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2008년 이곳 원암리에 새집, 현강재를 짓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벽난로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면서 하얗게 눈덮힌 겨울 따스한 벽난로 옆에 비스듬이 누워 한가로이 책을 읽어나 음악을 듣는 정경을 떠올리곤 했다. 설계부터 시공까지 집 짓는 과정을 도맡았던 처에게 내가 주문했던 것은 단지 그것 하나였다.

 

공사가 꽤 진행되었을 때, 내가 벽난로를 잊지 말라고 다시 일깨웠다. 그러자 처는 걱정 말라며 벽난로가 들어앉을 자리와 벽에 연통이 나갈 구멍까지 마련했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하루는 벽난로를 보러 가자며 서울 강남의 어느 건축자재 전문 백화점으로 데리고 갔다. 다양한 철제 벽난로 중에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놀웨이제 벽난로였다. 무엇보다 요란스럽지 않고 간단해서 좋았다. 가게 주인도 잘 고르셨습니다. 성능도 뛰어나고 작아도 기품이 있지요라며 한껏 부추겼다. 그런데 값이 너무 비쌌다. 내 기억으로는 700만원을 요구했던 것 같다. 그 반값 정도를 예상했던 우리는 결국 벽난로 사는 일을 뒤로 미루고 되돌아 왔다. 아쉬웠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공사가 막바지에 들어서면서, 내 처는 자주 자금이 딸린다고 걱정을 했다. 그러더니 하루는 미안한 얼굴로, “아무래도 벽난로 설치는 뒤로 미루어야 겠다고 말했다. 나는 볼멘소리로 내가 당신한테 주문했던 게 딱 그거 하난데 그것도 어려워라고 불평을 했지만, 꽤나 돈에 쪼들리는 것을 알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현강재가 완공되어 입주한지 한 달 쯤 됐는데, 고성군에서 연락이 왔다. 내용인 즉, 우리 집이 경관이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이 되었으니 상금을 타러 군청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 내 처에게 군에 그런 것 신청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처는 그런 적이 없다며, 다만 얼마 전에 토성면에 건축 관계하는 분이 집 안팎 사진 몇 장을 보내달라고 청해서 준공검사에 필요한 듯싶어 그대로 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럼 그 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신청한 게 아닐까라고 추정했다. 나중에 보니 그 주측이 맞았다.

 

다음 날, 우리는 함께 군청으로 갔다. 가는 도중 내 처가 상금이 얼마나 될까. 100만원, 아니 그래도 200은 되지 않을까라며, 무엇보다 자기 작품(?)이 인정을 받아 기분이 좋다고 즐거워했다. 그런데 의외로 상금은 거금 500만원이었다. 우리는 크게 놀랐다. 그러면서 거의 동시에 벽난로!”를 외쳤다.

                       

                                      ll.

며칠 후, 내 처가 양평에 벽난로를 보아 둔 것이 있다며,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전에 강남에서 내가 골랐던 바로 그 놀웨이산 벽난로인데, 흥정은 의외로 빨리 진행되어 500만원으로 낙착됐다. 바로 경관이 아름다운 집상금, 바로 그 가격이었다. 우리는 모든 게 그림처럼 맞아 떨어져 신기 가득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음 날, 양평 난로 가게 사장님이 직접 벽난로를 차에 싣고 와서 설치해 주셨다. 무쇠 벽난로가 워낙 무거워 나와 둘이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일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떠나기에 앞서 그가 웃으면서, “교수님! 오늘 저는 난로가 아니라 낭만을 설치하고 갑니다라고 말했다. 예사롭지 않은 말투였다. 나는 멋진 말씀이네요. 그런데 혹시 저를 아세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제가 작년까지 시사저널기자였습니다. 전에 교수님이 정부에 계실 때 제가 단골로 몇 번 인터뷰를 했었는데, 혹시 알아보실까 했더니 끝내 못알아 보시더군요라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민망해서 제가 워낙 면치(面癡)라서, 죄송합니다를 거듭했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했던 인연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III.

