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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고성산불, 연례행사?

2020. 5. 4. by 현강

      I.

51, 오전까지 날씨가 멀쩡했는데, 오후에 접어들면서 건조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바람이 점차 거세지기 시작했다. 저녁녘이 되자 흔히 화풍이라 불리는 양강지풍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몰아치는 강풍에 이제 막 아름다운 연두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이 허리가 휘도록 흔들리고, 바람소리도 마치 괴기영화에서처럼 공포스런 굉음을 내며 고막을 휘저었다. 봄철 이곳에서는 늘 겪는 현상인데, 그날따라 불안한 마음이 잔물결처럼 일렁였다. 그러면서 작년 44. 고성 산불의 악몽이 머리를 스쳤다.

 

9시가 넘어 침대에 편하게 누어 jtbc‘팬덤싱어를 시청하고 있는데, 서울의 C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급한 목소리로 지금 TV에서 그곳 토성면에서 또 산불이 났다는데, 알고 있지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며 몰랐는데, 고맙네라고 전화를 끊고, 부리나케 밖으로 뛰어나갔다. 사위를 들러보니 다행히 어디서도 화염이 내뿜는 붉은 기운이 감지되지 않았다. 아주 가까운 곳은 아닌 듯싶어 일단 안심하고, TV를 뉴스로 돌렸다. 발화지점이 도원리였다. 북쪽으로 약 6, 7km 지점이고 그 사이에 저수지와 군부대, 그리고 지난 불로 벌거숭이가 된 산이 있으니 당장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전화에 불이 붙었다. 서울의 아들, 딸과 친지들이 tv를 보고 걱정이 돼서 야단이 났다. 문제는 이미 태풍급으로 거세진 강풍과 바람의 방향이었다. 그런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솟뚜껑보고 놀란다라는 얘기처럼 작년의 악몽이 자꾸 떠 올랐다. 지난 해 산불 때, 병원약속 때문에 서울에 갔었던 내 처는 더 불안한 듯, “일단 대피할 준비를 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렇게 위급한 상황은 아니라고 얘기했지만, 이미 한 밤중이고 이런 강풍이 계속되면, 작년의 경험으로 불길이 몇 km 질주하는 것은 순시간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도 마음이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서 아들애가 전화로 일단 대피하세요라고 성화를 했다. TV를 보니 불길은 더 확산되고 있고, 그곳 인근 주민들은 이미 대피를 했다고 한다. 10시경, 우리도 대피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그리 화급한 상황은 아니었는데도, 나나 내 처나 이것저것 챙길 생각이 없었다. 작년 산불로 모두 불타 귀중한 물품도 없었거니와, 그간 갖추지 않고 살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던 경험이 작용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나이에 대피하면 죽을 일도 아닌 데 황급하게 수선 떨기가 싫었다. 나는 급한대로 설합속에 usb와 최근 작업하던 자료들을 넣어 한 가방 들었고, 내 처는 추을지 모른다며 겨울 오버 하나를 달랑 들었다.

 

 

차를 타고 속초로 나왔고, 아들애가 tv를 보며 핸드폰으로 중계를 했다. 다행히 바람이 도원리 북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했다. 산불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확산되고 있었으나, 바람 반대 편에 있는 우리 집은 위험권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새벽 130분경, 우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시 tv를 켜고, 그간 못 받은 전화와 문자 메시지에 답을 하며 빨리 날이 밝아 헬기가 떠서 본격적인 진화작업을 하기를 학수고대했다.

 

 

       II.

밤새 수 십통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보낸, 친지 여러 분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작년에 이어 이번에 다시 심려끼쳐 죄송하기 짝이 없다.

늙마에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이색체험을 거듭하는 내 팔자도 스스로 흥미롭다. 오늘도 아직 새벽 시간인데, 밖에는 또 예의 '양강지풍이 그 위세를 떨치며 휘몰아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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