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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농사예찬

2020. 6. 28. by 현강

                                  I.

요즘 농사일이 무척 바쁘다. 새벽 동트기 전에 농터에 나가 몇 시간 일하고, 늦은 오후 햇볕이 가라앉기 시작하면 다시 일하러 나간다. 잡초 뽑고, 이제 끝물에 이른 보리수, 오디와 지금 한창인 블루베리를 딴다. 가물면 물주고, 간간이 곁가지 전지도 한다. 온통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일거리다. 그 중 많은 일이 처의 도움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가끔 힘에 부친다고 느껴지지만, 그런대로 아직 할 만 하다.

얼마 전 딸아이가 전화로, ‘아버지, 도대체 왜 아직 농사를 지세요. 너무 힘드시잖아요. 거기서 뭐 변변히 수확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무리하실 이유가 도대체 뭐에요라고 따지며 농사를 접으라고 다그쳤다. 나는 그냥 허허 웃고 말았다.

 

                                   II.

농사일을 금전적으로 보면 밑지는 장사인 게 사실이다.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입하지만, 거기서 얻는 가시적 수입은 전혀 없고, 수확하는 것도 대단치 않다. 거두는 것은 전부 우리 내외가 소비하고, 남는 것은 가끔 서울 자식들에게 보낸다. 그러다 수확기에 때맞춰 손님이라도 오면 조금 싸주는 정도다. 그래도 농사지어 얻은 채소와 과일이 우리에게 요긴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농사일은 나에게 일하는 재미, 시골 사는 의미를 부여하며, 내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나는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작하는 땅은 약 300평 정도다. 그 중 채소밭이 한 30평 정도고 나머지는 모두 과수다. 우리가 아는 이름의 거의 온갖 채소는 고르게 다 심었고, 과일나무도 포스트 포디즘의 <다품종 소량생산>의 흐름에 따라 갖가지 종류가 다 있다. 다양한 과일이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줄이어 열리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수확하는 것이 요즘 한창인 블루베리다.

농약, 제초제는 전혀 쓰지 않고 채소밭에 비닐멀칭도 하지 않는다. 내가 농약 대신 쓰는 것은 목초액이 전부다. 말하자면 으로 농사를 짓는 셈이다. 그러자니 일이 엄청 많고, 병충해 때문에 큰 고생을 한다. 10년 이상 농사를 지었지만 제대로 모양을 갖춘 사과나 배를 따 먹어 본 기억은 없다. 대체로 바람과 새, 그리고 벌레들에게 반 이상을 헌납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먹는다. 농사를 좀 아는 지인이 와서 내가 농사짓는 방식을 보고, 혀를 차며 사서 고생하는 미련 농법이라고 명명했다.

 

그런데 좀 자랑 같지만, 내 농터에는 잡초가 거의 없다. 한마디로 무척 정갈하다. 아침, 저녁 부지런히 뽑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매가 열리지 않는 나무도 병들어 찌든 나무도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정성껏 열심히 가꾼다. 내 품에 들어온 나무면, 그 기여(寄與)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그리고 똑같이 소중히 다룬다. 그들도 나와 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III.

나는 이곳 속초/고성에 오기 전에는 평생 책상머리에서, 함량 미달의 머리만 쓰며 살았다. 그러다가 몸을 부려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면서 또 하나의 다른 세상에 눈을 떴다. 신세계의 체험이다. 그러면서 내가 마침내 균형적 삶을 살고 있다는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농촌생활이 내게 더할 수 없는 큰 선물을 준 것이다. 그래서 여름에는 열심히 농사짓고, 겨울에는 힘닿는 대로 글을 쓰는 삶을 택했다.

