 얼마 전 딸아이가 전화로, ‘아버지, 도대체 왜 아직 농사를 지세요. 너무 힘드시잖아요. 거기서 뭐 변변히 수확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무리하실 이유가 도대체 뭐에요“ 라고 따지며 농사를 접으라고 다그쳤다. 나는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II. 농사일을 금전적으로 보면 밑지는 장사인 게 .. 2020. 6. 28.
어쩌다 '코로나' 소동 I. 작년 말 가까운 제자 C군이 내게 전화를 걸어 아들 주례를 부탁했다. 이곳 속초/고성으로 온 후 웬만해서는 주례를 사양해 왔는데, C군과의 각별한 관계 때문에 이번에는 거절하지 못하고 순순히 응락했다. 혼주인 C군은 연세대 행정학과 75학번 옛 제자인데, 특히 내가 주간을 할 때 학생기자로 유신말기의 어려운 시기를 함께 헤쳐나갔기에 나와의 인연이 무척 깊고 오래되었다. 더욱이 내가 30여 년 전 C군 주례를 했기 때문에 아들 주례까지 맡게 되면 ‘부자’ 주례를 하게 되는 셈이다. 결코 흔치 않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더 신기했던 일은 결혼 예정일이 다음 해(2020년) 2월 29일이었다. 이 날은 4년마다 윤년이 되어야 찾아오는 달력에서 가장 드물게 등장하는 날짜인데, 그날이 바로 52년 전에 내가.. 2020.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