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나는 내가 예전에 살았던 곳을 무척 그리는 편이다. 이제 나이가 80 문턱에 이르렀고 그런대로 변화무쌍한 세월을 보냈으니 국내외에서 내가 그간 머물었던 곳도 꽤나 많았다. 따져보니 한 20여 차례 옮겨 살았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 한 곳 한 곳이 다 내 마음의 고향같이 느껴진다.

 

어쩌다가 옛날에 살았던 도시나 동네 근처에 가는 길이 있으면, 나는 무리를 해서라도 옛집과 옛터를 찾아 나선다. 외국의 경우, 대체로 내가 살던 집과 이웃 동네가 마치 그간 시간이 멈췄던 듯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변화의 폭이 커서 몇 년 후에 찾아가도 완전히 딴 세상이 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떤 공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옛 시간은 그 언저리에 그대로 남아 맴돌며 나를 반기고 낭만을 곁들여 옛 추억을 쏟아 놓는다. 그곳에서 나는 옛날로 돌아가 전에 그곳에 남겨 두었던 나의 영혼의 한 조각과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눈다.

 

어떤 이는 자신이 곤고한 삶을 보냈던 곳은 끔찍하고 진저리가 나서 다시 돌아보기도 싫다고 하는데, 나는 내가 어렵고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옛 장소가 더 나를 무섭게 끌어당기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옛터를 찾을 때면 늘 가슴이 설레고 마음 한구석이 찡하다. 어쩌다 10대초에 피난시절을 보냈던 대구나 부산에 가면, 으레 까마득한 옛날 내가 살았던 가난한 동네, 내가 다녔던 산비탈 판자집 피난학교 터를 찾아 나선다. 이제 천지개벽을 한 듯 완전히 딴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그 근처에서 옛 추억으로 이끄는 작은 흔적이나 한 가닥 실마리라도 찾아보려고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아직 남아있는 비좁은 골목이나 계단, 허물어진 돌담이라도 만나면, 오랜 친구를 만난 듯 기쁘고 반갑다. 눈물이 핑돌 때도 있다. 그리고 나는 곧 그 자리에서 티 없이 맑은 10대 소년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옛터를 뒤에 하고 돌아설 때면, 늘 쓸쓸하고 아쉽다. 그러면서 다시 그곳에 남기고 가는 나의 분신이 안쓰럽다. “다시 와야지” 속으로 다짐한다.

 

             II.

며칠 전 낮 시간에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는데, 분위기 있는 영화 하나가 스쳤다. 되돌아가 보니,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였다. 아이언스는 내가 좋아하는 배우다. 훤칠한 키에 지적이면서 중후한 멋을 지닌 ‘꽃 중년’(이젠 ’꽃노년‘?)이다. 가톨릭 고위 성직자로도 잘 나오는 그는 영화 ’미션‘에서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영화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기가 막힌 명대사가 나왔다. 나는 그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옛터를 찾을 때 마다 느꼈던 감정을, 이 보다 더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아니 실존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포털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이는 베를린대학의 철학교수이자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아였다. 그러니 이 명대사도 그의 작품이다. 그럼 그렇지. 역시 철학 냄세가 나더니. 이  책은 2004년 출간 이래 독일에서만 150만부를 판매, 현재까지 3년 연속 아마존 베스크셀러 10위권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즉시 책을 주문했다.

 

나를 열광시킨 그 명대사는 아래와 같다. 다시 읽어보아도 역시 일품(逸品)이다.

 

우리가 어느 곳을 떠날 때

우리 스스로의 무언가를 뒤에 남기고 간다.

우리가 가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서 머문다.

거기에 다시 가야만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물건들이 거기에 있다.

어느 장소에 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여행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고독을 마주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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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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