그 해 겨울, 새로 설치한 벽난로 곁은 우리 세 식구, 나와 내 처 그리고 작년에 하늘나라로 떠난 반려견 애리가 가장 선호하는 명당 자리였다. 그 해 따라 큰 눈이 기록적으로 자주 내렸다. 현강재가 며칠 동안 원전히 눈에 갇혔는데, 난로 곁은 언제나 천상의 낭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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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현강재 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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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익로 2020.05.18 20:45 Address Modify/Delete Reply

    부총리님!!!
    드디어 현강재가 다시 문을 열게 되었음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꼭 1년하고 1달이라는 시간이 '잃어 버린 천국'의 공간을
    침묵으로 지켜왔군요!!!
    새글이 올라온지 달포가 지난 오늘에야 현강재를 방문케 되었지만~~~
    너무다 다행이고 제 마음 또한 기쁘기 한량없는 것은 어쩜일까요?
    그간의 상심을 잘 관리하시었기에 이 아름다운 봄 날, 돋아오른 새 순처럼
    말끔히 치유되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부총리님!!!
    벽 난로의 낭만에 대하여~~~ 흥미로운 일화입니다!!ㅎㅎ
    말 그대로 낭만 그 이상입니다!!!
    그러나 사모님의 솜씨가 빛을 발한 명작인데~~~너무 아쉽!!!ㅇㅇ

    부총리님~~다시 현강재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를
    드리오며, 예전보다 더 여유롭고 풍성한 원암리 농사꾼이시길 기원드립니다!!!

    김익로 올림

  2. 현강재 현강 2020.05.20 09:1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김 선생님!
    고맙습니다. 그간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쳤습니다.
    앞으로는 좋은 소식만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즘 이곳은 코로나 우려에도 불구하고, 봄 향기가 천지에 가득합니다.
    부디 건강, 성취, 행복을 두루 누리시길 빕니다.

  3. 이근우 2020.06.03 09:42 Address Modify/Delete Reply

    추억이 가슴에 저며듭니다.
    벽난로의 낭만이 빨리 되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4. 최 종 률 2020.06.29 14:03 Address Modify/Delete Reply

    반가, 반가, 반갑습니다. 우선 제 꿈인 난로가 바로 안박사댁에 모셔졌군요. 축하합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불장난을 좋아해서 평생 난로가 꿈으로 살아 있습니다. 서초동에 살때 한 10년 벽난로있는 집에서 살
    았는데 난로는 역시 눈 오는 날이 제격입니다. 한데 그 난로때문에 집사람과 자주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눈이 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만사제치고 벽난로를 피웠는데 문제는 나중에 뒷처리하는 것이 제몫이었습니다.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재를 치우고 나면 다시 장작을 피우곤 했는데 그때마다 누가 재를 치우느냐로 아내와 아웅다웅 했습니다. 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는 일주일에 두번 오는데 아주머니가 올때는 날씨가 좋아 벽난로를 피울 일이 없었습니다. 또하는 장작을 사는 일인데 교수님이 말씀하신 강남 난로집에 부탁하곤 했습니다. 장작은 반드시 참나무(oak tree)라야 하는데 난로집에서 보낸 참나무속엔 30% 정도 소나무를 끼워넣었어요. 이게 우리나라 상인들의 수준이지요. 그때마다 난로집에 전화를 걸어 불평을 해도 별수 없었습니다. 서초동 집을 떠나면서 벽난로도, 핀란드 난로도 꿈에만 남아 있습니다. 몇해전에 기흥에 쬐꼬만 cottage를 장만했는데 아무리 봐도 난로 놓을 자리가 마땅찮아 늘 아쉽습니다. 밖에 나가 어디에 굴뚝을 뚫을까 아무리 둘러봐도 자리가 없고 안에서도 난로 놓을 자리가 없어 답답합니다. 난로가 있으면 눈 내리는 날은 꼭 기흥집에 가고 싶을텐데 그게 없으니까 눈이 와도 무덤덤합니다. 괜히 난로 얘기에 맘이 들떠서 수다를 떨었습니다. 많이 즐기시며 더러운 세상을 잊고 지내시길 빕니다. 서울 최종률 드림