 

 아직은 농사짓는 일 자체가 내게 즐거움을 준다. 청신한 새벽공기 속에 멀리 운무에 쌓여 신비한 느낌을 주는 울산바위를 바라보며 일을 시작할 때는 늘 가슴이 설렌다. 자연 속 파묻혀 하루를 보내는 일도 내 정신세계를 맑게 한다. 온갖 잡념, 증오, 분노가 사라진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니, 쫓기지 않고 수확에 연연하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스스로 땀 흘려 거둔 먹거리가 내 삶의 값진 양식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기쁘게 한다.

 

작년 고성산불로 내 삶의 기둥이었던 <현강재>가 소진된 후, 크게 좌절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바로 농사일이었다. 불탄 집의 잔해와 초토화된 주위 풍경을 보고 망연자실했던 나는 일단 서울행을 작정했지만, 결국 며칠 못 가 이곳으로 되돌아 왔다. 그 무서운 불길이 천만다행으로 우리 집 농터를 비껴갔고, 봄을 맞아 막 새싹이 돋아나는 그곳의 작물들과 나무들이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사일은 실로 엄청난 힐링 효과가 있었다. 농터에서 일하면서 나를 무섭게 짓누르던 산불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황폐한 주위 환경에 아랑곳없이 힘차게 뻗어가는 새싹들의 아름다운 합창과 그 엄청난 생명력 속에서 나는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IV.

농사일은 일응 육체노동에 틀림없다. 하지만 손과 몸을 부려 일하면서, 동시에 사람의 머리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때문에 일하면서 뇌 활동을 통해 온갖 상상력과 학습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므로 활용하기 따라서는 육체노동을 정신노동과 병행할 수 있다.

 

노동의 학습효과는 내가 20대 후반 외국에서 공부할 때 스스로 체득했다. 한창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던 1967년 여름 방학 때 나는 두 달 여 동안 오스트리아 린쯔(Linz)에 있는 훼스트(Voest)라는 세계적 규모의 제철공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백면서생인 내게 매우 과중한 노동이었다. 그런데 나는 철판을 나르는 일을 하면서, 일이 얼마간 익숙해지자 노동과 동시에 뇌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공부 걱정 때문에 생각해 낸 궁여지책이었다. 그러면서 그 기간 동안 학위논문의 기본 골격과 줄거리를 마련하고 주요 쟁점도 많이 정리했다. 고되게 몸을 움직이면서, 머리는 명징하게 돌아간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크게 놀랐다. 가을 새 학기를 맞아 논문 지도교수와 상담을 하는데, 교수님이 내게 안군, 논문이 엄청나게 진척됐네. 방학 동안 도서관에서만 지냈던 모양이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농사일을 하면서, 요즘도 나는 늘 뇌를 가동한다. 일상적인 상상, 공상, 심지어 망상까지 다 한다. 젊은 날의 아름다운 추억들, 옛사랑의 그림자를 더듬기도 하고, 얼마 남지 않은 내 여생을 얼마간 착잡한 마음으로 미리 내다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중 많은 시간을 농사철이 끝난 후, 늦가을부터 쓰게 될 책과 논문에 집중한다. 비록 갖춰진 서재에서 책이나 학술자료와 더불어 하는 작업은 아니지만, 농터에서 일하며 자유롭게 하는 학습은 그 열린 시공만큼이나 천의무봉(天衣無縫)의 힘이 있다. 컴퓨터에 다가가기 전에 머리로 쓰는 글이라 다소 거칠지만, 큰 그림과 숨은 그림을 볼 수 있는 나름 야생(野生)의 특성이 있다. 그러다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논리의 실마리를 찾으면 재빨리 메모를 해 둔다. 급격하게 쇠잔해 가는 기억력에 대한 대비책이다.

 

나는 농사일이 내 학문적인 활동에 손해를 끼치기보다는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여름 한 철 농사일로 단련된 몸과 그때 축적한 무수한 생각들의 조각들을 모아 겨울에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 년에 한 권씩 나오는 내 저작들은 여름 농사의 결실이다.

 

이렇게 볼 때, 분명 농사일은 엄청나게 남는 장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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