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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현강재의 추억

2020. 4. 26. by 현강

현강재가 불탄 후, 잊으려 해도 자주 생각이 난다.  10년 반 쯤 그곳에 살았는데, 그 기간이 내 인생에서 매우 소중했던 시절이기에 더 그런듯 싶다.  많은 이들이 현강재를 찾았는데, 아래에 몇몇 신문과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인터뷰 내용은 다 생략하고 현강재를 묘사한 부분만 여기 옮긴다.  마지막 인터뷰는 산불 후, 전화로 인터뷰한 것이다.

 

 

* 조선일보(2008/09/25) 한삼희의 환경칼럼

안병영씨네 손수지은 다섯 번째 집

 

몇 가지 묻고는 집 지은 현장으로 갔다. 미시령터널을 나와 속초 시내로 들어가기 전 어느 마을 외곽이었다. 안 교수 부인이 설계도 하고 인부도 직접 부려 지었다는 집이다. 1m쯤 쌓은 석축 위에 올린 단층집인데 겉 벽엔 투박한 연갈색 석재를, 지붕은 스페인 양식의 황색 기와를 썼다. 어떻게 보면 황토집을 닮았고, 어떻게 보면 세련된 현대식 주택이었다. 뒤쪽은 얕은 산이고 둘레는 소나무밭, 마당엔 키 큰 감나무가 서 있었다.

내부는 대담하게 설계했다. 가로 5m, 세로 3m 정도의 유리창으로 덮은 거실 천장이 가장 눈에 띄었다. 눈이라도 와서 쌓인다면 눈 속에 사는 셈이 된다. 내벽은 흰색 페인트를 질감을 살려 칠했고 기둥, 대들보는 옹이 무늬가 살아 있는 소나무를 썼다. 방마다 큼지막한 유리창을 내서 눈 가는 곳마다 설악의 사계절이 보이게 돼 있었다. 집 전체가 환하고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졌다는 느낌이었다. 부부가 서로 어느 방에 있건 고개만 돌리면 말을 걸 수 있도록 공간도 통하게 만들었다. 원목 느낌을 살린 수납장 하며 방문을 울퉁불퉁한 두꺼운 유리로 만든 것까지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안 교수 부인 윤정자씨는 평생 5번 집을 지었다. 젊어서부터 집 짓기와 마당가꾸기에 관심이 많아 집에 건축, 원예잡지가 쌓였다고 한다. 유럽 등지에서 외국생활을 할 때도 TV 채널은 '하우징 &가드닝' 프로에 고정됐다. 처음 집을 지어본 것은 1973년 서울 우이동에서다. 없는 돈에 집을 지으려다 보니 직접 나섰다. 빨간 벽돌집이었는데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1978년엔 연희동에 집을 지었다. 영종도에서 캔 차돌을 쪼아 겉벽에 붙였는데 지금은 아들이 산다. 그 뒤로 아파트 살던 부모님과 딸네한테도 각각 집을 지어줬다. 이젠 윤씨가 일을 한다면 모이는 전속 팀이 생길 정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9/25/2008092501503.html

 

* 조선일보(2012/10/27)

문갑식의 하드보일드

농부가 된 부총리 왜 몰랐을까 은둔의 즐거움’‘

 

만산홍엽(滿山紅葉)이란 말은 이맘때의 설악산에 딱 맞는다. 상강(霜降) 추위가 덮쳐 더 선명해진 풍경과 알싸해진 공기에 둘러싸인 '현강재(玄岡齋)'는 볕 좋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었다.

40평 남짓한 공간은 천장이 높아 시원했고 창틈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비 내리는 날에는 자연의 풍금 소리가, 눈 쏟아지는 밤에는 묵화(墨畵)처럼 추억이, 맑은 날에는 별의 합창이 들릴 것이다. 둥그런 공간 사이 자리 잡은 창틀은 산수화 한 폭을 담은 액자였다. 가깝게는 달마봉, 멀리는 울산바위가 계절에 따라 변색하는 것이다.

거기서 안병영(安秉永·71) 전 교육부장관은 네 번째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농부(農夫)가 된 부()총리는 새벽 4시 일어나고 한철에는 8시간쯤 땅을 가꾼다. 400평 중 250평엔 과실수, 100평엔 농사를 짓는다. 설악과 동해와 제 힘으로 가꾼 결실을 함께 맛보는 삶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10/26/2012102601693.html

 

* 중앙SUNDAY(2016/05/01)

중앙SUNDAY 편집국장 인터뷰 선비 안병영

 

새벽길을 달려 2시간여-.미시령 넘어 웅자한 울산바위를 뒤로하고 닿은 곳 고성군 토성면....내외가 직접 욕조·변기·벽난로 같은 소품과 인테리어 마감재를 골라 하나 하나 꾸몄다는 집은 그 자체로 갤러리입니다. 벽을 두지 않아 단절되지 않고 하나의 공간으로 흐르듯이 꾸민 실내 구조에,높이 솟은 천장 한가운데를 유리창으로 덮어 채광 효과를 더했습니다. 굳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거실에서 변화무쌍한 하늘시계의 움직임과 절기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말이죠.
집의 바깥 둘레로는 철따라 피어나는 갖가지 꽃들과 나무들,과실수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에라도 온 듯 황홀경에 빠지게 합니다.

 

* 동아일보(2019/04/06)

귀농안병영 부총리 집도 불타지나가는 차 타고 가까스로 대피

고성=한성희 기자 , 고도예 기자 입력 2019-04-06 03:00 수정 2019-04-06 03:00

 

선생님, 얼른 대피하세요.”

4일 오후 8시경. 강원 고성군 원암리 자택(사진)에서 책을 읽고 있던 안병영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78)은 제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자택 인근에서 큰 산불이 났으니 빨리 피하라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산불이 난 지 40분 이상 지난 때였다. 산불은 이날 오후 717분 원암리 일성콘도 인근에서 시작됐다. 안 전 부총리의 집에서 걸어서 약 30분 거리인 곳이다.

 

안 전 부총리는 전화를 끊자마자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자 바람에 불씨가 날려 왔다. 멀리서는 큰 불길이 솟고 있었다. 안 전 부총리는 바로 도로까지 뛰어나가 손을 흔들었다. 마침 지나던 승용차를 얻어 타고 동네를 벗어났다. 아내는 서울에 가고 집에 없었다.

 

안 전 부총리는 2006년부터 아내와 함께 강원 속초에서 살다가 2008년 원암리에 집을 짓고 거처를 옮겼다. 안 전 부총리가 책을 내기 위해 2년간 준비해 온 자료들은 모두 재로 변했다. 서울의 자녀 집에 머물고 있는 안 전 부총리는 농사지으며 글 쓰고 자연을 벗 삼아 지낼 수 있었던 보금자리가 사라져버려 허망하다면서도 마지막으로 달려 나가는 차 하나를 천우신조로 잡아타고 빠져나왔으니 집이 사라진 건 아무것도 아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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